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론] 거덜난 그리스
오명호/HSC 대표
게다가 유럽중앙은행 혹은 유럽국가들이 인위적으로 그리스 국채를 ‘리스트럭처링’ 해주면, 즉 원금을 갚을 수 없어 만기를 연장해주면, 그 국채는 자동적으로 ‘디폴트’라는 아주 보기 드문 ‘선별적 채무불이행’이라는 조항까지 발표한다.
시장의 우려대로 드디어 그리스는 파산하고 만다는 결론이다. 만약 그리스가 파산하면 그 여파는 유럽은행들의 줄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현실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 국채의 대부분을 유럽은행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계은행과 스위스은행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 유로존이라는 유럽통합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겠지만 문제는 자국은행들의 파산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가 발등의 불인 것 같다. 특히 지난주 유럽은행들의 주가가 폭락한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지난 30여 년간 부도난 국가를 한 번 기억해보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이 이미 국가 부도를 낸 나라이다. 물론 이들 나라는 발행한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어, 채권 금융기관들은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주고 일부를 회수할 수 있었다.
특히 기억 나는 국채의 원금과 이자 탕감의 역사는 80년대 초반 미국 씨티뱅크가 남미 국가들의 채권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준 사실이다. 물론 그 당시 씨티뱅크는 ‘투자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전혀 반대다. 3년 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겪은 유럽과 미국은 은행들의 자기자본 확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은행들의 그리스 투자손실을 예외로 인정할 수 없다는 딜레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 국채 투자 손실을 자기자본에서 손실로 떨어내고 자기자본을 자기자본비율(BIS) 기준에 맞게 확충해야 하는데 그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국가부도를 낸 그리스는 이제 국제금융시장에 참여하기란 즉 채권을 발행하여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란 불가능하다. 투자가들이 그리스 채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얘기고 누가 나서서 국채발행 주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인 ECB와 IMF가 그리스에게 “이 돈을 빌려 준다. 그 대신 이런 이런 조건은 지켜라. 즉 올해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이내로 줄이고 전력회사 등 국영기업을 매각해서 돈을 마련해 원금과 이자를 갚아라”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공공노조의 파업과 연금자들의 시위로 그 조건을 실제로 시행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영악한 시장은 그리스가 유럽중앙은행과 국제기금통화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작년 5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리스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0%에 못 미치는 약 8%대였다. 그러나 지난 5월 4일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겠다고 선언하자, 그 수익률은 무려 세배에 달하는 23%였다. 즉 그리스 국채가격이 3배 폭락 했다는 의미다.
이제 그리스 문제는 유럽의 손을 떠난 것 같다. 유로존 붕괴를 막으려는 프랑스와 독일의 필사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그리스 문제는 누가 대신해서 해결해줄 수 없다. 이제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지은 업보를 감수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빚내서 소를 잡아먹고 나면 누가 그 소 값을 갚아야 하나. 복지란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자선냄비에 넣는 동전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공짜점심(FREE LUNCH)과 무임승차(FREE RIDE)는 없다’라는 말이 그리스 사태를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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