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센터 꿈 이룬 일본계] "일본 커뮤니티만 위한 것 아니다" 명분·타이밍 적중
'LA부도칸' 건축가 하야히코 다카세의 '40여년 회상'
공감하게 외부를 설득하는 것
부도칸은 바로 '연결고리'
미-일·동서양·각 세대 이어
'신 리틀 도쿄' 연관은
역사와 정체성 회복하는 것
17일 오전 10시15분. LA시의회에서 리틀도쿄의 다목적 체육시설인 'LA부도칸' 건립 승인안이 최종 통과됐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 때 LA시의회장 한쪽에서는 한 노인이 잠잠히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하야히코 다카세(81)씨는 LA부도칸의 건축 디자이너다. 40여 년 넘게 부도칸 프로젝트와 함께 했던 하야히코씨를 통해 LA부도칸 건립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LA부도칸의 디자인은 언제 그려졌습니까.
"저는 1964년도에 일본에서 다니던 건축회사를 통해 '신 리틀 도쿄' 건립을 위한 목적으로 LA에 왔어요. 그때 한 일본계 아이가 리틀도쿄 길거리에서 공놀이하는 것을 한참 동안 보게 됐죠. 영어를 쓰는 아이였는데 길거리는 학교 체육관이 아니잖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어요. 그 후로 40년 동안 LA부도칸을 제 마음속에서 그려 왔습니다."
- '신 리틀 도쿄'는 무엇이고 체육관 건립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당시 리틀 도쿄는 지금과 달리 매우 황폐했어요. 세계 2차대전으로 인해 미국 내 일본인들이 수용소로 옮겨 갔다가 다시 하나 둘씩 돌아오면서 '신리틀 도쿄' 건립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죠. 일본 커뮤니티의 체육관 건립의 꿈은 '신 리틀 도쿄'의 부흥 역사와 정체성 회복과 맞물린 것입니다."
- LA부도칸 건립이 승인되기까지 고비는 없었나요.
"그 사이 고비가 왜 없었겠습니까. 우선 1990년대 초반까지 크고 작은 커뮤니티 미팅들을 통해 체육관 건립에 대한 여론만 있었죠. 하지만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 단체가 필요했어요. 리더역할을 리틀 도쿄 서비스센터(LTSC)가 맡는 과정에서도 부지선정이나 건립 명분 등에 다양한 주장들이 있었죠."
- 외부적으로도 부딪히는 문제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를 설득하는 것이었죠. 일본 커뮤니티만을 위한 명분은 절대 먹히지 않았어요. 커뮤니티를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목적이 필요했죠. 그때부터 우리는 리틀 도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음 세대들과 LA시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꿈'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 명분.타이밍이 중요하단 말이죠.
"LTSC를 중심으로 체육관 건립을 위해 일미 국립박물관 일미 문화센터 등 다양한 단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자료를 모으며 함께 명분과 목적을 세우는 작업에 힘을 쏟았어요. 단순히 스포츠뿐 아니라 각 분야의 전통을 체육관 건립 명분에 녹이면서 이를 LA시의 이익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목적으로 직결시키는데 주력했어요."
- 단순히 '명분 전달'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다음 세대의 중요성을 함께 역설했어요. 특히 2009년에는 어린이들이 리틀 도쿄 거리를 마음껏 뛸 수 있도록 '펀 런(Fun run)'이라는 행사도 개최했습니다. LA부도칸은 커뮤니티의 많은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예전에는 프로젝트 이름이 '리틀도쿄 레크리에이션 센터'였다고 하던데요.
"프로젝트명이 'LA부도칸'으로 변경된 것은 2009년입니다. 이는 1964년 올림픽을 위해 도쿄에 건립됐던 '부도칸' 체육관이 롤모델인 것이죠. 현재 도쿄의 부도칸은 스포츠뿐 아니라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다목적이라는 컨셉을 담고 있는 명칭이라 모두에게 어필 되기에 충분했죠. 또 '부도칸'이란 이름은 일본인 모두가 아는 명칭으로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죠."
- 건축가로서 부도칸에 담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다리(bridge)가 되고 싶었어요. 나라와 나라 동양과 서양 세대와 세대 리틀 도쿄의 전통과 LA의 문화를 잇고 싶었어요. 40년간 마음속에 그려왔던 부도칸이 이제 현실로 지어지게 됐네요."
☞하야히코 타카세
오늘날의 개성있는 리틀 도쿄 건축물 구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 했던 하야이코 옹은 1930년에 태어나 국립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으로 유학, 하버드 대학(1956년)에서 건축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내 건축회사에서 일을하던 도중 LA로 건너와 리틀 도쿄내 주요 건축물을디자인했다. 그의 주요 디자인 작품으로는 히가시 혼간지사원, 옛 뉴 오타니 호텔을 꼽을수 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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