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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월광곡

권이조

미국에서 막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민영우는 이미 조교수 자리를 약속받은 백학여대에서 아주 가까운 곳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 호텔 로비엔 아늑한 다실이 있는데 의자들이 다 명품 안락의자여서 밖에서 하루 종일 바쁘게 일을 보고 돌아온 손님들은 으레 거기 앉아서 편안하게 쉬며 차도 마시고 조용한 음악도 들으며 피로를 풀었다.

민영우도 물론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후 늦게 나와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아가씨가 다른 아가씨들보다 좀 다른 데가 있어 유심히 지켜보았다. 옷도 야하지 않게 입고 립스틱도 바르지 않고 손님들의 농담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깔깔대고 웃는 일도 없었다. 오뚝한 코를 치켜들고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오만스럽게 걷는 모습이 꽤 자존심이 강한 아가씨로 보였다. 한 달쯤 지난 후 하루는 영우가 물었다.

“아가씨 이름은?”
“왜요?”
뜻밖의 반문에 민영우는 좀 당황했다.
“그냥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명주라고 부르세요.”

윤명주는 이 귀티가 나는 젊은이가 다 좋은데 타임지를 둘둘 말아 쥐고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유치하고 싼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대개 영어 못하는 젊은이들이 여자들한테 눈길을 끌어보려고 영어를 잘 하는 척 겉멋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 그 타임지를 펴고 읽고 있는 민영우에게 물었다.

“그 잡지 재밌어요?”
“예?”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계속 읽어 나갔다.

“정말 그 어려운 영어를 다 이해하시느냐고요?”
“아니, 그냥 읽는 척하는 거죠.”

그렇게 건성으로 답을 주고는 이 당돌한 아가씨를 어떻게 대해야되나 하며 다실을 나왔다.
그 다음날 명주는 영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
“그건 왜요?”
“그냥,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요. 사장님?”
“사장 아닙니다. 그냥 미스터 민이라고 부르세요. 그런데 명주 씨는 왜 낮에 일
하지 힘들게 밤에 일하죠?”
“명주씨가 뭐에요. 촌스럽게. 다른 손님들은 다 아가씨 아니면 아가라고 부르는데. 제가 대학생 알바란 걸 전혀 몰랐어요? 다른 손님들은 말 안 해도 다 알고 학생이라고 부르며 학비에 보태 쓰라고 돈도 주고 그러는데.”

명주는 영우가 이 호텔에 들어와서 한 달이 지나도록 말 한마디 안 걸고 차 한 잔에 잡지만 읽고 있는 이 젊은 남자가 좀 못 마땅하면서도 그의 정체가 뭘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손님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세태에 물들지 않은 좀 맹한 선비같이 보이기도 했다.

얼마 후 민영우는 대학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구해 혼자 사는 고모를 데려다 놓고 호텔을 나와 그리로 거처를 옮겼다. 마침 새 학기가 시작되어 그는 처음으로 영문학과 이학년 강의실을 찾아 들어갔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생들의 질문은 끊일 줄 몰랐다. 서른도 채 안돼 보이는 이 귀골냄새가 풍기는 풋내기 교수한테 여대생들이 갖는 호기심은 대단했다.

우선 미국 명문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선배 교수의 추천으로 이 대학에 오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학생들은 좀 의외라는 표정으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교수님 결혼 하셨어요?”

귀에 익은 목소리인 듯싶어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 학생은 바로 그 당돌한 명주였다.

“그런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 귀중한 수업시간을 아껴 써야지요. 이번 학기에 내가 다룰 작품은 과정표에 나와 있는 대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지요? 우선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타임지를 들고 다닌다고 흉을 봤던 그 호텔 손님이 영문학 박사 교수님인 걸 알고부터 민영우에 대한 명주의 관심은 각별했다.
한 달이 좀 지났다. 명주는 민영우 교수실에 찾아가서 집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건 왜?”
“집에서 공부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을 찾아가려고요.”
민영우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이 학생은 정말 골치 덩어리라는 생각을 하며 우물거리는데.
“선생님 댁에 학생이 공부 때문에 찾아가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어요? 선생님, 혹시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고 계신 것 아녜요?"
“아니 아냐, 물론 그건 아니지. 그래, 그래 언제든지 찾아와. 이게 우리 집 주소야. 여기서 아주 가까워요.”
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명주는 귀티나는 젊은이가 말아쥔 타임지가 거슬렸다
영우는 강의중 결혼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당황했지만
손님-종업원 관계서 교수-학생 신분으로 변한 현실에 미묘한 감정…


일요일 아침이었다. 명주는 눈을 뜨자 두 손으로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아주 만족해했다. 아침 샤워를 하고 체경에 몸을 비추어봤다. 그 가냘프던 어깨에 보기 좋게 살이 붙어있었다. 뒤를 보니 히프에도 물이 잔뜩 올라 있었다. ‘아 이젠 됐다. 난 이미 대학생이고 나이로도 성인이다. 몸도 이제 완전히 성숙했다. 내가 남자의 사랑을 못 받을 아무런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원래 살이 안찌는 체질이어서 늘 친구들의 둥근 어깨나 툭 튀어나온 젖가슴이나 푸짐한 히프를 볼 때 마다 기가 죽었었는데 이젠 자신의 몸매가 그들보다 더 섹시하다고 생각되어 처음으로 몸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봤다. 그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등학교 일학년 때의 일을 회상했다.

