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따라잡기-6] 터널 속에 갇혔으나
애플서 퇴출 자존심 상처…복수 일념으로 버텨
85년 가을 스티브 잡스는 인생 최악의 시기를 향하고 있었다. 자기가 세운 회사로부터 쫓겨난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갈기갈기 찟겨진 자존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애플 컴퓨터 설립 9년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그였지만 이제 겨우 30살. 어느 날 저녁 팔로 알토 저택으로 잡스를 방문했던 월스트리트저널 여기자의 글이다. "넓디 넓은 거실에 티파니 램프와 의자하나…어둠을 벗삼아 마루바닥에 주저앉은 잡스의 눈에선 역전 드라마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반짝이고 있었다." 잡스의 감정상태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준 글이 또 있을까. 분한 마음과 고독속에서도 "새로운 컴퓨터 회사를 만들어 세상을 놀래키겠다"는 말을 곱씹던 잡스였다.
잡스는 애플을 떠나자마자 보유했던 애플 주식 1장만을 남기고 모두 처분해 1억달러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그 한장을 손에 쥐고 두고 보면서 복수의 일념을 불태우고 있었던 그였다. 안전한 금융회사에 "로토 당첨금"과 같은 돈을 맡기고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아니면 유명세를 이용해 실리콘 벨리의 전문 경영인 자리 하나를 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애플에 있으면서 오만방자의 극치를 떨쳤던 잡스는 회사를 떠났을 때 밥 노이스 데이브 패커드와 같은 실리컨 벨리 원조 사부들을 만났다. 인텔 창업자인 노이스박사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실패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제가 잘했어야 했는데 선배들의 기대와 후배들의 길을 모두 망쳐버렸다"고 자책했다. 이런 잡스의 모습에서 오만과 방자는 없었지만 그나마 어떤 실수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생각은 갖고 있었던 듯 싶다. 실수를 분석하고 느끼는 것과 그냥 아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잡스는 스스로의 궤멸을 주어담기에 바빴지 진정하게 거듭나기까지 거의 13년을 더 보내야했다.
애플은 당시 20억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1억달러로 이런 회사를 이길 순 없었다. 9년전 워즈니악과 함께 무일푼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컴퓨터 업계가 더 이상 아니었다. 우후죽순으로 컴퓨터 제조사들이 생겨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운영체제 프로그램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었다. 또 IBM은 명실공히 업계 넘버 1. 이미 신생 디지털 테크놀러지 마켓은 고래등 싸움으로 번지고 있을때 잡스의 자본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명성 이용해 세력 규합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최대한의 세력을 규합했다. 우선 자신이 이끌던 매킨토시 팀의 핵심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불러냈다. 86년으로 넘어가면서 잡스는 스스로 300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NeXT란 컴퓨터 회사를 세웠다.
잡스는 당시 재계 큰손인 로스 페롯을 끌어들였다. 미국 대통령후보까지 나섰던 페롯은 잡스라는 젊은이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자신의 개인 재산과 함께 벤처캐피털을 끌어들여 단숨에 NeXT에 1억2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두번째는 일본 가전 회사 캐논. 캐논은 자사가 개발중인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NeXT 라이센스로 일본내 독점권을 확보하길 원했다.
당시만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DOS가 오늘날 윈도스처럼 독점적 체제는 아니었다. 군웅할거시대였다. 캐논은 일본내에서의 컴퓨터 업계 1위를 꿈꾸며 잡스의 NeXT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묻지마 투자와 다를게 없었다. 잡스에게 인복까지 따라주었다. 공명과도 같은 인재가 제발로 찾아들어온 것이다.
명문 카네기 멜론대 컴퓨터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mach kernel" 개발팀을 지휘했던 천재 프로그래머 애비 타배니언이 NeXT에 합류했다. 매킨토시를 보유한 애플만 뺀 나머지 모든 컴퓨터 회사들은 차세대 컴퓨터 운영체제를 구상하고 있을때였다.
모두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운영체제 개발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타배니언은 자신이 개발한 "마흐 커널"을 응용해 NeXT 운영체제를 디자인했고 이때 사용된 "마흐 커널"은 현재 최신형 애플 OS X의 가장 기초적인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로써 잡스는 매킨토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의 가능성을 손에 쥐게됐을 뿐더라 훗날 예상치 못했던 애플 복귀의 단초가 되는 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NeXT.Pixar 대표 맡아
NeXT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중 잡스에게 새로운 기회가 추가로 찾아왔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스타워즈와 인디애나존스 시리즈 영화로 유명해진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프로덕션 계열사를 매각하고 싶어했다. 그래픽 그룹(Graphic Group)이란 이름의 컴퓨터 그래픽/애니메이션 전문 회사였다.
루카스 감독은 당시 이미 특수효과전문회사인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이란 회사를 갖고 있었기에 또 다른 CG회사를 보유할 이유가 없었다. 또 당시만해도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제약 때문에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이 때문에 루카스는 회사를 매각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할리웃에서 명성을 날리던 루카스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면서 첫부인과 이혼 소송에 휘말렸고 위자료를 지불하기 위한 상당한 현금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루카스 감독은 소리소문없이 아주 조용하게 회사를 매각하고 싶어했다. 잡스는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루카스의 첫 제의가 들어왔을때 간단하게 "노우"라고 답했다. 루카스의 그래픽 그룹은 당시로서도 지나치게 앞선 회사였기에 실리컨 벨리에선 누구도 선뜻 매입하려들지 않았다. 현금이 급해진 루카스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잡스가 역제의를 했다. 500만달러. 루카스가 제시했던 금액의 5분의1이었다. 다급했던 루카스는 잡스의 협상력에 두손들었고 일사천리에 딜이 성사됐다.
잡스가 인수한뒤 이 회사의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인 Pixar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최고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는 아니었다. 잡스가 컴퓨터 에니메이션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 회사를 사들인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당시만해도 지금과 같은 강력한 하드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왠만한 회사들은 자사가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모든 회사마다 전산부가 따로 있었고 회사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게 보편적인 일이었다. 그래픽 그룹 역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위한 전문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스스로 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아티스트들과 이들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진들이 따로 있었고 그들은 "RenderMan"이란 지구상 유일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었다. 바로 잡스가 탐낸 것이다.
잡스는 자신의 신종 컴퓨터에 RenderMan을 장착해서 애니메이션 전문 컴퓨터를 팔아야겠다고 구상했던 것이다. 잡스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 새롭게 출범한 Pixar에는 존 레세티란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있었다. 디즈니의 제프리 카잔버그로부터 해고 당한뒤 낭인생활을 하던 그가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그래픽 그룹에 합류했었다.
존 레세티는 훗날 NeXT의 타배니언에 버금갈 정도로 출중한 애니메이션의 천재로 부상했다. 결국 잡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명 하나에 봉추까지 낚아채고 비상을 준비했던 것이다. 애플을 떠난지 1년만에 잡스는 NeXT와 Pixar란 두 회사의 대표직을 맡으면서 여전히 실리콘 벨리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가로 유명세를 이어갔다.
이정필
전직언론인
디지큐브대표
블로그 www.jpthegreenfu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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