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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발람, 나귀가 깨우친 표리부동한 선지자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교무처장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음흉하고 불량하여 겉과 속이 다름을 뜻한다. 이러한 행태의 사람을 우리는 흔히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능구렁이는 화려한 색깔을 지닌 무독(無毒)의 움직임이 느린 뱀이지만 한 번 건드리거나 개구리를 잡아먹을 때면 아주 맹렬한 기세로 덤벼드는 그런 속성이 있다.

평소 겉으로는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게 보이는 자가 속으로는 아주 교활하여 목표가 눈앞에 보이면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접근하는 교활한 사람을 두고 '능구렁이 같다'고 한다. 성서 속에서 이런 능구렁이 같은 사람의 예를 하나 들라고 한다면 단연 발람이 아니겠는가?

발람은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부돌 지방 사람으로 술사(術士)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승승장구하면서 가나안 땅에 진입하려 할 때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군대의 위력을 익히 들어온 터라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발락이 이스라엘을 물리치기 위해 내놓은 꾀는 무력전이 아닌 선지자의 기도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고대 국가는 그들만이 섬기던 신이 있는지라 국가 간 전쟁은 신들끼리의 전쟁이기도 했다.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10여 년간의 전쟁을 다룬 일리아드(Iliad)에는 각 나라를 지지하는 신들 사이에도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인들에게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와 제사가 창과 칼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였던 셈이었다.

발락의 코앞까지 왔던 이스라엘은 이미 아모리 족속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즉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이 아모리의 신을 눌렀다는 의미이겠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발락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취한 방법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저주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발락은 발람에게 예물을 주어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토록 하려는 계략을 세웠다. 하나님의 지시로 발락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지만 더 나은 조건으로 발락이 사람들을 보내어 재차 요청했을 때 발람은 그들에게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이 진심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뇌물에 눈 먼 발람은 그 다음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황당한 일을 경험하였다. 타고 가던 나귀가 좌우로 작은 담벼락이 난 길에서 옆으로 비키려고 심하게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앞 가까이에 칼을 들고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본 까닭이었다. 그 바람에 발람은 발을 다치게 됐다. 화가 난 발람은 나귀에게 채찍질을 가하자 나귀가 말을 하면서 돈에 눈 먼 발람을 깨우쳤다. 그제야 영안이 열린 발람은 그 사자가 크게 꾸짖는 소리를 듣는다.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한 발람은 사자의 지시를 받고서 발락에게 갔다. 발람의 출현으로 크게 기뻐한 발락은 그를 산으로 데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하였지만 정작 발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다.

나아가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물질과 출세에 눈이 멀어 한순간 하나님의 뜻에서 돌아서려 한 발람. 그 발람을 하나님은 한낱 미물인 나귀를 통해 깨우치셨으니 미물보다 못한 발람의 형편이 나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하여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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