영어 선생이 너무 좋아서 혼자 몰래 사모하며 애를 태우다가 하루는 영작 시험시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시험지 후면에 연애편지를 써서 제출했다. 물론 명주는 교무실 복도에 꿇어앉아 벌을 받았다.

“머리에 아직 피도 안 마른 놈이 뭐가 어쩌고 어째?” 하면서
“사제지간에 부적절한 관계로 얽히면 너도 나도 이 학교에서 쫓겨난단 말이다. 그만한 교칙은 알고 있어야지.”

그때도 명주는 몸이 너무 가냘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가 내놓고 연애하자고 했나, 남 몰래 만나면 되는 거지’ 하며 속으로 교칙이니 사제지간이니 하는 선생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민영우를 떠올렸다. 호텔에서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바보처럼 순진해 보이는 그가 명주의 관심을 사로잡았었다. 이젠 민영우한테 사랑을 고백해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 소리는 안 듣겠지 하며 그를 찍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며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한 두 시간 늘어지게 아침잠을 자고나서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그녀가 과외 지도하는 학생들의 집을 향해 걸어 나갔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호텔 일은 그만 두고 방과 후와 주말에 열심히 고등학생 과외수업을 지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세 번째 학생의 과외수업을 마쳤을 때는 저녁이었다. 집에 와서 적당히 저녁을 차려먹고 미리 사다놓은 타임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민 교수 명함을 들여다보며 그가 사는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안에 들어서니 늙수그레한 아줌마가 거실로 안내했다.

“사모님은 안 계세요?”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무슨 사모님은?”
“네? 총각 교수님이셨군요.”
민영우가 모습을 나타내면서
“공부하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었어?”
하면서
“우선 여기 와 앉지.”
두 사람이 거실 탁자를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네, 여기 이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하면서 이번 주에 막 새로 나온 타임지를 들고 와서 펼쳐놓고 미리 밑줄 친 부분을 가리켰다.
한 시간 반쯤 공부를 하고 명주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되는데 하면서.
민영우는 의외로 그녀가 꽤 실력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하며 문제 학생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다음 주 일요일에도 명주는 또 찾아갔다. 이번엔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고 한 십오 분쯤 공부하고 난 뒤에 ‘과외수업비도 안내고 이렇게 과외 공부하는 것 부담이 된다’고 하며 학교 공부는 자신 있으니 다른 얘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얘기 뭐?”
“선생님은 제가 정말 공부하러 찾아오는 줄 알았어요?”
“물론이지.”
“선생님은 외계인이세요? 왜 그렇게 순진하세요?”
“?”
“저는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좀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오기 시작한 거였어요.”
“학생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호텔에선 손님과 종업원 사이였지만 지금은 달라. 우린 교수와 학생 사이야.”
“그게 무슨 상관에요? 우린 둘 다 성인이고 성인끼리는 법적으로 결혼할 권리까지 보장받고 있는데요.”
“그렇지만 난 학자일 뿐이고 여자에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야.”
“그건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생각이에요. 제가 앞으로 선생님이 여자한테 관심을 갖도록 만들 거예요.”
“어떻게?”
“그건 이제 두고 보면 아시게 될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미혼인 건 이미 알았고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그건 왜?”
“학생이 자기가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 아녜요?”
“그렇지만 필요 이상의 호기심은 공부에 방해가 될 뿐이야.”
“선생님, 그럼 우리 인터뷰 놀이해요. 제가 먼저 삼십분 질문을 드릴 테니 그 다음엔 선생님이 기자가 되는 거예요.”
아무튼 이리하여 명주는 민영우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 해소되자 일어섰다.
“선생님, 아직 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다음주에 또 계속해요.”

명주는 영우가 온양에서 멀지않은 어느 해변 마을에 사는 꽤 부유한 명문 대갓집의 장손으로 외아들이란 걸 알았고 책밖에 모르고 자라난 말 그대로 귀공자란 걸 알았다. 별로 놀랄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 같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영우는 명주가 고아란 걸 알고는 놀랐다. 전혀 자기의 추측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명주는 엄마도 아빠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명주는 보육원에서 너무 까불고 개구쟁이여서 주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고집도 세고 선생님한테 잘 대들고 너무 조숙해서 엉뚱한 짓도 자주 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서 한 번도 일등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어서 우쭐대며 지내다가 초등학교 사 학년 때에야 비로소 보육원이라는 데가 어떤 곳이란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지독한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밥에 굶주리고 정에 굶주리며 살아온 명주는 그만큼 더 밝고 꿋꿋하게 살아야했다. 얼굴에 비치는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서 명주는 피에로처럼 가면을 쓰고 살기로 했다. 그때부터 허세를 부리는 습벽이 생겨났고 당돌하다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그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명주는 영우를 찾아갔다. 더 이상 유치하게 타임지를 들고 가진 않았다. 하루는 명주가 다녀간 뒤에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고모가 거실로 나왔다.

“얘, 영우야, 그 명주라는 학생 저렇게 자꾸 찾아와도 괜찮으냐?”
“예, 괜찮아요, 고모, 아주 불쌍한 학생이에요. 고아예요.”
“그래? 그런데 보기엔 전혀 안 그래 보인다. 항상 명랑하고 밝고 어느 부잣집 규수인 줄 알았는데.”
“공부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 제일 잘해요. 내 수제자로 길러서 유학도 보내고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냐? 벌써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단 말이냐. 설마 네 각시 삼으려는 건 아니겠지?”
“아네요. 그냥 내 애제자일 뿐이에요.”
“행여 딴 맘 먹지마라. 네 부모님 아시면 난리 날라.”

