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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암베드카르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인도에 가면 간디의 동상보다 더 많은 것이 바로 불가촉천민 출신의 정치가요 법률가며 불교 운동가인 암베드카르의 동상이다. '인도 헌법의 아버지'이며 '불가촉천민의 해방자'로 불린다. 인도 국기에 부처님의 법륜을 그려 넣은 이도 그다. 간디와 함께 그의 생일도 국경일로 정해질 만큼 현대 인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불가촉천민이라. 뱀 같은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 징그러워서 본능적으로 만지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겉모양을 떠나서 그 출신이 너무 징그럽고 더럽고 천하다고 만지기는 커녕 같은 공간에 잠시 함께 머무를 수도 없다는 거다. 나 원 참!

그래서 너희들은 항상 저만치 떨어져서 따로 다니되 땅에 침을 뱉어도 안 되니까 작은 항아리를 목에 걸고 다녀라. 그리고 더러운 발자국으로 신성한 대지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니까 꽁무니에 빗자루를 달고 다니면서 곧바로 지워라 해 왔던 게 역사도 오래고 숫자도 많은 인도의 불가촉천민이다. 아예 노예 계급인 수드라에도 못 끼고 그 바깥에서도 한참 저 맨 밑바닥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런 계급이 있었지만 부처님은 진리 앞에 이런 모든 사회적인 벽을 허물어 버렸다. 그리하여 왕자도 천민도 여자도 남자도 누구나 승단에 평등하게 참여하였으니 부처님이야말로 암베드카르의 대선배격인 셈이다. 불가촉천민 출신인 수니타 장로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지난 일을 회상하는 구절이 불경에 있다.



불가촉천민 출신이지만 운 좋게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최고의 학업을 마친 암베드카르는 인도의 독립과 새나라 건설에 있어서 간디와는 협력자이자 최대의 맞수였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서 비폭력을 수단으로 내세운 점은 같았지만 간디는 이것을 반영국에 주로 사용하는 한편 계급제에 기반한 힌두교를 인도의 근간으로 고수하려 들었다. 반면에 암베드카르는 인도 안의 식민지였던 불가촉천민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끈질기게 비폭력 투쟁을 택했다. 그가 이 계급을 제도권 안으로 싸안자고 하도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간디는 이걸 막으려고 단식까지 한 일이 있었다. 간디의 또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힌두교도로 태어난 암베드카르는 결국 제도 정치권에서의 개혁 운동에 한계를 절감하고 근본적인 모색을 하기에 이르는데 해답은 불교였다. 불교야 말로 그 핵심사상이 인간 평등임을 크게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1956년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사건이 벌어진다. 그 해 10월 14일부터 이틀간 나그푸르에서 벌어진 행사에서 약 50만 명의 불가촉천민들이 집단으로 불교로 개종한 것이다. 이러한 기운은 현재까지 이어져 힌두교도들의 긴장과 방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들은 개종시 스물 두 가지를 맹세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나는 팔정도를 따른다.' '나는 불교야말로 참된 종교라고 확신한다.'

공식적인 개종을 한 바로 그 해 12월 일생을 바친 꿈이 채 꽃피기도 전에 다소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암베드카르는 이런 말도 남겼다. "종교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불만이야말로 모든 도약의 출발점이다." "생존 그 자체보다 어떻게 생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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