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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작…키리와 미코

이종용

키리와 미코는 자식들이 보낸 효도 대행자다
내 외로움을 덜어 주려는 그들의 배려이리라
어쨌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나에겐 작은 혁명이다
특히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고 미워해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까지 이상하게 여기곤 했었는데…


지난 1월 15일 치와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시집을 왔다.

"저희 미코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코는 순종 치와와로 생일은 2008년 9월 13일. 이제 두 살이 되었군요. 미코라는 이름은 미스 코리아보다 더 예쁘다고 해서 붙여 준 이름입니다"로 시작된 편지는 장장 여섯 페이지에 걸쳐서 그의 성격 습관 식성 훈련 및 주의 사항 등을 예쁜 글씨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보낸 이의 고운 마음씨가 손에 잡힐 듯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미코는 엄청난 혼수(?)를 가지고 왔다. 소위 크레이트라는 휴대용 개장 외에 서랍 네 개인 플라스틱 장농 휴식용 케이지 전기 난방 침대 요 이불들 일곱 개나 되는 옷 그 밖에 치약 칫솔 샴푸 귀 청소약 비타민제 냄새 제거약 발톱깎이 장난감들 그 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용품들이 채곡채곡 들어 있고 몇 달치의 개밥과 간식이 크고 작은 그릇에 가득 담겨져 왔다.



보낸 이는 이렇게 알뜰히 챙겨 보내면서 울었다는데…. 혹시라도 괴팍한 사람 만나서 학대나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편지 속에서 묻어난다. 행여 대소변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 했다.

막내인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알뜰히 돌봐주던 내 작은 누님은 일제 말기에 시집을 갔다. 그 어렵던 시절 있는 것 없는 것 알뜰히 챙겨 보내며 어머니는 울었다. 제발 후덕한 집안 만나 귀염받으며 잘 살기를 빌었다.

그 시절 풍습대로 중매쟁이 말만 믿고 얼굴도 모르는 신랑과 서시모가 있는 집으로 장농과 이불짐과 함께 들어갔는데….

얼마 후 결혼은 파경을 맞았고 장농과 이불짐은 되돌아 왔다.

그날도 해가 진 뒤에 짐꾼들이 들이닥친 모양인데 방문은 모두 열려 있고 썰렁한 대청 마루에 불은 환한데 어머니와 누나의 그 당혹스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치욕스러움을 느끼며 어른들 눈치보기에 바빴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난처한 현장을 피해 어디로 피신이라도 하셨던 것일까?

그 후 꽤 세월이 흘러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누님은 재혼을 했고 아들 딸 낳아 그런대로 행복하고 괜찮은 여생을 보냈지만 완고하신 부모님 앞에서는 항상 죄인으로 살아야만 했었다.

미코는 멋진 하늘색 코트를 입고 왔다. 대부분의 치와와처럼 누런 황토색인데 산뜻한 하늘색이 잘 어울렸다.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져서 몇 십 마일을 달려왔는데 마침 저녁이라 불이 환한 방 안에 크레이트를 갖다 놓기에 들여다보니 그 큰 눈에 불안과 공포를 가득 담은 채 저 구석으로 처박혀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문을 열어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억지로 끌어냈는데 벌벌 떨고 있다. 너무나 엉뚱한 환경이요 낯선 사람들뿐이다.

'그래도 한두 번 안면이 있고 내 주인과 비슷한 이 사람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미코는 며늘아이 무릎에 옹크리고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들네 식구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 미코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다음날 그는 두 번이나 방안에서 뒤를 보는 무례를 범했지만 그 후로는 뒷문을 열어 주면 밖에 나가 용변하도록 습관화되었다.

우리 집에는 미코가 오기 전부터 키리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막내 손자 녀석이 어디서 큰 쥐만한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왔는데 그것을 저희 부모가 설득하고 강권해서 '할아버지에게 드리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려서 주사기에 우유를 넣어서 먹였는데 적당히 눌러 주어 우유가 일정량 흘러내리도록 해 가면서 먹이는 일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새하얀 털에 간혹 검은 점과 갈색 털이 섞인 귀여운 모습의 이 놈은 탈 없이 잘 자라서 이젠 거의 다 큰 듯 싶다.