명주는 사랑받고 싶었다. 아무한테든 사랑받고 싶었다. 누군가 자길 위해주고 걱정해주고 늘 한결같이 생각해 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제 또래의 남자애들은 다 애송이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그녀의 상대는 선생님이어야 했다. 그녀가 존경하고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이 바로 민영우라고 단정 짓고 그녀의 운명을 그에게 걸었다. 이년 동안 계속 만나는 동안 민영우한테 심한 갈증을 느꼈다.

다른 연인들처럼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영우는 명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리탐구에만 여념이 없었고 명이라고 다정스럽게 부르며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는 것밖에 몰랐다. 정말 남의 애를 태우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싫으면 웃지를 말든지 왜 자기를 보면 애매한 미소를 짓느냐고 한번 따져보고 싶었다.

사 학년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우는 명주에게 말했다.

“이 아파트는 방학 동안 비어 있을 테니 네가 와서 있어. 집도 봐줄 겸 말이야.”
“싫어요.”
“왜 싫어? 네가 사는 골방보다 얼마나 더 좋은데.”
“나 선생님 따라가서 방학 동안 같이 있으면 안 돼요?”
“뭐? 글쎄, 그럴까. 그거 좋겠구나. 우리 집엔 방도 많으니까.”

고모가 어머니한테 미리 연락을 하고 방학이 되자 세 사람은 짐을 꾸려 가지고 온양에 가서 택시를 잡았다. 꼬불꼬불 해안선을 따라 한 시간쯤 내려가니까 영우네 집이 나타났다. 택시에서 내려 한 백 미터는 걸어가야 했다. 부모님한테 명주를
소개했다.

“제가 아끼는 제자에요. 졸업하면 제 조교로 대학에 남을 겁니다.”
“네 고모한테 이 학생 얘긴 대충 들었다. 머리가 그렇게 좋다던데 인물도 아주 준수하구나.”
명주하고 고모하고 한방을 쓰기로 하고 각자 짐을 풀었다. 그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이 명주는 영우 방에서 늦도록 얘길 나누었다.
“선생님, 이 집은 꼭 절간 같아요. 너무 인적이 없고 주위에 다른 집은 한 채도 없잖아요. 외딴집은 너무 외롭잖아요?”
영우는 이집의 내력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일정시대 경성에서 고관대작을 지내셨는데 송강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낙향하신 뒤에 여생을 녹수청산에 파묻혀 시름 모르는 자연과 동거하겠다는 꿈을 안고 여기다가 집을 지으셨는데 앞에 보이는 바다는 녹수요 뒤에 있는 산은 청산이라 생각하고 만족해 하셨대. 내일 나가보면 알겠지만 뒷산의 끝자락이 나지막한 언덕으로 바뀌면서 서해바다로 깊숙이 돌출하여 작은 반도를 이뤘는데 그 끝에 우리 집이 겸손하게 좌정을 하고 있는 거야. 앞을 보면 삼면이 바다요 뒤를 보면 육중한 산이라 풍광이 수려하고 산새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또 그 소리에 잠을 깨면서 그렇게 정적을 즐기시며 사셨대.

우리 집 오른쪽으로 이 언덕과 건너편 산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소금물 호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바닷물이 다 빠져나가면 조약돌 밭으로 변해버리고 만조 때는 파도가 너무 세어서 그 호수를 이용할 수가 없으셨대. 그래서 할아버지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입구에 높은 방파제를 구축하고 바닷물의 출입구를 최소한도로 좁혀놓았더니 정말 쓸모 있는 호수가 되더래. 할아버지는 그 호수를 자신의 아호를 따서 월인호 [月印湖]라 이름 짓고 꽤 큰 배를 띄워놓고 철 따라 친구들과 기생들을 불러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 시조도 읊고 기생들의 장구소리와 거문고 소리에 장단 맞추어 춤도 추고 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시며 세월 잊고 소일하셨다는 거야.”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겠네요.”
“집 주위엔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어서 농부들이 경작할 수도 없고 집을 지을 수도 없는 아무 쓸모없는 땅이라 우리 집이 절간처럼 고립된 거지.”

다음날 아침 명주가 앞마당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완만한 나무 계단이 있어 쉽게 월인호 까지 내려가 볼 수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또 명주와 영우는 마주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마치 직업인들이 아침 먹고 나면 출근하듯이 이 두 사람은 기계적으로 매일 그렇게 했다.

“선생님, 오늘은 우리 ‘말 이어가기’ 게임을 해요.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 주기에요.”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보자.”
“선생님이 먼저 시작하세요.”
“그래. 그럼 공부”
“부인”
“인구.”
“구름.”
“...........”
“지금 선생님 차례니까 빨리 말해야 돼요.”
“내가 졌다. 그래. 소원을 말해봐. 약속한 대로 들어줄게”
“저기 있잖아요. 다음에 보름달이 뜨면 월인호에 내려가서 배타고 좋은 음악 들으며 달구경하는 거예요. 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아요.”
“너무 쉬운 소원이라 실망했네. 그렇지 않아도 한번 그렇게 해 보려고 했는데.”

