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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가작…보이지 않는 힘

김연아

코스코에서 산 설로인 스테이크 여섯덩이들이 한 팩을 슬겅슬겅 썰어 놓은 것이 한 동이였다. 지방도 꼼꼼히 떼고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썰어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을 꺼내는데 다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머리가 아파 한잠 자고 있는 동안 남편이 고기 먹고 싶어하는 마누라를 생각해 칼을 갈고 손질해 놓았을 것이다. 요리엔 젬병인 사람이니 그거면 해 줄 수 있는 거 다 해 준 셈이다. 그리고 아이들 데리고 저녁 약속에 나갔다.

같이 가면 고기 먹을 수 있는데… 라고 말했지만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가더라도 민폐만 끼칠성 싶었다. 평시 육식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머리가 핑 돌고 귀가 먹먹해 지는 증세가 일면서 몸에서 '고기 좀 도~ 고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커다란 쇠고기팩을 덥썩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더니 남편이 작게 썰어야겠네라고 중얼거렸더랬다.

최근 서너 달여 동안 남편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고집불통이라 여기고 나는 그를 혹처럼 대했다. 우리의 갈등… 시발은 작년에 수술로 제거했던 난소혹이 내 몸에서 다시 커다랗게 자라있다는 통고를 받은 이후부터였다. 수술 한 지 10개월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편은 다시 수술하자 하고 나는 뿌리를 뽑지 않은 채 혹만 제거한다면 내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고 말했다. 한방치료를 하겠다 하니 작년에도 그러는 동안 혹이 더 커졌지 않았느냐고 퉁박이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뒤통수를 한 번씩 맞았으니 미련이 남은 쪽을 택하겠노라 하자 이 고집불통의 여인을 어찌하겠느냐는 듯 남편이 돌아섰다. 그리고 집에선 다시 쑥 태운 내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쑥 연기는 진한 니코틴냄새와 비슷한데 특히 대마초 향과 흡사하다고 했다. 한방의학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서 화장실 문을 꼭꼭 닫고 초를 켜고 환풍기를 틀었지만 새어나오는 냄새를 어쩌지는 못했다. 현관문을 열면 눅눅하고 찌들은 담배냄새가 욕지기를 일으켜 누구라도 온다 하면 공기정화 스프레이를 사정없이 뿌려대 카펫바닥이 젖었다.

딸아이는 옷에 냄새가 밴다고 투덜대고 나는 손을 휘저을 때마다 담뱃진에 쩔은 사람처럼 고약한 냄새가 풍겨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부동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는 동안 나로선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교육마저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혹같이 여겨졌다. 게다가 남편은 몇 달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학기말에 몰려있던 아이들 행사에 코빼기도 비치지 못했는데 과부처럼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자니 지극히 행복하지 않았다.

별거중이거나 이혼한 사람들도 아이들 행사엔 부부가 나란히 출타하는 문화를 지닌 미국에서 사는 주제에 한국식을 들이밀다니… 그냥 아무렇지 않게 참석했다가 달랑 내 아이만 아빠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뒤통수를 심하게 맞은 듯 격한 울화가 치밀었다.

이후부터 나의 인내심은 유효기간을 넘긴 치즈처럼 보송보송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학위 받느라 5년 임시 직장에서 2년 이번엔 또 영구직 심사인가 뭔가가 있어서 남편은 진작부터 다시 하숙생으로 돌아갔다. 잘 버틴다고 생각했지만 속내 어딘가에서 불안정한 삶에 대한 불만이 꼬물거리고 있었던가 보다. 활화산처럼 자꾸 못된 성깔이 분화되었다.

