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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못해도 한국은 내 안에 있어요", 독립운동가 안원규 선생 손녀…여성 최최 한인 판사 캐런 안

하와이 호놀룰루 다운타운에 있는 순회법원.

지난달 25일 오후 2시쯤 법원 2호실에는 한창 마약 밀매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판사석에 앉은 한인으로 보이는 유일한 동양인. 미주 최초의 한인 여성 판사로 기록된 캐런 안(64·사진)판사가 눈에 들어왔다.

1994년 오하우섬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는 11년 동안 순회법원에서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다루는 베테랑 판사다.

재판이 끝난 후 “강력범죄 사건만 다루면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그가 씩하고 웃었다. “전혀요. 비극도 있지만 일 자체는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그의 집무실에는 한국 기념품 등 한 눈에도 한국적인 것들이 많았다. 한국 갈 때마다 사온 것들 이랬다.

안 판사는 작년 10월에도 타주 한인 법조인들과 함께 본국 대법원의 재외한인법조인 초청행사에 참석차 일주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독립운동가 3세

안 판사는 한인들의 지지단체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국민회를 조직하고 후에 총회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안원규 선생(1878~1947)의 손녀다. 1903년 하와이에 온 안원규 선생은 사후인 1995년 건국훈장을 받고 1988년 본국의 해외선열 유해봉환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셨어요.

“저는 어렸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부모님께 들은 게 많아요. 양복점을 했던 할아버지는 기금을 모아 독립자금을 마련했고. 한국의 청년들이 사탕수수밭에 일하기 위해 올 때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고 다독이시면서 공짜 양복 한 벌씩 해 주셨어요.”

-할아버지 유해환국 안장식에 참석하셨다고요.

“할아버지가 기뻐할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이 너무 행복했죠. 분골함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렸죠. 장중하게 거행되는 안장식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한인 최초의 여성 판사

1946년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그는 보스턴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하와이로 돌아와 ‘애드버타이저’, ‘채널2’ 등에서 언론인으로 10여 년간 근무했다.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공보실로 옮기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언론인에서 돌연 법대에 진학했네요.

“백악관 시절 모든 이목은 유럽에 쏠렸었어요. 한 번은 태평양 인근 문제를 다루기 위한 별도의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국내 정책 관계자에 건의했더니 ‘너는 언론인인데 뭘 안다고 하냐’는 식의 답을 들었어요. 그 때 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법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말 못해도 내 안에 한국 있다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요.

“한인이라는 게 자랑스럽죠.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 그거 아세요? 그냥 간단히 말해서 한국은 제 안에 있어요.”

-한인 후배들을 위한 조언?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결단력이 있어야 해요. 법조인이 되려면 성적도 잘 받아야 하고요. 운도 따라야 하지만 기회가 올 때 잡을 준비는 해야죠. 또 한가지, 현명해 지려면 여행을 많이 하세요.”

◇은퇴 후에는 사진작품 활동 하고 싶어

커리어를 쌓다 보니 평생 독신이 됐다는 안 판사는 세상과의 의사소통을 강조한다. 법조인이든 언론인이든 세상과 소통하는 일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은퇴 계획은요.

“몇 년 뒤 이 법원에서 은퇴하겠죠? 사진을 찍으면서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니까.”

-포토 저널리스트가 될 건가요?

“하하! 전문직은 어렵겠죠. 그래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제 다음 인생의 막은 나 보다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더 찾을 겁니다.”

안 판사는 이틀 뒤 휴가를 내고 2주일 여 동안 쿠바로 출사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사진기와 녹음기, 펜을 가방에 챙기는 기자에게 말했다.

“저도 한 때 기자였기 때문에 기자란 직업을 사랑합니다. 일만 하지 말고 하와이 구경도 많이 하고 가세요.”

이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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