매일 저녁이면 영우 방에선 두 사람의 이야기 소리 아니면 조용한 명상음악이 흘러나왔고 그리고 영우가 사진첩을 펼쳐놓고 옛날 사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소리 또는 영어로 말을 주고받는 소리도 들리곤 했다.

기다리던 보름달이 떴다. 둘은 담요와 휴대용 테이프 녹음기와 모기향을 준비해 가지고 계단을 내려갔다. 여름이지만 바다 공기는 덥지 않았다. 영우가 우선 선미에 모기향을 피웠다. 둘은 담요를 두 겹으로 배 바닥에 깔아 놓고 나란히 누웠다. 그러고는 녹음기를 틀어 베토벤의 월광곡을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빛은 창백하고 월광은 온천지를 은백색으로 물들였다. 사물의 명암이 줄을 그어 놓은 듯 확연하여 낮과는 사뭇 달랐다. 호숫물은 새까맣고 바다에서 들어온 파도가 출렁거릴 때는 그 흰 파도가 희다 못해 형광처럼 빛을 발했다. 세상에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이윽고 둘은 눈을 감았다. 달빛이 월광 곡의 곡에 맞추어 달에서부터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며 아지랑이 같이 하늘하늘 그들한테 내려오고 있는 것이 감은 눈에 보였다. 얼마 후 명주는 달빛에 홀린 듯이 상체를 약간 일으켜 세우고 눈을 감고 있는 영우의 얼굴을 한참 내려다봤다. 이마, 눈, 코를 들여다보다가 이젠 입술을 뚫어지라고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자기 입술을 살포시 영우의 입술 위에 포갰다. 몇 초가 지났을까.


"아파트가 방학동안 비어 있을 테니 네가 와서 봐주렴"
"선생님, 보름달 뜨면 배타고 음악 들으며 달구경 해요"
뇌출혈로 쓰러진 영우는 인사불성으로 앙상한 모습만…