하다못해 내가 깎아주지 않아 장발장처럼 덥수룩해진 남편의 머리를 보면서 안쓰럽기는커녕 나를 이발사로 부려왔던 그간의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 아니면 이발도 못해?'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미용실에 다녀왔는데 아뿔사 얼굴은 한국인인데 머리 모양은 멕시칸이 되어 나타났다. 그 모양이 극적으로 꼴 보기 싫어 마주치지 않으려고 좁은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한약 먹고 침 맞고 쑥뜸을 뜨고 그렇게 지낸 지 석 달하고 열흘. 동굴 속에서 마늘을 먹으며 견뎌왔던 웅녀의 100일 째 처럼 내 몸에도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원하면서 드디어 재검진을 위해 병원에 다녀왔다. 혼자 가겠다는 내 뾰로통한 얼굴을 뒤로한 채 남편이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무뚝뚝한 택시기사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사포질처럼 메마르게 훑고 지나가는 풍경에 자꾸 살갗을 에이듯 얼굴이 화끈댔다. 6년 만에 생긴 둘째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검진을 받으러 갈 때보다 더 긴장했는 지 모르겠다.

"혹이 약간 커졌으니 서둘러 수술하지 않으면 꼬이거나 터질 가능성도 있어요."

의사는 총을 쏘듯 볼펜을 허공에 대고 흔들며 위협조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두웠다. 7월의 짱짱한 햇살 때문에 세상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여도 마음엔 어둑발이 깔렸다. 100일간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처럼 이제 겨우 불혹의 나이인 내가 상해버려서 더 이상 신선해지지 않을 거란 위기감이 밀려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고 나는 눈 밑이 떨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그렇게 깜깜해진 마음속에 들어앉아 몸을 옹송그린 채 나는 시들어 버린 것의 표상이 된다. 시든 젊음 시든 육체 시든 사랑… 그렇게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뺨에 따스한 느낌이 와닿았다. 남편의 투박한 손이었다. 땀이 났는 지 끈끈해진 손바닥이 곧 턱까지 두툴두툴 미끄러져 내렸다.

"미안하다. 이쁘디 이쁜 연아가 나한테 와서 아프기만 하고…"

흠칫 놀라 바라 본 남편의 눈두덩이가 빨갰다. 순간 그를 향했던 내 눈길은 허둥지게 앞 유리창으로 돌아왔다. 오열이 터질 듯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그만 엉엉하고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에 심장이 터질듯 두근댔다. 사실 남편은 소문난 애처가이다. 그의 사랑은 초주지(草注紙)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할 줄 몰랐다. 그랬던 그의 마음에 대해 잠시 의구심을 품었던 나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병이 들었었던가 보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힘. 그 힘으로 나는 말도 마음도 낯설기만 한 이 땅에서 10여 년을 버텨왔고 오늘도 살아간다.

"당신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간신히 거기까지 말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부족한 피를 채우고 심기일전해야 한다는 뭐랄까 삶의 의욕 같은 게 다시 꾸물대기 시작했다. 이대로 고약한 냄새를 피우며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썩은 단백질 덩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이지 않는 힘이 그렇게 응원했다. 그래서 코스코에 들러 커다란 쇠고기팩을 덥썩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더니 남편이 작게 썰어야겠네라고 중얼거렸더랬다.

수상 소감

"글 통해 마음의 양식 남기고 싶어"
슬픈 밤을 맞이하는 중입니다. 조금 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사촌 형부의 어이없는 부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제게 간곡히 부탁하듯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글 쓴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애들이나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라."
저는 지금 기쁘게 당선소감을 써야 하는데 멋지고 인상 깊게 써내야하는데 혼절할 만큼 괴로워하는 사촌언니를 생각하면서 뼈 마디마디에 고이는 슬픔을 느낍니다. 도저히 행복한 척 문장을 꾸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글은 바로 저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글은 제게 그런 존재입니다. 어머니 걱정을 덜어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제 인생에서 떼지 못하고 끝까지 붙들고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과 저의 글과 연이 닿은 모든 존재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소로우처럼 인간과 그 존재가치에 대한 글을 쓰며 이 세상에 마음의 양식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슬퍼하면서 너무 거창한 소감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 삶의 최종 목표이므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용서하세요. 마지막으로 미숙한 글에 영광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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