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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독립운동 현장을 가다-하와이 (중)] 대법원장·연방판사…눈물의 씨앗으로 뿌린 하와이 후손들

"동포사회 분열보다 과정에 초점 맞춰야"
문대양 전 대법원장 등 자랑스러운 한인들 많아

수입 25% 독립자금 제공
부 축적할 여유조차 없어


”1909년부터 1920년까지 하와이 동포가 어린이를 포함 7000명이 채 안된 상황에서 동포들은 실제적으로 자신의 수입의 25%정도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출판된 ‘하와이 동포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인하대학교 출판부)’라는 책의 한 대목이다.

1903년 미주 최초의 공식 이민지인 하와이에서 동포들은 사탕수수밭과 파인애플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해서 어렵게 모은 돈을 그렇게 썼다.

◇독립운동자금 대느라 포기한 ‘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운동은 대한인국민회, 구미위원부, 재미한족연합회 등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대한인국민총회에서 모금한 독립운동지원금인 혈성금 영수증 등 당시 자료들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이덕희 이민사 연구가는 “선조들은 부를 축적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이민이 약 20년 앞섰고 숫자적으로도 많았습니다. 중국은 1852년부터 와서 농장에 있었고 비즈니스를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아요. 하루 벌어서, 한달 벌어서 번 돈의 반을 독립운동에 바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분열 강조보다는 과정 인정해야

“국민회 사람들은 대부분 감리교회를 나갔고, 이승만 박사는 동지회를 세우면서 기독교회를 세웠지만 서로가 적일까요? 갈라지는 걸까요? 옛날에 나눠졌다고 생각하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는 후에 이민 온 사람들의 잣대입니다.”

이 연구가는 하와이 한인사회가 국민회와 동지회를 주축으로 갈라졌다는 판단은 옳지 않다며 한국에서는 이승만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저 역시 대학 때 독재정권 반대운동에 참가했었던 4·19세대였어요. 독재를 하고 부정 선거로 하야를 했다고 그 점만 부각하지 말고 나라를 세우기까지 어려운 시기를 끌어왔던 행적을 이해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1960년 일어난 4·19혁명으로 일주일 뒤인 26일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은 5월 29일 하와이로 돌아왔다.

그 누구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하와이 망명 항공편을 돌보지 않았다. 하와이 동포들과 하와이에 있던 미국인 지인들이 비행기 전세 비용 3만4000달러를 해결했다. 요양원에서 지낸 말년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국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했다.(‘하와이 동포의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 중 제3장 조국의 주춧돌을 놓은 심정으로’)

◇눈물의 씨앗, 기쁨의 추수되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는 성경 구절처럼 108년이 지난 하와이 한인 후손들은 ‘고진감래’의 열매를 누리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하와이 한인들은 “나라 잃은 슬픔, 타향살이 설움에 힘겨운 노동에도 나라를 되찾고 자녀교육을 시키겠다는 선조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인 사회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해 하와이 한인회장은 “과거에는 한인들이 농장주 밑에서 노동을 했지만 지금은 작게라도 자기 비즈니스를 갖고 있는 사업주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특히 문대양 전 하와이주 대법원장은 하와이 이민사 성장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초기 사탕수수밭 노동자로서 독립운동자금을 보내고 6.25전쟁 당시 구호물자를 모았던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뼛속까지 한인으로 자란 그는 1993년 미국에서 한인 최초의 대법원장이 됐다.

“해리 김 빅 아일랜드 하와이 카운티 시장, 7선에 성공한 실비아 장 루크 하와이주 하원의원 등 하와이에서 영향력 있는 한인 인물들이 꽤 많아요.”

그 외에도 사탕수수밭 노동자 후손이자 아시안 최초로 연방판사가 된 고 최영조(미국명 허버트 최 1916-2004)판사, 최초의 한인 여성 판사로 기록된 캐런 안 판사, 듀이 김 전 하와이대 커뮤니티 칼리지 총장, 한인 3세인 팻 하마모토 전 하와이주 교육국장 등 다수다.

사진신부였던 어머니가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재혼하면서 태어난 리 도나휴 전 호놀룰루시 경찰국장도 하와이 동포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한인으로 꼽혔다. 그는 1998년 경찰국장 발표 직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인 후손임을 가장 먼저 밝힌 한인 2세다.

호놀룰루=이성은 기자

협찬: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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