영우가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우가 돌아누우며 명주를 으스러지라고 끌어안더니 열정적인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둘은 생전에 처음 해본 키스인데 많이 해본 사람들처럼 열광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키스에 몰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둘은 입술을 떼고 뜨거운 숨을 헉헉 내쉬면서 반듯하게 도로 누웠다.
또 몇 초가 흘렀다. 마침내 두 몸이 아래위로 합장을 하더니 서서히 파동을 치기 시작했다. 언제 벗었는지 둘은 아랫도리에 옷이 없었다. 둘은 격한 포옹과 동시에 숨쉬길 멈췄는가 싶더니 영우가 조심스럽게 포옹을 풀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달은 저만치 옮겨간 자리에서 여전히 세상을 은백색으로 싸늘하게 물들이며 그들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이윽고 영우가 입을 열었다.
“결혼 전 까지는 동정을 지키려고 했는데.”
“후회하세요?”
“아니. 그냥 미안해서.”
“뭐가요?”
“허락도 없이…….”
“사랑도 허락을 받고 해야 되나요?”
“나도 어쩔 수 없이 속물인 가봐. 혼자 고고한 채 해왔지만 나도 역시 남자는 남자라…….”
“선생님이 남자란 걸 이제 알았어요?”
“아무튼 미안해, 명아. 내가 지켜주고 아껴줬어야 되는데…….”
“지금까지 잘 지켜 주셨잖아요. 사실은 제가 미안해요. 제가 선생님을 정복했거든요. 희망사항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무거운 책 더미에 삼십일 년 동안 깔려있던 남자의 본능적인 욕망이 분출구를 찾아 활화산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를 내며 한번 폭발하더니 이때까지 명주가 리드해오던 두 사람의 관계 발전에 대한 주도권을 영우가 쥐었다. 이젠 어두운 별 밤에도 둘은 저녁만 먹으면 회중전등 하나 들고 나무계단을 내려갔다. 배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돌기도 했고 누워서 천상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속삭이기도 했고 사랑도 했다.
영우는 바위 덩어리가 언덕에서 굴러내려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바다에 빠지듯이 아주 깊숙이 사랑에 빠져버렸다. 바다에 빠진 바위가 스스로는 물 위로 올라올 수 없듯이 영우는 한번 사랑에 깊숙이 빠져버리자 스스로는 사랑의 동굴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주 깜깜한 밤엔 영우가 명주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아서 새벽에야 고모 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방학이 끝날 무렵 고모가 눈치를 채고 오빠한테 조카와 학생과의 관계를 다 말하고 이제 뜯어말리긴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영우의 부모가 둘을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말을 꺼내기 전에 영우가 무릎 꿇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저희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영우야, 네가 그럴 줄은 이 애비도 어미도 상상도 못했구나. 공부밖에 모르고 아무리 과분한 신붓감을 소개해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네가 이게 웬일이냐. 혼인은 인륜대사인데 네 어찌 마음대로 여자를 가까이 하여 무책임한 일을 벌였단 말이냐.”
“예,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바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고아라는 걸 빼놓고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아입니다. 그렇지만, 근본도 모르는 고아는 아닙니다. 보육원에 가서 기록을 다 확인해 봤습니다. 친가는 파평 윤씨고 외가는 안동 권씨입니다. 무엇보다도 저희는 지난 이년 반 동안에 정이 깊이 들어 이젠 헤어져서는 둘이 다 살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 덕으로 일찌감치 개명하신 아버지라 크게 노여워하시진 않았지만 금방 혼인 승낙은 안 하셨다. 일주일을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 세분이 몇 번 그 문제로 상의를 하시더니 서울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명주가 졸업하면 바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우선 영우가 종손 독자니까 빨리 후손을 보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다음해 이른 봄에 명주가 졸업하자 대학원에 진학하고 둘은 결혼식을 올렸고 명주는 영우의 조교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신혼생활에는 하루하루 행복이 넘쳐흘렀다. 명주는 난생 처음으로 자기를 위해주고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진짜 가족을 갖게 됐고 영우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됐다. 불 끄고 자다가도 달빛이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을 비추면 누구라 없이 먼저 깨난 사람이 머리맡에 있는 녹음기를 틀어 월광곡을 들었다. 둘은 그때부터 낮은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명아, 넌 네가 나한테는 유일무이한 여자란 걸 알지. 너 앞에도 없었고 너 뒤에도 절대 없을 거야.”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한테도 당신뿐이에요. 당신 없으면 난 못 살 것 같아요.”
“나도 그래. 난 내가 캥거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단다. 앞 배에 있는 큰 주머니에 너를 넣고 안고 다니면서 잠시도 너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단다.”
“나도 그래요. 난 우리가 원앙새 커플이라고 착각하기도 해요.”
영우는 아내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로 말을 대신한다. 명주도 남편의 말에 감동하여 뜨거운 입술로 받아드린다. 이윽고 월광이 그들을 지나가고 나면 둘은 아주 곤한 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원래 영우는 명주가 졸업하면 미국에 유학을 보내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해서 대학 강단에서 평생을 함께 보낼 계획이었는데 부모님은 어서 손자를 안아보고 싶은 욕심에 명주를 혼자 유학 보낼 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셨지만 그것보다도 영우는 이제 명주와 잠시도 떨어져 살아갈 자신이 없어 유학 계획은 접어 버렸다. 둘은 같이 출근하고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같이 퇴근하고 같이 먹고 자고 아주 사이좋은 잉꼬부부로 많은 동료들의 부러움 속에서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이년이 흘렀다. 어느 날 명주의 조교실에 한 학생이 노크도 없이 뛰어 들어오더니
