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 세상] 카이스트와 싸이스트
이원영/편집국 코디네이터
서남표 총장 개혁도 초일류
여론의 질책에 의연하기를
한국에 '싸이'라는 가수가 있다. 이름은 '사이코(psycho)'에서 따왔다. 대충 짐작 가듯 그는 약간 정상 궤도를 벗어난 인물이다. 말도 거침없고 무대 매너도 상식을 뛰어 넘는다. 버클리 음대를 나왔고 천재 소리를 듣는다.
건방이 잔뜩 들어 잘난 체하는 인물로 비친다. 실제로 그에겐 안티팬이 많다. 그를 보면 재수없다는 독설도 다반사다.
그런 별종인 그가 한국에서 라이브 공연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 대구에서는 18번째 전국 공연이 열렸다. 매진 사례였다. 지난해 이어진 공연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소극장 공연을 하고 있다. 객석을 꽉 채워야 1000명 안팎이다. 그런데도 그는 레이저 장비나 3D스크린 영상 등 최첨단 무대 장치를 한다. 이유는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지난 9일 대구 공연에서는 3시간 공연을 마치고 무려 40분 동안 앙코르에 응했다.
객석에 앉았다고 청중들이 모두 열광하는 건 아니다. 싸늘하게 팔짱 끼고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싸이는 공연 중간에 청중을 향해 외친다. "여러분 나한테 지지 마세요.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가수와 함께 미치며 최고의 공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싸이'의 얘기가 불현듯 생각난 것은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카이스트 학생 연쇄 자살과 서남표 총장의 사퇴 압력에 관한 뉴스 때문이다. 올해 4명의 학생들이 자살했는데 서 총장이 학생들을 너무 공부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로 자살했을 것이란 언론 분석이 주를 이룬다.
서남표 총장은 2006년 취임 후 대학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연구 안 하는 교수들의 '철밥통' 관행을 없애기 위해 연구실적을 엄격하게 심사했고 많은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국비로 전액 장학금을 받는데 안주해 있던 학생들은 서 총장이 소위 '징벌적 등록금'제를 실시하면서 안락함을 잃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학비를 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자 서 총장은 미국 MIT에서 공부할 때를 상기하며 "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았다"고 응수했다. 서총장의 이런 개혁 드라이브는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끌었다. 2009년 영국 더 타임스와 대학평가 기관인 QS가 공동을 실시한 평가에서 카이스트는 공학과 IT부문에서 세계 21위를 차지했다. 100위권 이내에 랭크된 것은 한국 대학으로선 처음이다. 연임에도 성공했다. 언론도 찬사 일색이었다. 기부금이 1600억원 가량 쏟아졌다. 서 총장의 개혁에 보내는 국민들의 박수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했다고 서총장의 개혁이 총체적 난국이라니. 한국 언론의 냄비성은 알아줘야 하지만 죄다 서총장의 '개혁 실패'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퇴진을 재촉하고 있다.
싸이의 발광하는 모습이 싫은 사람은 공연에 안 가면 된다. 이왕 공연장에 들어왔으면 '미쳐서 이기라'고 싸이는 주문한다. 서 총장도 그렇다. 공부가 싫으면 떠나서 자기의 적성에 맞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최고를 지향한 싸이나 서 총장의 차이를 모르겠다. 싸이의 주문대로 미쳐서 함께 논 청중(그들을 싸이스트로 부르고 싶다)들은 공연이 끝난 뒤 "원 없이 잘 놀았다"고 행복해 한다.
서 총장은 싸이의 용기와 자신감에 주목하길 바란다. 나약한 학생들에 편승하는 언론에 굴복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공부에 미친 아이들과 멋진 국가 미래를 설계하며 행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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