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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세미터리 좋은 조상들-신지혜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전략)
안토니, 제니퍼, 차알스---
두루 편안하신가?
맥박도 잴 수 없이 평평해진 저 수평의 고요,
그대들 또한 먼 조상 누군가의 이름 물려 입고
한때 서로 머리 부딪치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 멱살 잡으며,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또는


으스러질 듯 포옹하고 키스하며 잘들 살았을 것이다
죽어 좋은 조상되기 위해 발버둥 쳤을 것이다
묘비 가운데 두고 생면부지 낯선 이와
머리 맞대고 평화로이 누운 채
죽은 자들 타운에 모여 사는것, 괜찮으신가
이미 오장육부는 내부골조 폭삭 무너진 폐가처럼 가라앉고
두개골 하얗게 삭아버렸을 백골들,
누군가 그들이 이름 벗어버린 이름 또다시 새 옷처럼 받아 입고
해질녘 놀이터를 뛰어다니거나
저문 호숫가를 천천히 배회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 이름 달고 야간 청소부 되어
삐걱대는 낡은 계단에 왁스칠할 것이다

안토니, 제니퍼, 차알스---
걱정들 마시게나
지상의 이름들은 재활용되어도 더없이 순결하다네
제것 아닌 이름 어찌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리

더러 삶 허전해오거나 환멸 느껴져 오면, 나는 우정 세미터리 앞 지나거나 가본다. 묘지 앞 한참을 섰거나 서성이며 그들의 이름 다시 본다. 저대로 희망 가득 빛나고 빛났던 이름, 이름들 빌려 쓰고 갔던 이름, 이름들. 지난날 아무리 화려했어도 지금 빈 호주머니 같이 쓸쓸한 이름, 꿈이란 그런 호주머니였구나. 차가운 회색으로 남은 비석, 허무하고 슬픈 냄새 안개처럼 서렸다. 그것이 삶인 것을. 세미터리는 죽은 자들의 이름 박물관, 우리는 자나 깨나 학습한다. 좋은 조상되기 위하여, 대물림 이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마운트 컴포트, 내 어머니 아버지 외로이 누워 계시는 곳, 나도 다시 가 만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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