“윤 선생님, 큰일났어요. 민 교수님이 쓰러지셨어요. 빨리 강의실로요.”
명주가 강의실에 달려가 보니 사람들이 쓰러진 영우 주위에 몰려들어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영우는 이미 인사불성 상태였다. 사이렌 소리가 나며 앰뷸런스가 도착하더니 구급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강의실로 달려왔다. 이 광경을 보며 명주는 실신하고 말았다. 급히 명주도 병실로 옮겨졌다. 얼마 후 깨어난 명주는 영우 병실에 가서 영우를 애타게 불러보고 흔들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명주는 눈물투성이가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와서 담당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고 했다.
“심한 뇌간 출혈로 다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환자의 생명을 지키며 시간을 벌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식물인간? 명주의 머릿속에 이 단어가 번개처럼 휙 지나가는 순간 눈앞이 노래지더니 명주는 또 한번 정신을 잃었다.
시부모님들이 올라오셔서 병실을 특실로 옮기고 고모님을 환자한테 붙여놓기로 하시곤 곧 집으로 내려가셨다. 명주는 남편의 간병을 자기가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고모님은 그들의 아파트에 기거하시며 명주가 먹을 음식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하루에 한두 번씩 다녀가시고 환자 곁에는 명주가 스물네시간 붙어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명주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합장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고모님이 오시면 잠깐 밖에 나가 가까운 곳에 있는 텅 빈 성당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합장하고 성모 마리아께 기적을 빌었다. 아침에 깨면 명주는 영우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영우씨, 밤새 잘 주무셨어요? 오늘도 이렇게 살아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그냥 이렇게 누워 숨 쉬고 있어주기만 하면 돼요. 살아있는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러니까 죽지만 말아줘요. 알겠죠?”
명주는 대답 없는 영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줄줄 눈물을 흘린다. 명주는 나날이 초췌해 가고 있었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 년이 됐다. 영우에게선 아무런 희망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명주의 얼굴은 폭삭 삭아가기만 했다. 몸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 어느 날 고모가 와서 영우는 자기가 보고 있을 테니 빨리 아파트에 가보라고 했다. 시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명주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아가, 네 마음을 우리가 왜 모르겠니.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제 그만 고집을 꺾고 영우는 우리한테 맡겨라. 병원 측에서도 보호자가 간병하는 걸 원치 않는다. 영우 같은 경우엔 특별 간병교육을 받은 전문 간병인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간병인이 하는 일까지 간호사가 해야 하니까 일손이 너무 딸린다고 간병인을 고용해서 영우를 돌보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네 거울 좀 한번 봐라. 네가 먼저 세상 뜰까봐 겁이 난다.”
이번엔 시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마침 얼마 전에 영우 선배 하나가 미국에 교환교수로 나갔는데 네 얘길 했더니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자기한테 보내기만 하라고 하더구나. 여기 네 여권과 비행기표 그리고 돈 넉넉하게 마련해 왔으니 빠른 시일 내로 떠나도록 해라. 일단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면 그 박상기 교수란 사람이 너를 마중해 줄 것이다. 그 사람과 상의해서 공부를 계속하든지 취직을 하든지 아니면 한 일년 여기 일 깨끗이 잊어버리고 여행이나 다니며 몸을 추스르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결정하거라.”
명주의 답도 기다리지 않으시고 아버님은 두툼한 봉투를 하나 남겨 놓으신 채 방을 나가셨다. 시어머니는 계속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며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걸어 나가셨다.
명주는 병원으로 돌아와서 고모한테 시부모님 말씀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고모는 아주 잘 생각했다고 말하며 오늘 아버님이 간병인을 구해 놓으시고 가셨으니까 내일 아침부터 간병인이 나올 거라고 했다.
명주는 대충 신변정리를 하며 출국준비를 마쳤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병원에 들렀다. 영우의 손을 잡고 오열하며 말했다.
“여보, 영우 씨, 나 지금 미국으로 떠나요. 일 년 후에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혼자 떠나시면 안돼요. 난 단 하루도 아니 한시도 당신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거예요. 매일 밤 당신의 영상을 끌어안고 잠들 거예요. 부디 안녕, 여보.”
명주는 영우의 눈꼬리에 깨알만한 보석 알이 하나 박힌 듯 빤짝이는 빛을 보았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눈물 방울이었다. 간호사한테 물어봤더니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명주의 작별인사에 영우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거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박상기가 얼른 알아보고 명주를 자기 차로 안내하며 말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에 마침 작은 아파트가 하나 비어서 우선 그리로 거처를 정해놨으니 거기서 천천히 여독을 풀고 푸욱 쉰 다음에 앞으로의 일을 얘기해 봅시다.”
“박 교수님은 거기서 가족하고 같이 사세요?”
