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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나아만…한센병 걸린 적국의 군장관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교무처장

고대로부터 나병(국제적 표기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형벌 즉 천형이라 하였다.

이러한 천형의 병고를 구슬프게 노래한 나병 시인 한하운의 시 '소록도로 가는 길에'의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중략)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신발겸용버선)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일단 나병에 걸리면 얼굴과 손 발 등 외부로 노출된 거의 모든 부분이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예로부터 나환자들은 경계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 고통당한 이가 있었다. 구약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인근국가이자 적국이었던 아람국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그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다윗과 솔로몬시대까지만 해도 아람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약체국가였다. 그러다가 남북왕국으로 분열된 이후 이스라엘의 국력이 급속히 약해진 틈을 타 아람은 세력 확장을 꾀하였다. 아람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변방지역을 자주 침입함으로써 그 둘 사이의 적대감정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람의 벤하닷 왕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더불어 아람국을 침공하였는데 그 때 아람의 나아만이 아합 왕에게 활을 쏘아 치명상을 입혀 결국 그를 죽게 하였다. 그런 점에서 나아만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아람의 전쟁영웅이자 공신이었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원수였던 셈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당해야 했다. 나균이 퍼져나가는 그의 몸은 점점 썩어가면서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땅에서 전쟁 중에 잡아온 계집종은 나아만에게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소개해 준다. 서로 견원지간인 채 으르렁대는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한 국가의 군대장관이 적성국가의 일개 선지자를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군대장관이라 한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놓고 저울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산이었을까 한 여종의 귀띔으로 나아만은 치료자에게 사의(謝意)를 표하기 위한 두둑한 선물과 함께 발길을 급히 이스라엘로 향하였다.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급작스럽게 방문하자 북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그가 북 왕국을 칠 빌미를 잡으러 온 줄로 알고 혼비백산했다 한다. 나아만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는 그와 그가 가져온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방안에서 사환을 보내어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명령하였다. 엘리사의 푸대접과 당황스런 치료방법에 순간 분노가 치밀어 돌아가려 하였지만 동행한 종들의 만류로 나아만은 꾹 참고서 그의 지시대로 행하였다. 순종과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쌍두마차와 같다.

믿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지 않은가? 기적은 일어났다. 나아만의 몸 구석구석 썩어 문드러진 흉물스런 흔적들은 말끔히 사라졌다. 아마도 이것이 적군이라도 부상당하면 치료해 준 최초의 인도주의적 행위가 아닌가 싶다. 그 이후 나아만은 북 왕국을 공격하지 않았다. 한솥밥 먹다가도 깨지면 철천지원수가 되는 세태에 원수까지도 포용하는 엘리사의 통 큰 행보와 나아만의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은하는 자세가 봄바람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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