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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124] 화가 윤옥순, 기(氣)의 격동을 화면에 담아 생명의 실상을 추구한다

작가 내면세계를 풍성한 색상과 힘찬 필치로 표현
동양정신 바탕으로 인간·예술·자연의 본질 탐색

화가 윤옥순은 경북 영일만 흥해에서 태어나 포항여중고, 세종대학교, 영남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공부를 마친 뒤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구에서 예고 교사, 영남대 강사, 우봉미술관 초대관장을 지냈다. 젊은 시절부터 작품활동에 몰두해 지난 2009년 뉴욕에 오기 전까지 서울과 교토, 파리 등에서 21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 한국과 해외에서 열린 유수의 그룹전에 170회 이상 참가했다.

그는 또 윤옥순 조형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했고, 대구시 미술대전 심사위원(200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2002년), 이인성미술상 수상후보자 심사위원(2004년)을 역임했다. 또 한국미술협회 이사, 대구아트엑스포2002와 NAAF2008 조직위원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미술 분야 활동에 대한 공헌을 인정 받아 2005년 국무총리상, 2008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국 화단에서는 나름대로 입지를 가진 미술인으로 활동한 셈이다. 현재 윤옥순의 작품은 대구문화예술회관, 한국통신연수원, 오사카 총영사관, 대구 지하철 2호선(범어역 벽화 공모 당선작·3000호 크기), 포항시 신청사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는 뉴욕시 맨해튼에서 지내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윤옥순이 한국에서의 화려한 활동과 조명을 뒤로 하고 뉴욕에 온 것은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윤옥순은 “작가는 늘 작업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더 늙기 전에 원도 한도 없이 그림만 그려보고 싶어 한국의 모든 직장들을 다 버리고 이곳 뉴욕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윤옥순이 처음 그림을 접하게 된 것은 집안 식구들 영향이 크다. 윤옥순은 어린 시절부터 언니와 오빠들이 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됐다. 초등학교부터 미술에 타고난 재능을 보이면서 많은 상을 탔다.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게 된 데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 큰 계기가 됐다. 윤옥순은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그렇듯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윤옥순의 그림은 동양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작품세계의 정신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신들린 듯, 또는 구도자의 자세를 느낄 정도로 진지하다. “내가 작품을 하면서 갖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은 ‘화중구도(畵中求道)’, 곧 작업을 하면서 도를 닦는 것이다. 이는 창작을 할 때 수양하는 마음, 즉 도를 닦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윤옥순은 자신의 화론을 이야기 할 때 동양철학에 나오는 ‘우주만물의 근원은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있다’는 대목에 집중한다. 윤옥순은 이러한 동양사상과 정서를 바탕으로 ‘지(地)’는 땅으로, ‘수(水)’는 물로, ‘풍(風)’은 나는 새로, 그리고 ‘화(火)’는 꽃으로 모습을 바꾸어 그리고 있다. 여기서 가장 오래 그리고 중심적인 소재는 ‘물’이다.

“물은 형태도 색채도 없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받아 들이는 가이 없는 포용성을 갖고 있고 항상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을 주며 또 모든 것을 받아 들이면서 항상 ‘그대로’다. 나는 물의 표현을 통해 평온과 안녕을 향수(享受)하고, 자유와 사랑을 구가한다. 그러면서 모태(母胎)의 양수(羊水) 표면에 떠있는 난자(卵子)에 자신을 대입(代入)해 부유하는 ‘인간 생명 최초의 상황’을 체험(體驗)한다. 물과 인간 생명이 최초로 만나는 것, 그리고 부유(浮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물과 인간과의 불가분의 관계와 생명의 생성. 이것이 나의 물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고 작품을 하는 토대다.”

그는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인 조형과 붓의 움직임, 색상을 자유스럽게 배치해 생명력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 낸다. 그가 운용하는 붓의 움직임은 활달하고 힘차고 격렬한 운동성을 포함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뜨거운 추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 담겨 있는 에너지가 터져 나올 듯이 격정적이다. 이러한 거의 그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투여한 힘을 느끼게 하고 인간의 예술, 인간의 표현을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그것은 물이 갖고 있는 무한한 운동성, 무한한 생명력의 표상일 수 있다. 윤옥순이 이렇게 물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하게 된 데는 그가 태어난 고향과 생활했던 환경의 영향이 크다.

“나는 바다와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늘 바다를 자주 찾곤 했다. 바다가 연출하는 갖가지 색채와 형상들은 걷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환상을 주었다. 나는 지금도 푸른 하늘로 비상하는 갈매기의 울음소리,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수평선의 노을,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물결,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 뒷동산을 스치는 솔바람 소리, 바닷물의 그 부드러운 감촉, 어머니 살갗의 따스함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모든 것을 받아주면서 또한 모든 것을 주는 어머니와 바다. 그것은 영원불변의 사랑이며, 생명의 근원임을 확신한다. 아침 바다는 하루를 여는 기쁨을, 밤바다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분노를, 겨울바다는 슬픔을, 여름바다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바다에 많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바다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없이 그 안으로 자신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옥순의 이러한 작품세계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이렇게 풀어서 설명한다.

“윤옥순이 지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작품 세계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진지한 탐구다. 예술가에게 있어 생명에 대한 문제와 그 근원을 형상화 하려는 노력은 철학자에게 있어 생명의 근원을 연구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는 동양의 사유세계에서 말하는 우주만물의 원리이자 근원인 ‘리(理)와 기(氣)’, 그 중에서도 ‘기(氣)’의 조형화에 자신을 던지고 있다. 그의 생명원리에 대한 이러한 근본이념은 그의 조형철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작품의 소재 역시 동양적 우주관에서 말하는 땅, 물, 불 그리고 공기 네 가지 구성요소에서 가져오고 있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기(氣)’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는 물이라는 소재, 그리고 공기와 그의 흐름으로 느껴지는 ‘기(氣)’ 즉, 생명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무엇보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빠른 붓질의 움직임, 호흡을 암시하는 듯한 이미지, 그리고 단순화된 형상들이 중심적인 주제다. 그리고 갈필이 가로지르는 화면은 우주의 충만한 에너지, 혹은 우주만물의 근원적인 힘의 흐름을 자기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윤옥순은 자신이 그림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혼자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윤옥순은 외로운 길이지만 예술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길을 꾸준히 걸어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다.

“아마 내가 이곳 뉴욕에 늦게나마 올 수 있고,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은 돌봐야 할 가족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옛날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아서, 철저하게 외로움을 느끼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림을 그린다. 작가는 그림 그리는 것이 곧 숨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있기에 열심히 숨을 쉬고(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곳 맨해튼에서 뉴욕만이 갖고 있는 기(氣)와 에너지를 느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요즘에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원 기자 jwpark88@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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