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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126] 생명력과 감성이 충만한 창조적 추상세계 개척

자유분방한 선과 색, 형태에 작가의 숨결 담아
성공한 과학자 인생 바탕 만학으로 화업 일궈


화가 김만희는 60대 중반으로 현재 뉴저지주 허드슨 강변에 있는 에지워터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을 오가며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 동안 한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수 십회 이상의 그룹전과 아트페어 등에 참가했다

김만희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흥미를 갖고 미술대학에 진학해 화가가 되는 꿈을 꿨으나 집안의 반대로 식품과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 후 과학 분야에 정진해 지난 1985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을지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교직에 있는 동안에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바쁜 시간 틈틈이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박물관과 화랑을 방문했고, 수많은 거장의 그림을 보고 사숙하며 나름대로의 예술관과 미술론을 구축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만희는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 문득 교직을 떠난다. 김만희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했지만 장기적으로 새로운 직업을 얻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로 자신의 선택이 운명이고 최선이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그림을 그리는 생활 속에서 빠져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신만의 표현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어느 날 훌쩍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에 정착한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과학자가 늦은 나이에 전업 미술가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것이 자신의 화업을 이루는데 부족함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현재의 미술계는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학연과 지연, 인맥 등으로 두텁게 고착돼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들만의 울타리로 인해 작가들은 작품을 그리는 진정성이 떨어졌다. 나는 이러한 미술계의 현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폐단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을 하기를 원한다. 내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고, 또 여기에서 살면서도 다시 외국에서 열리는 작품전에 부지런히 참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그림이라는 시각언어를 바탕으로 각국의 문화와 교류한다. 이를 통해 모방과 답습이 횡행하는 인위적인 그림이 아닌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 가슴으로 세계를 보고 이것을 그림에 담는다.”

김만희의 그림은 추상화다. 쉽게 이야기하면 선과 색, 형태를 자유자재로 긋고, 그리고, 칠하고, 덧붙이는 방법을 통해 순수 조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림이다. 형식적으로 뜨거운 추상표현주의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특별한 점은 그가 그린 그림들은 어느 하나 하나가 모두 독자적인 느낌과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그의 그림에는 선과 선이 이어지고, 면과 면이 겹치고, 무채색과 유채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용솟음치는 생명력을 드러낸다. 뜨거운 감정의 분출이 있는가 하면 차가운 명상의 공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큰 붓을 단숨에 그은 듯한 과감한 획(劃·일필휘지)의 표현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황색과 갈색의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황량한 가을 벌판과 같은 시적인 감성의 공간을 구현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선과 색, 조형으로 그리는 한편의 시와 같다. 그 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의 약동과 작가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의 그림 내면에는 우뚝 솟은 산이 있고, 유려한 강이 있고, 무한히 펼쳐진 하늘, 광활한 우주 공간이 있다. 그는 자신이 내면에 갖고 있는 미술적 표현욕구를 추상화라는 표현형식을 통해 거침 없이 쏟아내고 있다. 김만희의 그림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지난 해 뉴욕에서 열린 아트엑스포 전시회 도록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김만희는 거친 붓을 이용해 거친 표면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때로는 일필휘지의 강한 붓놀림으로 빠른 동세의 선들을 교차시키고 중첩시킨다. 한편으로는 물감을 방출시키고, 흐트러뜨려 풍성한 색상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를 통해 수목이나 삼림의 틈새를 열고, 안개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모습을 그린다. 기묘한 암석과 골짜기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 진홍색 단풍과 첩첩산중의 광경이 드러난다. 그의 이러한 표현방식은 오랜 세월 자연탐구의 과정에서 몸에 밴 실험적 자세에서 비롯됐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감동을 화면에 옮기거나, 자신의 내적 감정을 완화하는 과정의 추상표현주의는-그의 과학자로서의 삶과 미술에 대한 사랑을 통해-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김만희는 자신의 추상작품의 토대에 “기본적으로 과학자로서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자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설명할 때 “나는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시료를 다루듯, 색료(물감)를 시료로 삼아 실험하고 관찰하는 자세로 그림을 그린다”고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그는 미술에 관한 한 타고 난 재능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다. 그가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선과 색, 형태를 섬세하게 구사하고, 균형을 잃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경지까지 모든 표현요소를 몰고 가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는 미술사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거장들은 유럽의 폴 고갱과 중국의 제백석 등 동서양에 걸쳐 수 없이 많다. 이는 당연하다. 예술의 세계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고전이 말해주듯 예술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김만희는 자신의 독창적인 그림에 대한 신념을 격정적으로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 미술계에 대한 자신의 깊은 마음 속 이야기, 곧 일종의 경고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어 자신은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이 있음에도 이를 뛰어 넘어 자신만의 내면의 세계, 창작의 세계를 향해 꿋꿋이 걸어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금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사진과 컴퓨터그라픽, 영상 등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이 한탄스럽다. 또 창의성이 요구되는 미술계에서도 지도자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이는 예체능 교육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창작이다. 작품을 높게 평가 받는 작가들을 보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내면의 세계를 펼친다. 나는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돋보일 수 있는 자기만의 색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종원 기자 jwpark88@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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