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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스푼 굿피플] 한달 노임이 만원짜리 한 장

김재억/목사·굿스푼선교회 대표 

한국에선 5월 5일이 어린이날이지만, 멕시코에선 전승기념일이다. 1862년 4500명의 멕시코인들은 6000명의 프랑스 군대에 맞서 4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승리한다. 이후 9월16일 독립기념일과 '씽꼬 데 마요(5월 5일)'은 멕시코 역사와 문화의 주요 축제의 날이 되었다.

멕시칸들이 대세를 이루는 LA에서 이날은 대규모 페스티벌이 열리는 축제 한마당이 된다. 소매 매출도 연말 대목 못지 않은 날이다. 2009년 현재 미국내 거주 멕시칸은 317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미국 히스패닉 인구의 66%를 차지하고, 캘리포니아주에 가장 많은 1,150만명(36%), 텍사스가 804만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1991년 5월5일 워싱턴 DC 노스웨스트 지역 16가에 위치한 마운트 플레즌트(Mount Pleasant)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10여명의 엘살바돌 청년들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술에 취해 거리를 활보했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하였고, 진압 과정 중 안젤라 제웰 경찰이 다니엘 고메스(Daniel Gomez)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격분한 인근지역 거주 수십명의 라티노들이 소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싸께오(saqueo, 폭동, 약탈)는 3일간 이어졌는데, 이 기간 동안 230여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50명이 부상 당했고, 60대의 경찰 순찰 차량과 거리 주변에 주차된 차량 등이 불태워졌다. 거리 양옆의 점포 30개는 약탈당했고, 또 전소되었다.
 


일년 뒤인 1992년 4월29일 LA 사우스센트널 흑인 지역에서 참혹한 폭동이 일어났다. 도망치는 로드니 킹을 백인 경찰들이 무참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한 시민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TV 방송을 통해 전 미국에 방영했다. 당시 로드니 킹은 캔 푸드로 안면을 구타당해 함몰되었고, 쓰러진 그의 발은 경찰봉에 으스러졌다. 미국은 물론 온 세상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1년 동안의 심리가 드디어 마쳐지고 재판이 있던 날 시미벨리 순회법원에 피고로 나온 3명의 백인 경찰관에게 무죄판결이 났다. 도화선에 불을 붙힌 것처럼 불공정 재판소식은 빠른 속도로 흑인 밀집지역 전체로 퍼지면서 폭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흑인 폭도들에 라티노 도시빈민들이 가세하면서 닥치는대로 약탈 했고, 불을 지르며 한인 타운까지 이르렀다. 당시 경찰은 베버리힐스 고급 주택가 외곽을 장승처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폭동 나흘째인 5월2일, 6000명의 주방위군이 투입되면서 폭동은 가까스로 진압되었는데, 58명이 사망하고, 2383명이 부상당했다. 1만2111명이 구속되었고, 크고 작은 방화가 7000건에 달했다. 7억5000만 달러 재산피해가 났다. 이듬해 항소 심에서 두 백인 경찰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로드니 킹은 380만 달러 보상금을 받았으며, 폭동에 쑥밭이 된 지역에는 150억 달러의 연방정부 투자가 이뤄졌다. 피땀으로 일군 한인들의 점포 3000여개가 순식간에 잿더미되었다. 한인타운의 재산 피해액만 3억달러가 넘었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일이 속출했다.
 
“도대체 이 돈의 값어치는 얼마나 됩니까?” 3월 초 컬모 거리급식 현장에서 만난 과테말라 출신의 에두아르도(18)는 쌈지돈처럼 고이 간직했던 만원짜리 신권 화폐를 펼쳐 보였다. 아직 꽃샘 추위가 날카로웠던 날, 두툼한 외투를 입은채 점심을 서둘러 먹고 다가온 그의 질문이 충격적이었다. 그가 내민 만원은 여러번 접어 꼬깃꼬깃 했지만 비교적 깨끗했다. “어디서 났는가?” 그는 작년 12월까지 플로리다 마이애미 한국 식당에서 일했단다.

주방 설거지, 바닥청소, 매주 70시간씩 총 490시간 넘게 일하고 한달 임금으로 받은 돈이었다. 갓 밀입국하여, 물정 모르는 어린 라티노에게 만원을 쥐어주면서 미화 1500달러 값어치가 된다고 여러번 다독거렸단다.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했던 돈이 고작 10달러도 안된다는 설명을 듣자 하얗게 질리며 분노로 일그러진다. 측은히 바라보는 내 목언저리가 빨갛게 타올라온다. “꼬레아노 무이 말로(Coreano Muy Malo, 한국인 너무 나빴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찬 그의 하소연이 워싱턴 한인사회에 폭동이란 불씨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몇달째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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