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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매사 호기심 가득한 '햄달새'

"삼촌 애인 있어." 햄달새가 미국 생활을 시작한지 한달 쯤 되었을까. 어느 날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과거 한 직장에 근무했던 여자동료와 전화통화를 끝낸 직후였다.

자기와 살고 있는 할배 삼촌이 생홀아비라는 점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을 시점이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속으로 "조그만 게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관인 것은 내 곁에 바싹 다가 앉으며 "있어 없어"하고 재차 묻는 녀석의 얼굴 모습과 몸동작이었다. TV 사극 속에서 마치 주막의 주모가 객에게 다가가 뭔가 비밀스런 얘기를 묻듯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이고 찰싹 옆에 달라붙으며 속삭이듯 묻는 게 어이가 없었다.

요즘 아이들이 조숙하다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맘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었다. 촌수로 따지면 3촌에 불과하지만 햄달새가 조카라기 보다는 순간 남처럼 느껴졌다. 가까운 친인척 사이에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뭔가 통하는 것들이 적잖게 마련이다.

실제로 도저히 억누를래야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매사 호기심에 압도된다든지 은근히 예민한 구석 등은 나와 햄달새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햄달새한테서 피 물림에 따른 동질성보다는 아마도 다른 성씨에서 비롯됐을 이질성 같은 걸 더 자주 느끼게 됐다. 내 새끼가 아닌 한치건너 두 치인 외조카여서 이질성이 더 눈에 띄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를 떠올려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이 엄마는 최씨인데 우리 두 아이가 초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꼭 최씨 피 내림만이 내 눈엔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내 못된 버릇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면 먼저 외가 탓을 하고 보는 것이다. 숙제를 잘 하지 않거나 어쩌다 몸이라도 좀 아프면 나도 모르게 아이들 외가 쪽에 불편한 마음의 화살을 돌리곤 했다. 스스로 옹졸하고 못난 짓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의 남 탓 버릇은 그 자체가 천성인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내 자식들한테도 그랬는데 햄달새라고 다를 리 없었다. 햄달새가 눈에 벗어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면 즉각적으로 햄달새의 아빠 즉 매제가 눈 앞에 어른거렸다. 내 심보가 얼마나 고약한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아빠 닮아서 그럴 것 같진 않을 땐 다음으로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형제자매라도 성격이나 기질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법 매제 탓이 아니면 동생이라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였다.

하루가 다르게 햄달새의 행동거지에서 못마땅한 점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던 어느 날 불현듯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 않지만 말도 안 되는 일로 얼마나 둘이 티격태격했던가. 잘잘못을 떠나 나와 다른 점이 눈곱만큼만 드러나도 쪼아대고 으르렁거렸던 시절이었다.

일종의 밀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상대를 탐색하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달 쯤의 시간이 흐른 뒤 햄달새와 나의 갈등은 전선을 서서히 넓히기 시작했다. 그건 동생부부와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물론 햄달새를 매개체로 한 싸움이었다. 일대일로 맞붙는 부부싸움보다 어떤 면에서는 좀더 힘든 건 동생네 부부 두 사람을 상대로 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이제 10살을 막 넘긴 아이를 가운데 두고 벌이는 인생관과 생활철학의 부딪힘 같은 거였다. 둥글둥글한 성격의 매제는 그런다 쳐도 기세 싸움에서는 평생 한번도 밀린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동생과 나의 불꽃 튀는 대결이 햄달새를 가운데 두고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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