“아니, 데리고 올 형편이 못돼서 혼자 들어 왔죠.”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박 교수가 늦은 아침에 명주의 아파트 문을 노크했다.
“바로 앞길 건너편이 시립공원인데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면서 얘기나 좀 나눌까요?”
아파트 건물 출입구에서 앞길을 건너가니 초라하고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사람 대신에 낙엽들이 모여 앉아있는 벤치가 여기저기 쓸쓸하게 흩어져 있었고 아름다운 단풍잎들을 다 떠나보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슬픈 표정으로 곁에 있는 벤치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명주는 그 황량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쓸쓸해서 좋았다. 영우 없는 이 곳에서 혼자만 즐거울 수는 없었다. 둘은 천천히 공원 변두리를 걸어가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다.
“여기 시립대학에 대학원이 있긴 한데…….”
“아네요. 저는 공부를 계속할 마음 전혀 없어요. 남편과 함께 같은 길을 걷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던 건데 이젠 그게 아니잖아요. 남편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돌아와서 제 음성을 알아들을 수만 있게 되면 저는 남편을 고향집으로 데리고 내려가서 제가 곁에서 평생 친구해 주다가 그 사람 떠나면 저도 따라갈 거예요.”
“그렇군요.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의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으니까 민 교수한테도 희망이 있다는 걸 나는 믿어요.”
“네, 저도 그 희망으로 살고 있어요. 남편 주치의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했어요.”
“혹시 취직 생각은 있는지?”
“네, 아주 돌아버리기 전에 뭐라도 붙들고 있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영어 회화에 자신이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명주 씨한테 아주 잘 맞는 자리를 하나 생각해 놓은 게 있거든요. 내가 여기 시립대학에서 이중 언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외국에서 온 학생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지요. 요즘 한국학생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서 한국인 도우미가 필요하던 참인데 명주 씨가 아주 적격일 것 같아요.”
“저한텐 너무 좋은 자리지요. 더구나 박 교수님을 돕는 일이니 낯선 미국인들과 상대 안 해도 되고요.”
명주는 다음달부터 박 교수의 보조 교사로 일하기로 했다. 한 아파트 건물에서 같이 살며 한 차로 같이 출퇴근하면서 같은 일을 하니까 마치 한국에서 영우와 같이 살며 같이 하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해 여름 방학 때는 둘이 함께 한국엘 나갔다. 영우는 고모를 통해서 들었던 대로 병엔 차도가 없었으나 얼굴은 살도 좀 오르고 혈색도 전보다 좋았다. 주치의는 이런 상태로 이십년 이상 사는 환자를 많이 보았다고 하며 무엇보다 영우는 젊고 지병이 하나도 없으니까 오래 살 확률이 높다고 했다. 명주는 영우의 생명이 유한부 인생이 아니라는 말에 우선 안심했다.
“여보, 명주가 당신 보러 미국에서 왔어요. 당신 얼굴은 많이 좋아 보이는데 아직도 제 말소리 안 들리세요? 박상기 교수님이 미국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명주는 영우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안하기로 했다. 분명히 영우는 자기 앞에 누워 있는데 진짜 영우는 거기에 없었다. 거기엔 영우의 껍데기만이 있었다. 혼이 빠져나간 영우는 이미 영우가 아니었다. 처음엔 아직 숨 쉬고 있는 영우가 고맙다고 귀에다 대고 수없이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젠 혼이 빠져나간 사람 앞에서 혼자 속삭이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일 년 전에는 밤에 혼자 영우를 지키며 대화를 할 때 외로운 줄 몰랐다. 영우가 겉으로 반응은 없어도 속으로는 다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껍데기만 남겨놓고 혼이 나간 영우하고는 이제 같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너무 너무 외로웠다. 이 지독한 외로움이 명주를 말려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외로웠다. 명주는 소리 없이 손수건을 계속 눈에 대고 있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명주는 박 교수와 함께 미국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주 친근해지고 정도 들어서 친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냈다. 박 교수가 영우하고 비슷한 점도 많고 해서 쉽게 가까워질 수가 있었다. 아침은 각자가 간단하게 해결했지만 점심은 교수식당에서 박 교수가 샀다. 퇴근하면서 둘은 식료품상에 들러서 장을 보고 명주가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후엔 같이 텔레비전 보고 음악도 듣고 낮에 학생들과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홉 시쯤이면 헤어졌다.
명주는 출근하지 않는 날 아침이면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파트 옆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명주는 아파트 옆으로 길게 뻗어나간 좁은 외줄기 도로 양쪽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공공건물과 상점들을 보며 미국에 이렇게 작은 도시도 있나 싶었다. 처음엔 낯선 거리였지만 이젠 정이 들어 창밖을 내다 볼 때마다 늘 이 조용한 소인국 같은 작은 도시에 영우와 같이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밤엔 서울 아파트에서처럼 달빛이 그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런 밤이면 박교수가 저녁을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명주는 녹음기 하나를 들고 앞 공원으로 향했다. 아무 벤치에나 앉아서 달을 보거나 공원 안을 거닐며 월광곡을 들었다. 달을 보고 앉아 있으면 월광곡이 저절로 들려왔고 걸으면서 월광곡을 들으면 그 선율이 타고 내려오는 달빛이 저절로 보였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빛에 젖어 있다 보면 으슬으슬 한기를 느낀다. 그때서야 명주는 아파트를 향해 발을 옮긴다.
"한국인 영어 도우미로는 명주씨가 적격일듯"
박상기 없이 혼자 살 생각에 고독감만 엄습
"영우는 끝내 저 세상에…불효막심한 놈이야"

