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번외경기' 앞둔 자바시장의 꿈
김문호/경제부 차장
더불어 살기 모색하는
사업가의 열정 키워야
장사꾼과 사업가. 사실 별반 차이는 없다. 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이다. 전에야 구멍가게를 운영하면 주인 수퍼마켓 쯤 경영하면 사장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다 뭉뚱그려 너나없이 사장이다.
하지만 장사꾼과 사업가 사이엔 여전한 차이가 있다. 꿈(Dream)이다. 장사꾼은 꿈이 없지만 사업가는 큰 꿈을 꾼다. 사업가는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와 사회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큰 목표가 있다.
그렇다고 장사꾼은 목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계획을 세우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 불철주야 일을 한다. 그렇게 해서 돈도 벌고 가족도 부양한다. 좀 더 열심히 일해 제법 큰 돈을 만지기도 한다. 여기저기 부동산도 사 놓고 노후를 대비한다. 그러나 힘들게 일해 안정된 거래처를 확보한 후엔 더 큰 꿈을 꾸지 않는다. 사업체가 그대로만 굴러가 주길 바랄 뿐이다.
자바시장에서 제법 큰 부를 일궜다는 사장들도 그런 모습이 많다. 그들에게 '함께'라는 단어는 별 의미 없다. 미래라는 말보다는 '지금 당장'만이 중요해 보인다.
한인 의류상들이 모여 만든 LA페이스마트라는 곳이 있다. LA다운타운의 샌피드로와 14가 코너에 있는 4층짜리 흰색 건물이다. 요즘 이 곳을 중심으로 의류상들 사이에 새로운 기운이 싹 트고 있다. 제대로 한 번 사업을 해보자는 움직임이다. 기존에 거래하던 대형 리테일러들의 주문에만 목숨걸지 말고 '다가서는 마케팅'을 펼치자는 것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고 다음 달 중순엔 패션쇼도 준비하고 있다. 나아가 자바란 이름을 LA 한인 의류상들의 브랜드로까지 발전시켜 보자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경기가 조금씩 풀려 가고 있지만 아직 자바엔 봄 기운조차 닿지 않았다. 지난 해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다. 신상품을 기획해 볼 여유조차 없으니 '포에버 21'이나 '레인보우'같은 대형 리테일러들의 요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말만 매뉴팩처지 자바상들은 큰 바이어 서너명에 예속된 하나의 거대한 하청공장과 다름없다"는 게 자조섞인 넋두리다. "정말 이대로 가면 지난 30년 넘게 일궈 온 자바 한인의 영광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게 뜻있는 의류상들의 반성이다.
6월의 패션쇼는 의류업계에서는 '번외경기'다. 여름 상품을 내 놓기엔 늦었고 그렇다고 가을 상품을 출시하기는 좀 이르다. 섣불리 가을 물건을 쇼에 내 놓았다가 경쟁업체에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LA페이스마트를 중심으로 의류상들은 패션쇼를 펼치기로 했다. 죽어가는 자바도 살리고 한인 커뮤니티와의 동반성장도 꾀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라티노 커뮤니티와도 연계해 21일 LA페이스마트에서 열리는 그들의 자선 패션쇼도 돕기로 했다.
물론 LA페이스마트 상인들도 '나도 좀 살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한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그림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인 커뮤니티와 자바의 다음 세대까지도 생각하는 큰 뜻을 담았다. 패션쇼를 8월과 10월에도 계속해서 열고 한인 커뮤니티의 축제가 될 만한 프로그램도 넣어 '함께 크자'는 방향으로 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아쉬움이 있다면 큰 꿈에 더 많은 의류상들이 아직까지 동참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장사꾼으로도 충분한 데 굳이 사업가가 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더 크게 멀리 보면 파이를 키울 수 있음에도 당장의 이익을 놓칠까 봐 손사래를 친다. 자바의 장사꾼으로 남느냐 사업가로 기억될 것인가는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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