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전영선 소장의 한국 자동차 비사-1] 임금님의 첫 차

"날로 개명하는 밝은 뜻을 보이소서" 고종 첫 차는?

즉위 40년 맞아 '자동거' 도입…미국서 이듬해 수입
포드 모델C, 캐딜락 분명치 않아…유럽차일 수도
갑오겨장 뒤 가마 못타게 된 대신들엔 인력거 하사


“폐하.”

“말씀하시오, 탁지(度支)대신.”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금번 칭경식(稱慶式)은 개화문명에 맞도록 신식으로 거행함이 지당한 줄 아옵니다.”

“어떻게 말씀이오.”

“폐하께서는 지금 서양에서 타고 다닌다는 자동거(自動車)에 대한 소식을 아시옵는지요.”

“그야 외국공사들로부터 들어 대강은 알고 있소. 그리고 작년에 영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서절로 참관했던 청안군과 의양군에게 들은 적도 있소만….”

“그 자동거라는 것이 빠를 뿐만 아니라 매우 편리하다고 하옵니다. 원하옵건대 이번 칭경식을 기념하는 뜻에서 서양으로부터 자동거를 한 대 들여와 폐하를 예식장까지 모시고저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아도 궁한 나라살림에 칭경식까지 열어 짐의 마음이 무거운데 내가 어떻게 그 비싼 자동거까지 타겠소.”

“폐하! 이것은 폐하께서 날로 개명하는 밝은 뜻을 몸소 백성들에게 보이시어 이 나라에 개화 문명을 펼치시는 길이오니 아무쪼록 소신들의 주청(奏請)을 거두어 주옵소서.”

1902년 12월은 조선 왕가에 있어 매우 뜻 깊은 해였다. 고종이 재위 4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위기간 중 수많은 풍파를 겪었다. 그렇지만 40년간 임금의 자리를 지켜 왔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그래서 대신들이 뜻을 모아 큰 잔치를 베풀어 고종을 위로하려 했다.

이 잔치를 '칭경식(稱慶式)'이라 했다. 고종은 대신들의 거듭된 주청에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어 거국적인 잔치 준비로 나라 안이 떠들썩했다. 그런데 몇몇 대신들이 기왕이면 이 기쁜 날 고종을 자동차로 연회장까지 모시자고 의견을 모았다. 고종황제로부터 어렵사리 허락이 떨어지자 탁지부대신(재무부장관) 이용익(李容翊)이 미국공사 호레이스 알렌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대감."

 "다름이 아니오라 칭경식 때 황제폐하를 모시기 위해 당신네 나라에서 자동거를 한 대 구입하고 싶은데 좀 도와주시겠소?"

 "그거 참 좋으신 생각입니다. 이 나라가 자동거를 들이려 하는데 어찌 도와드리지 않겠습니까. 염려마십시요 대감."

 알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 판매업을 하던 친구 프레이저에게 승용차 한 대 보내 줄 것을 전보로 부탁했다.

 이 시절 임금님과 대신들이 탈것이라고는 마차와 인력거뿐이었다. 개화 바람을 일으킨 갑오경장(1894년) 때부터 대신들은 가마 등을 못 타게 했다. 전차 기차 화륜선(증기선)이 나타난 세상에 옛날의 탈것을 고집한다는 것은 시대에 뛰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급 관리와 예식에서 공연할 기녀들은 칭경예식장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양 자동차를 혼자 타기가 미안했던지 고종은 탁지부 대신을 불렀다.

 "여보시오 탁지부 대신."

 "부르셨습니까 폐하."

 "칭경예식장까지 조정의 대신과 귀빈들이 걸어가게 할 수 없으니 이왕이면 인력거를 한 백 대쯤 사들여와 그들과 기녀들을 태우는 것이 어떻겠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잔치가 끝나거든 그 인력거들을 전부 대신들이나 고급관리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시오."

 이렇게 해서 자동차와 함께 인력거 10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궁내 고급관리들의 관용차로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1902년 겨울 너무나 춥고 흉년이 들어 잔치를 베풀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다음해인 1903년 봄으로 칭경식을 연기했다. 정작 미국에서 들여온다는 이 자동차는 때를 맞추지 못하고 칭경예식이 끝난 뒤에나 도착했다.

 역사책에는 "고종 어용으로 미국에서 자동차 한 대를 도입하였다"는 간단한 기록밖에 없다. 물론 그 차의 존재는 현재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들여왔다는 고종의 첫 어차는 포드 모델C 아니면 캐딜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회사는 칭경예식이 열렸던 1903년에 설립됐다.

따라서 실제 가져온 자동차는 미국이 아닌 유럽 쪽에서 사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미 영국.독일.프랑스에서는 왕들이 탈 수 있는 리무진 형태의 큰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포드 또는 캐딜락은 왕이 없는 미국이기 때문에 호화로운 리무진은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임금이 운전석 뒤에 별도로 편히 앉을 수 있는 4인승 차를 몇 대 생산했기는 했다. 그래서 만약 미국 것을 들여왔다면 포드 모델C나 캐딜락이었다는 추측이 나름 설득력 있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