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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온경의 책세상] 천장' 뚫은 미 최초 여기자 이야기

송온경/도서미디어 교사·데이비슨 초등학교

The Daring Nellie Bly -America's Star Reporter
저자: Bonnie Christensen
대상연령: 2~5학년
쟝르: 전기(biography)


3월은 '여성역사의 달'이었다. 미국 여성들은 100년 전만 해도 투표권이 없었다. 일할 수 있는 곳도 학교나 공장뿐이었다. 임금 역시 남성들에 비해 훨씬 적게 받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사회 구석구석 일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다. '여성은 기자가 될 수 없다'는 사회 통념을 깨고 미국 최초의 여기자가 된 넬리 블라이는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자랑스러운 여성이었다.

블라이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코크란으로, 1864년 펜실베이니아주 코크란즈 밀즈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이 아버지의 이름을 땄을 정도로 그녀의 아버지는 땅을 많이 소유했고 또 판사였다. 풍족한 어린 시절 그녀의 어머니는 검정, 회색, 밤색 드레스를 입는 아이들 틈에서 딸에게 레이스가 달린 예쁜 핑크색 드레스를 입혔다. 그 때부터 블라이는 군계일학 같은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6세 때 갑자기 아버지가 유언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는 남편의 재산을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 후 생계를 위해 재혼한 어머니의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이혼소송에서 블라이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성장기의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면서 살아가게 되며, 이 때부터 남편에게 의탁하는 나약한 여성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성장기의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동생들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극복한 블라이는 교사가 되려고 교원학교를 다녔으나 등록금이 없어 그만두고 만다.



가족과 함께 피츠버그로 이사한 그는 어느날 신문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기사를 보고 발끈하여 그에 항의하는 기사를 익명으로 신문사에 보낸다. 그녀의 글솜씨에 감동을 받은 신문사는 그녀에게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으로 신문기사를 쓰라고 지시한다. 꿈에 그리던 신문기자가 된 블라이는 빈곤층 소녀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기사를 썼고, 또 펜실베이니아주의 이혼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계속해서 피츠버그의 소녀 노동자들에 대하여 기사를 썼다.

그녀의 독자적인 탐사보도에도 불구하고 신문사에서는 그녀에게 플라워쇼나 패션 같은 여성적인 기사를 맡기려 했다. 편집국장를 설득한 넬리는 멕시코 주재원을 자청하여 멕시코 사람들의 실정을 현지에서 신문사에 송고한다. 미국에 돌아온 블라이에게 또다시 여성적인 기사를 쓰게 하자 이에 의욕을 잃은 그는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조셉 퓰리처가 발행하던 뉴욕 최고의 신문사 'New York World'의 문을 두드린다.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얻게 된 넬리에게 내려진 첫 일감은 뉴욕시 정신병자 수용소에 정신병자로 가장해 들어가 10일간 생활하면서 생생한 르포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그 당시 뉴욕시에는 여성 정신병 환자 수용소에 대한 불미스러운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환자를 때리고, 음식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며, 찬물로 목욕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블라이는 기꺼이 그 일을 맡아 정신병자로 가장해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10일간 체류하면서 모든 비리를 파헤친다. 불과 23살의 블라이는 그 당시 몸을 사리지 않고 잠복 조사를 통해 탐사보도기사를 쓴 최초의 여기자가 되었으며 'Stunt Reporter'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녀의 탐사 보도기사가 뉴욕 월드에 실린 후 뉴욕시에서는 정신병자 수용소들에 대한 지원금을 증액해 환자들에 대한 지원과 처우를 개선했다고 한다.

그 후 넬리는 신문사를 설득해서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소설책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기록을 깨기 위해 혼자 몸으로 세계일주를 떠난다. 달랑 손가방 하나에 80일 동안 입을 드레스와 외투 1벌씩이 전부였다. 뉴저지의 호보켄을 떠나 유럽을 거쳐 아시아를 지나 배와 기차, 당나귀 등을 갈아타며 72일 만에 미국에 도착, 수많은 환영인파에 휩싸인 블라이에게는 'Start Reporter'라는 별명이 붙었다. 블라이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기 위해 사회 개혁을 외친 선구자였다.

블라이의 이야기는 New York 1 News의 비비안 이 앵커를 연상시킨다. 캐나다로 이주한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엄격한 한국식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난 비비안 이는9살 때 스피치 경연대회에 입상하면서부터 저널리스트의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15살 때 주말마다 버스로 2시간 걸리는 조그만 케이블 방송사에 인턴으로 일하러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이 손수 쓴 스크립트를 챙기던 그녀는 지금은 간판 앵커가 되어 있다. 용의자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 가짜 소방경보를 울린 소방관 이야기 등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취재하여 보도하는 모습에서 넬리 블라이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2주 전 뿌리교육재단의 12차 뿌리포럼에 연사로 초대된 비비안 이는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난 한인 고등학생들에게 "Korean American이라는 고유의 장점을 잘 살려서,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학교공부와 과외활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정과 끊임 없는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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