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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나와 우리 사이의 벽

김두진 바오로/바오로 예수고난회 신부

우리의 언어습관을 보면 '우리'라는 말을 남용하리만치 자주 씁니다. 물론 이것이 오랫동안 우리문화를 지배해 온 유교의 전통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습니다만 우리가 흔히 쓰는 '우리'라는 말의 뜻을 곰곰이 새기며 쓰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공동체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마누라 등등. 여기서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공동체 우리 가족을 말함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은 듣기에 따라서 매우 거북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잘 혼자만 소유해야 하는 남편과 부인을 쉽사리 공동의 소유로 돌려 놓습니다. 내 남편 내 아내 했다가는 "지 혼자만 남편이 있고 지 혼자만 아내 있나?" 하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 '우리 문화' 때문입니다. 우리를 유독 강조하는 유교의 문화가 가져온 습관을 통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라는 틀 안에 들어가기 위해 또 서로 같아져야만 편해짐을 느끼기에 서로의 우리(틀)를 만들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한 때 유명했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늘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 늘 남의 나라는 나쁜 나라로 구분되어 쉽게 오류에 빠질 수 있는 흑백 논리이지 싶습니다. 같은 생각의 선상에서 우리가 너희보다 낫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남의 아픔을 들추어내는 생각의 틀을 짓는 것은 스스로가 폐쇄되고 갇혀지는 또 다른 아픔이 되기도합니다.

'그대에게 벗어나 그대가 사람이었음을 알았다'는 한 시인의 고백이 커다랗게 마음에 맴돌고 있음은 아마도 내가 우리의 틀 안에서 안주하고 싶음을 아프게 질책하는 소리이지 싶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가지 않을 수 없는 나의 길에서 가도 가도 막막한 그 길에서 그래서 내 영혼은 다 부르텄다"라고 고백한 시인의 질책이 같아질 수 있을 때만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요를 지적하고 있나싶어 부끄러움에 머물었습니다. 그것은 나와 같아질 것을 강조하는 폭력으로 멀어지는 너를 나의 강요로 슬퍼하는 너를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갈라져 땅 따먹기 싸움을 반복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상세히 그려낸 아픔이기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제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먼 땅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이민 생활에서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내 것만이 옳다고 외치는 소리가 너무 큰 탓에 분열과 싸움은 다음에 생각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깊이 파여진 골을 어떻게 메워야할지는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쉽지 않은 이민생활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외로움 때문에 점점 커지는 잘못 습관된 우리문화는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첫번째 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는 사람들로 뭉쳐진 사랑의 공동체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큰 탓에 상처를 받습니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짐은 이미 늦어버린 일일 수도 있고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패어진 골을 메우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급한 일이지 싶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야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나에게서 벗어날 때 남을 알게 된다는 시인의 깨달음은 나와 연관된 우리의 모습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훌륭한 지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지금 옛날에 읽었던 시 한편을 생각하며 각박한 이민생활 안에 갇혀진 답답한 제 마음을 함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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