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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 다큐멘터리-23] 생활에 얽힌 얘기들 (1)

"김치 먹다 들키면 채찍질까지…" 선인장 담가 먹기도

▶김치단지 버려라 '채찍질'도

언제부터 한국사람들이 김치를 담아 먹었느냐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김치는 기원전 700년인 중국의 주나라 문왕 때로 되어 있다. 그래서 김치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봉유설'에는 김치의 주재료인 고추가 조선 선조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적혀있다. 이조 때부터 김치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 자료다. 고추 못지 않게 중요한 소금이 흔하게 사용됐던 것은 고려 때부터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고려 때부터 백김치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이든 김치와 한국인은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한끼만 김치를 걸러도 개운치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비록 밥은 못 먹을 망정 김치는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 여행을 한 사람들의 대부분도 김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시기야 어떻든 초기 아메리카의 한국인들도 김치를 즐겨 먹었다. 그리고 김치 때문에 많은 수난을 겪었다.

▶냄새 원흉 찾아 집안 강제 수색

하와이의 조태룡씨의 얘기다.

"배추를 심어서 자기들이 김치를 담가 먹었다고 그럽니다. 그러니 아시다시피 먹는 우리는 모르지만 김치 냄새가 굉장히 나거든요. 그런데 감독관들이 한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막사를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점검을 했다고 그래요. 군대 생활하고 똑같죠.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도 해야 되고 검열도 받아야 되고…. 이러다가 보니까 와보면 이상스런 냄새가 나거든요.

이것이 무슨 냄새냐고 물으면 쉬쉬하고 아무도 얘기도 안 하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고약하니까 나중에는 집안을 다 뒤지고 강제 수색을 했지요. 그래 가지고 김치 단지가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 다음에 그들은 일단 김치 단지를 버리고 난 다음에 벌을 주고 채찍질까지 하고…. 그렇다고 해서 안 먹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냄새가 안 나게 봉하고 또 봉하고 해서 감추어 두었다가 먹다 들키면 그 야단을 맞으면서도 김치를 먹었죠."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초기 이민들은 김치를 먹었다. 김치뿐만 아니라 젓갈까지도 만들어 먹었다. 행여 그 냄새가 밖에 새어 나가지 않을까 해서 싸고 또 쌌다. 김치 냄새만큼이나 지독하게 김치를 지켜 온 셈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2세 동포 김 마리아 할머니의 설명이다.

"이 냄새가 무슨 냄새냐?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이웃집 사람들이 그래요. 알죠 우리는 그것 때문에 냄새가 난다는 것을. 그래서 어머니가 젓갈이나 김치 같은 것을 만드실 때는 문을 꽉 잠그시고 그걸 만드셨죠. 또 옆에 사람들이 많을 때는 그런 것을 못 잡수어요. 괜히 그 사람한테 망신을 당한다고…."

▶멕시코서는 선인장 김치 담아

아메리카 대륙에는 소위 조선 배추가 없었다. 양배추라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 양배추로 담을 수도 있었지만 걸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초기 이민들은 그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와서 배추를 재배했던 일본 사람들이나 중국사람들한테서 샀다.

그러나 멕시코의 초기 이민들은 처음엔 그것마저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김치를 담갔다.

티후아나의 김경우씨의 얘기다.

"멕시코에 처음 왔을 때 배추니 무 그런 것들이 거의 없었고 눈에 띄지를 않았다고 그래요. 그러나 김치는 먹고 싶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살면서 김치를 만들어 먹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멕시코에는 선인장 종류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멕시코 사람들이 식품으로 개발한 선인장이 있어요. 그 식품으로 개발한 선인장을 잘라서 김치를 담가 먹었다고 합니다. 저도 못 먹어 봤으니까 모릅니다만 맛이야 달랐겠지만 조금 비슷했겠죠. 그렇게라도 해서 먹어야 했던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생활이 안타까울 뿐이죠."

아메리카의 초기 이민들이 김치만 만들어 먹은 것은 아니다. 고추장 된장 간장까지도 만들어서 먹었다. 메주콩이 그곳에 있을 리가 없다. 아메리카대륙에는 조그맣고 새하얀 콩이 있다. 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는 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면 족했다. 그 콩으로 메주도 만들고 그것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까지 만들었다.

▶된장 간장 젓갈 묵까지 만들어

김 마리아 할머니의 얘기 다시 들어본다.

"김치 고추장 된장 젓갈 한국에서 먹었던 것은 모두 다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묵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거기에 물론 한국 식품점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집집에서 각각 만들어서 먹었죠. 냉국 그것도 먹었습니다. 냉국 아시죠?"

김 마리아 할머니는 지금껏 한국에 와 본 일도 없는 동포 2세다. 그런데도 그 집 냉장고에는 항상 김치 통이 마련돼 있다.

▶'건더기'는 저희들이 먹고 우리는 물만 준다

1900년대 초 서울에는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프랑스와 러시아 등 각국의 대사관들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는 많은 서양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커피를 가지고 와서 마셨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로 떠난 초기 이민들이 커피를 알았을 리 없다. 멕시코에서는 이 커피 때문에 생긴 웃어야 할 일화가 있다.

로스앤젤레스 우상범 목사의 얘기다.

"멕시코 농장주인들이 아침에 커피를 끓여주는데 커피를 끓이면 물은 다 위에 있고 갈아 넣은 커피는 가라앉지 않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 물만 떠 주니까 한국 분들이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말로 하면 '건더기'는 저희들이 다 먹고 우리는 물만 줄 수가 있느냐? 그런 불평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그러면 이 건더기를 먹어 보아라. 그래서 먹었는데 써서 못 먹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있다. 멕시코에서는 당시에 소의 내장을 먹지 않고 버렸다. 한국사람들이 그냥 보고만 있었을 리 없다. 더구나 그들에게 충분한 식사가 공급되지도 않았던 때였다.

멕시코 시티의 최병덕씨의 설명이다.

"그때 소를 잡는데 말이죠. 창자를 모두 버렸습니다. 창자 뿐만 아니라 머리 발꼬리 같은 것을 모두 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인 부인들이 이것을 보고 서로 주워 가려다가 다투었다고 해요. 내가 먼저 왔다 네가 먼저 왔다 해 가지고 말입니다. 그것을 소잡는 사람이 보고 칼을 가지고 와서 절반을 잘랐대요. 둘이면 둘 셋이면 셋씩 잘라서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멕시코에서도 소의 내장이나 머리 발 꼬리부분이 버려지지 않고 팔리고 있다. 어떤 동포는 그것이 바로 우리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리= 천문권 기자 cmk@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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