[사목의 향기] '적의 적은 아군이다'
김두진 바오로/예수고난회 신부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이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지칭되는 말이다. 믿는 이들은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분의 이름으로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그 분의 증인이어야 한다.
오늘 아침 수녀원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들었던 화답송의 후렴이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다. If today you hear his voice harden not your hearts! (너 만일 그분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는 기적사화는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오늘의 벙어리는 내게 큰 예언자로 다가온다. 그의 말로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은 그저 말 못하던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이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시대의 지도자들과 힘 있는 자들에게 반대 받던 자였다. 정의를 말하며 힘없는 자들 편에 서 있어 선동하는 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선동하는 예수님은 힘있는 그들의 입장에선 분명 적이고 그 적이란 그들의 입장에서 악마이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악마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 이제 예수님을 체험한 벙어리가 말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말 같은 정의 평화 사랑 해방 그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며 그 분의 가르침을 말하기 시작한다. 너 만일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던 시편의 말씀처럼 마음을 열고 대담하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해서 그들은 예수님께 말한다. 당신은 베엘제불의 힘으로 저 사람을 고쳤다고 그렇지 않다면 왜 저사람 하는 짓이 베엘제불 같은 당신과 같겠냐고 묻는다.
본 사람은 보여줘야 하고 들은 사람은 들려줘야 하고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체험 시켜야한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 놓치고 싶지 않아 내 놓을 용기가 없어 그저 입 다물고 있으며 그렇게 실행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악마라고 뒤집어씌우는 마음속의 술수를 그분은 날카롭게 끄집어 내신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음을 열어 입을 열게 하였으면 악마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도래라는 쉬운 설명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닫힌 그들의 마음 아니 닫힌 내 마음이다.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행동도 악마가 된다. 돼지 눈에 무엇만 보이겠는가? 그러면서도 나는 악마가 아니라고 소리쳐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슬픈 현실인가?
예수님을 만난 벙어리가 말하게 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듯 예수님을 만났다고 믿고 있는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가? 그 분을 뵈옵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 사람들처럼 나도 그 분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악마인가 아니면 그 분인가? 적의 적은 아군인데 나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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