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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 다큐멘터리-20] 멕시코 초기이민자 생활 2

4년후 노예노동 풀렸지만…돈없어 '귀국 꿈' 물거품

▶탈출하다 붙잡히면 채찍질

채찍으로 맞아 피가 흘렀다. 그리고 1주일 동안을 움막에 갇혀야만 했다.

"하루는 한인 가운데 한사람이 몰래 도망을 해 나가지 않았겠어요. 그 이튿날 한인들을 모두 불러다가 점고(점호)를 합디다. 세워 놓고 몇 명인지 도망갔나 안 갔나 그걸 보려고. 그런데 없지요. 도망했으니까. 전화를 합디다 그려. 붙들어 오라고. 찾아가지고 들어오지 않았겠어요. 그래가지고 가뒀습니다 그려. 가두었다가 그 이튿날 꺼내다가 채찍으로 치는데 채찍을 물에다 불려 놓았다가 그걸로 치는데 엎어놓고 바지를 벗기고 치니 피가 툭툭 터져 나오죠. 그리고는 가두었어요. 한 주일 동안을 가두더니 그 다음에 꺼내 주었어요."

4년이 지난 뒤 멕시코 이민들은 노예 노동에서 풀려났다. 그래서 귀국하려고 했다. 당초 계약 조건은 4년뒤에는 고국으로 보내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다.

하와이의 동포들은 한일 합방소식을 듣고 주저앉았지만 멕시코의 이민들은 그래도 귀국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가진 것이 없었다.

하와이 이민들이 하루 69센트를 받고 있을 때 그들은 하루에 겨우 25센트씩 받았었다. 그래서 한 사람도 귀국하지 못 했다.

▶ 한 사람도 귀국 못해

"한국 나가기 그렇게 원하셨는데 못 나가셨어요. 돈이 없어서…."

"뭘 가지고 갑니까? 뭘 가지고 가요? 벌이가 변변해야지요. 갈 맘이야 다 있었지요…."

멕시코의 한인들은 노동계약 기간이 끝나는 4년뒤에 어떤 일이 있어도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멕시코말을 배운 사람도 없었다. 그 나라의 풍습을 익힌 사람도 없었다. 그저 돌아가는 것만이 꿈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는 어떻게 하든 먹고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뭘 할지를 몰랐다. 도대체 그들은 멕시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다시 농장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병덕씨의 얘기다.

"풍속도 모르고 이 나라 법률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은 분들은 그저 어저귀(에네켄)를 따고 있었죠. 나부터도 그때 어저귀를 따고 있었습니다. 8살 때부터 어저귀를 땄으니까…."

자유로 노동할 수 있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멕시코는 그 당시에도 너무 싼 임금이었다. 몇 년을 일해도 목돈 한번 만져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몇 사람이 도시로 떠났다.

▶도시진출 꿈 … 돈없어 포기

"그렇게 이 농장 저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오랜 세월동안 일을 하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 메리다라는 도시가 있는데 도시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가지고 도시로 나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씩 도시로 나와서 살았는데 상업을 해야 할텐데 기반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어렵게 살았었죠.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도시로 가보자 그래서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다니는 과정이 또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방황하다가 다시 농장에 와서 노동을 하고 또 누군가가 다시 도시로 나갔고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생활을 해왔다. 농장에서 꾸준히 있었던 사람들도 한 농장에만 있지는 않았다.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면 농장을 옮겼다. 그곳이 나쁘면 또 옮겼다. 그렇다고 돈을 더 벌었던 것은 아니다.

▶김치 먹으려 3~4년 돈 모아

현오목 할머니는 당시 김치거리 하나를 살려해도 몇년동안 돈을 모아야 했다고 얘기한다.

"그때 대도시인 메리다로 나와야만 김치거리를 사는데 메리다에 나올 돈도 없어요. 2-3년 정도의 기간이 지나야 메리다로 나올 수 있었어요. 비로소…. 어떤 때는 4년만에 나와요. 돈 몇 푼 모아 가지고…. 그러면 그때 김치 거리를 좀 사셨죠."

몇 년만에 한번씩 겨우 김치다운 김치를 먹었다는 얘기는 정말 가슴아픈 얘기다.

멕시코 이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미국으로 옮기려고 했다. 미국에 있는 초기 이민들도 멕시코의 한국인들이 자기들보다도 못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중에도 멕시코 한인들의 미국 이주를 위해 필요한 경비 1만 2천 달러를 모금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반대로 이 일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멕시코 이민들은 시기적으로도 불행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가난을 벗지 못했다. 이 농장에서 저 농장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방황해야만 했다. 그 기간은 40여 년이나 됐다. 그 사이에 일부는 쿠바의 설탕농장으로 옮겨갔다.

그 후 어떤 사람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도시인 티후아나로 왔다. 그 사람이 그곳에서 돈을 벌었다. 그는 농장의 한국사람들을 불러들였다.

▶티후아나 정착 현재 1천여 동포

김경우씨의 설명이다.

"처음에 이곳에 오신 분이 구멍가게처럼 식료품상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구멍가게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만 그 구멍가게를 만든 다음에 처음에는 조금씩 외상으로 얻어다가 판 뒤에 돈을 갖다 주고 또 얻어다가 갚아주고 그런 식으로 한 3년 하니까 돈이 불어나서 제법 가게가 커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 뒤에 온 사람도 역시 식료품상을 했고 또 그 뒤에 온 사람도 식료품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식료품상을 해나가다가 이제 자본이 조금 되니까 다른 것으로 바꿔서 지금은 여러 종류의 다른 사업들을 많이 하고 있죠."

지금 멕시코의 티후아나에는 1천 여명의 한국계 동포들이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3세 4세들이다.

1세는 당시 95살 김은순 할머니 한 분이 있을 뿐 전부가 세상을 떠났다. 어저귀 밭의 노예노동과 가난과 서러움에 시달렸던 그들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와이 초기 이민들처럼 사진혼인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혼혈이 많다. 그보다는 이미 멕시코 사람이 다 돼버렸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정리= 천문권 기자 cmk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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