"일주일만 키워 보세요. 정 싫으시면 그때 다시 가져갈게요."

마지못해 기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열 달이나 되었다. 고양이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짐승이라 별로 잔손이 가지 않는다.

주인을 알아보는 것은 분명한데 그 행동은 제멋대로다. 그 대신에 사람을 귀찮게 하지도 않아서 편하다.

미코가 왔을 때 혹 키리와 싸우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몸집으로 보면 키리는 미코의 두 배 가깝다. 거기다 고양이는 강력한 무기 즉 발톱이 있으니 이것으로 할퀴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미코는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에 다 붙임성이 좋아 며칠 사이에 잘 따르게 되었고 키리를 보면 꼬리를 치면서 가까이 다가가 놀자고 하지만 키리는 질겁을 하고 도망을 갔다.

도망치는 고양이를 보고 추격하지 않는 개가 있겠는가?

미코가 쫓아가면 키리는 비호같이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가 되돌아 본다. 그러나 미코의 짧은 다리와 점프력으로는 턱도 없는 게임이다.

키리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수줍다. 사실 키리는 암놈이고 미코는 수놈이다. 미코가 오고 처음 이삼 일 동안 키리는 어딘가에 숨어서 종일 나타나지도 않았었다. 키리는 명령을 무시하지만 미코는 꽤 많은 말을 알아듣는다.

"이리와" "앉아" "엎드려" "물러나" "그만 해" "하지 마" 등을 영어로 명령하면 그대로 복종한다.

키리는 냉정한데 미코는 열정적이다. 내가 밖에서 집에 들어오면 반가워서 온통 난리가 난다.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쾍- 쾍- 재채기 같은 소리를 내면서 미친듯이 앞발을 들고 기어오른다. 위로 안아 올리면 문자 그대로 정신없이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그럴 때면 내 손이 미코를 땅에 떨어뜨릴까봐 조심하게 된다.

키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좀 있으면 무심한 듯 옆으로 지나가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시킨다.

이제는 키리의 수줍음도 많이 없어져서 미코가 있는 근처에 주저 없이 나타나곤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이들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게 한다.

오랜 세월 언제나 내 곁에 있던 아내가 아주 멀리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외출했다가도 텅 빈 집에 들어섰을 때의 그 공허감 혼자 뒤뜰에 나가서 머리를 젖히면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한 조각 흰 구름이 그렇게도 외로와 보이곤 했다.

키리와 미코는 자식들이 보낸 효도 대행자다. 내 외로움을 덜어 주려는 그들의 배려이리라.

어쨌건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나에겐 작은 혁명이다. 특히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고 미워해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까지 이상하게 여기곤 했었는데….

좋아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다. 먼지처럼 쌓여 있는 편견을 훌훌 털어버리면 누구라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제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나 사랑하리라. 특별히 가까이 있는 모든 것들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리라.

생각해 보면 사랑하기에도 이미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데 미워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수상 소감

"신인으로서의 설렘 간직한 채 정진할 것"
사춘기 시절 수많은 시들을 암송하고 다니면서, 훌륭한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에 좋은 책들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습작이랍시고 한 두 편 써 놓고, 또 쓰다 말고, 드려다 보니 내 생각에도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단념하고, 잊고 살았습니다. 책 권이나 있던 것들을 무슨 오기에선지 이민 올 때 단 한 권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문학에 대한 애착이 마음속에 잠복해 있었음을 느낍니다. 신인이란 말은 신랑이나 신부라는 말처럼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이 설렘을 간직한 채 더욱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이 미국 땅에서 한국 어문학을 키우고 가꾸는 큰 일들을 하시는 중앙일보 여러분과, 변변치 못한 글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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