왜 달빛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을까. 왜 월광곡은 들어도 들어도 좋을까. 방에 돌아오니 창문으로 들어왔던 달빛은 떠나고 없었다.
어떤 밤엔 자다가 달빛이 얼굴을 비추면 잠이 깬다. 반사적으로 녹음기를 튼다. 그러나 거기엔 영우만이 없었다. 서울에서 영우와 달밤을 보냈던 아파트에서의 추억이 추스를 수 없을 만큼 명주의 마음을 쥐어짰다.
또 일 년이 지났다.
박상기 교수의 교환교수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윤 선생, 이번 주 강의가 내 마지막 강의가 될 거야. 다음 주 월요일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거든.”
명주와 점심을 같이하며 박 교수가 한 말이었다.
“작별의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교수님, 너무 서운해요.”
명주는 일요일 정성껏 장을 봐가지고 와서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박 교수는 여느 때처럼 찾아와 식탁에 앉았다. 포도주를 한 잔씩 기울이고 둘은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명주는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찬이라고 생각하니 밥이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먹고 있는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수저를 놓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눈물을 수습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니 박 교수도 수저를 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를 많이 이해해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이네요.”
“아냐, 윤선생이 학교 안팎에서 날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이 재미없는 사람하고 이년씩이나 한결같이 동무 해주고, 고맙기로 말하면 내가 더 고맙지.”
명주는 자기를 항상 지나치게 신사적으로만 대해주고 연구밖에 모르고 정도만 걷는 군자 같은 박 교수가 영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고 저녁 아홉시만 되면 기계적으로 일어나 나갈 때마다 좀 더 있다 가지 하며 아쉬워했었다.
박상기는 명주한테 다른 생각을 품어본 적은 없었지만 옆에 있지 않으면 괜히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특히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텅 빈 방에 들어서면 너무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내일이면 가족 분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지 않으세요?”
“그렇기도 하지만 윤 선생을 수만 리 이국땅에 홀로 남겨놓고 떠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착잡하군.”
아홉시가 되자 박상기가 일어서면서
“언제든지 한국에 나오게 되면 연락 줘요.”
“내일 떠나시는 건 보지 않겠어요.”
명주는 다음날부터 박상기 없이 혼자 살아나갈 생각에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날씨도 차고 해서 오늘은 앞 공원에 나가지 않기로 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다. 포도주 덕인지 명주는 금세 깊은 잠에 푹 빠져들었다.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침 준비할 생각도 안 하고 넋을 놓고 앉아 있다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명주가 근무하는 이곳 시립대학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이 도시의 조용한 거리가 명주를 보자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다. 명주도 손을 흔들어 답을 했다. 명주한텐 정다운 고향의 거리가 따로 없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명주에겐 엄마의 젖 냄새가 나는 고향은 아무 데도 없었다. 명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신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련다. 영우가 눈을 떴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며 살련다. 병실에 누워 있는 영우는 영우가 아니었다. 하늘은 나를 위해 영우를 생기게 했고, 영우를 위해 나를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런데 영우는 지금 이곳에도 한국에도 없다. 한국엔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이곳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학생들도 있고 정든 거리와 공원도 있다.”
학생들 생각이 나자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박교수 없이 처음으로 혼자 출근을 하고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했다. 초승달이 창문을 통해 보였다. 도저히 방안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 공원으로 나갔다. 이제 낙엽조차 다 떠나버린 벤치에 혼자 앉아 초승달이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걸 바라보았다. 저녁이고 낮이고 이 공원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영우를 대신해서 언제나 명주를 희생적으로 도와주던 박상기, 친오빠같이 명주가 스스럼없이 따르고 늘 그녀를 챙겨주던 무척 고맙고 착하기만 했던 그 사람도 이젠 옆에 없다. 이년 동안을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항상 같이 있었던 그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주한테는 그 사람이 남자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영우와 비슷한 점이 그렇게도 많은 그 사람이 싫지 않을 뿐이지 손 한번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명주는 이제 다시는 그 누구하고도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걸 박상기와의 관계를 통해 재확인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고독만이 옆에 남아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영우가 사무치게 그립고 영우와 같이 있었던 순간들이 견딜 수 없도록 그리웠어도 박상기가 옆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외로움을 타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서럽고 외로운 존재란 걸 알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제 완전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명주의 눈에 불현듯 영우가 보였다. 그가 저만치 서서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낮은 음성으로 명주를 부르며 다가오는 모습이 짙은 안개에 쌓여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고 있던 눈물을 닦아내니 안개도 영우도 간 곳 없고 교교한 달빛만이 싸늘하게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영우씨, 따라갈 거예요. 그때 영우씨 따라 온양 집에 갔듯이. 그 때처럼 또 절 데려가 주세요.”
진정으로 애원했다. 초승달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더니 한 일주일 지나니까 달빛은 명주가 잠든 후에야 살금살금 기어 들어와서 회중전등으로 비추듯이 명주의 전신을 비추었다.
명주에게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자다가 달빛이 얼굴을 비추면 벌떡 일어나 얇고 하얀 잠옷 위에 너무 길어서 잘질 끌리는 역시 얇고 하얀 홈웨어를 걸쳐 입고 소리 안 나는 펠트 샌들에 발을 집어넣고 살며시 문을 열고 나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서 도 한번 살며시 건물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스스로도 자신이 유령같다는 생각을 하며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길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간다. 달빛이 온 세상을 은백색으로 칠해 놓았다. 그 안에서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마치 몽유병자인 양 마냥 걷는다. 귀에는 월광곡이 달빛으로부터 흘러들어온다.
백야의 하얀 공간을 배경으로 커다란 스크린이 비스듬히 걸려 있고 명주의 지나간 반생이 고장 난 영사기에서 비춰지는 무성영화처럼 한 장면씩 한 장면씩 아주 천천히 흐릿하게 지나간다. 그러나 영우를 처음 만난 장면부터는 총천연색으로 음성까지 나온다. 어떤 장면은 지우기도 하고 수정도 하고 새로 만들어 집어넣기도 하며 편집을 해나간다. 지금 명주는 자기가 영화감독이 되어 지나간 반생을 리메이크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보통 한 장면의 재창조 작업은 하루도 걸리고 이틀도 걸렸다.
한 장면이 끝나면 아무 벤치에나 좀 앉아 있다가 달이 기울어지면 내일 다시 작업을 계속하기로 하고 아파트로 돌아간다. 숨 막힐 듯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이며 명주는 아침까지 깊은 잠에 푸욱 빠진다.
세월의 강이 일년을 흘러가더니 또 가을이 왔다. 명주의 유령놀이는 여전했다. 이제 지난 일년 동안 만들어 오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닥쳐올 겨울엔 공원에 못 나올 테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끝내야 했다. 그 마지막 한 장면은 내일 마무리를 져야지 하고 돌아서는데 아주 낮은 소리로
“명아, 명주야”
라고 부르는 영우의 음성이 들렸다. 산울림처럼 되풀이 하던 그 음성이 점점 작아지더니 아주 끊어져 버렸다. 월광곡은 계속 들리고 있었다.
명주가 방에 들어서니까 달빛도 자러갔는지 거기 없었고 따라서 월광곡도 들리지 않았다. 아까 공원에서 들었던 영우의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여 누울 수가 없었다. 전등을 켰다. 시간을 보니 한국은 지금 새벽 다섯 시였다. 고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고모님, 별일 없지요?”
“네가 다 알고 전화하는 게 아닌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왜요?”
명주의 불안한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
“나 방금 병원에서 돌아온 길이란다. 영우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한 시간 전에 세상 떴단다. 에이 불효막심 한 놈…….”
명주는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명주는 기어이 올 것이 와버렸다고 생각하며 영화의 마무리를 지금 가서 짓자 하고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그 이튿날 이른 아침 공원 청소부가 벤치 위에 소복을 하고 길게 누워있는 한 젊은 여인을 발견했다. 몸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수상 소감
"뇌출혈-반신불수 딛고 이룬 기쁨"

우선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과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 많은 재미교포에게 이런 황금 기회를 마련해주신 중앙일보사에 뜨거운 감사와 성원을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의 졸작을 가작으로 뽑아주신 홍승주 작가님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수상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몇 년 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이른 여섯 살의 제가 허리에 히팅팻을 두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쪽 손으로 보름을 꼬박 타자를 치는 일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특별한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몸이 불편해 망설이는 저에게 꼭 응모해보라고 적극 권장해주신 시인 김용철 박사님 이 소설의 초고를 읽고 값진 조언을 해준 수필가 박관순형 언제나 제 소설을 애독하며 진심 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던 장영기 교수 이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가슴속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삼십 분만 앉아 있어도 발이 붓고 요통이 심하다고 호소하는 저에게 아예 컴퓨터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성화를 대던 아내가 이 소설을 집필할 때는 오히려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써보라고 옆에서 밀어주었어요. 이들이 없었다면 전 정말 소설이고 뭐고 쓸 용기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중앙일보사에 감사 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권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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