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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 다큐멘터리-17] 2세들의 사회진출과 조국관 Ⅰ

초기이민 후손들 법조계 활약 '눈에 띄네'

◇초기이민 4 5세까지 번성

1902년에 인천항을 떠난 한국의 초기 이민들은 거의 생존해 있지 않다.

그 당시 30세의 젊은 나이로 떠났던 분들이 있다면 2011년 현재 139살이 됐고 엄마의 등에 업혀 배를 탔던 어린이라 해도 지금 109살이 됐다.

1910년대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을 들고 처녀의 몸으로 태평양을 건넜던 분들도 지금은 100살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낳았던 아이들도 이미 90살을 넘겼다.



그래서 지금 초기 아메리카 이민의 주류는 농장 노동자로 일했던 분들의 손자인 3세 들이다. 물론 노총각으로 오래도록 지내다가 겨우 결혼을 해서 얻은 2세들도 있다. 그들의 나이는 대체로 50살에서 65살까지 어떤 경우는 70살까지도 있다.

초기 아메리카 이민은 벌써 5-6대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들은 그 동안의 많은 역경 속에서도 지금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와이는 법조계 진출 뚜렷

하와이대학교 동서 문화센터에서 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었던 도정일 씨의 얘기다.

"주 정부의 고급 관리직 민간업체의 중역진 법조계 등에 진출해 있는 한인 이민 3 4세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 법조계의 이민자녀 진출이 현저하게 눈에 띄고 있는데 하와이대학 법과대학의 한 교수의 얘기에 의하면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면 한국그룹의 하와이 법조계 지배가 거의 눈에 보일 것 같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미국사회에서 법조계에 진출한다는 것은 다음에 정치계에 진출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상당수의 미국 정치인들이 그 이전에 법조계에 있었다는 통계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노예와 같았던 노동을 하면서도 자식은 교육을 시켰고 그래서 너만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바랐던 초기 이민들 그들의 소박한 바람이 실현될 날도 멀지는 않은 것 같다.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건너간 초기 이민들의 후손들도 그만한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김우송씨의 설명이다.

"아시다시피 한인 이민 1세들은 정착하시느라고 고생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노예와 같은 노동을 하셨는데 그러나 2세들은 중류급 이상의 직장을 갖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정부기관 또는 정부관련 기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사업가.의사 배출

멕시코에서 살고 있는 초기 이민 2세들은 미국의 그들보다는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하와이 농장의 후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인지 그들은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방면에서 성공했다.

티우아나에서 살고 있는 김경우씨의 얘기다.

"양화점 한국에서는 구두를 만드는 곳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공장에서 만든 구두를 파는 그런 양화점을 큰 규모로 하고 있고 식료품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을 하시는 분도 있고 또 식료품을 파는 대형 수퍼마켓을 하다가 이제는 수입상이 돼서 마켓에 물건을 공급 해주는 대형 업소를 운영하시는 분 그리고 호텔 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의사가 두 명이 있는데 다른 곳에 한 분이 있어서 여기서 난 자손 중에서 의사가 된 분은 통틀어 모두 3명입니다. 또 전자제품을 수입해서 파는 그런 비즈니스도 있고 .....그런 정도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우리 이민들은 2세라고 하는 표현을 초기 이민들의 후손인 2세와 3세 4세를 모두 합해서 통칭으로 쓰고 있다.

이런 표현은 미국에 지금도 이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편의상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최근 몇 년 동안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을 1세라고 부르고 있다. 다만 초기 이민이라는 단서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아메리카 이민 1세라고 하면 최근에 이민을 떠난 사람들을 가리키고 초기이민 1세라고 하면 농장 노동자로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직은 최근 이민의 2세들이 성장하지 않고 있어서 초기 이민들의 후손을 구별 없이 2세라고 부르고 있다.

◇2세들 90년대 1세들과 갈등

2세와 최근의 이민들 그들은 묘한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

당시 하와이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이재영군의 설명이다.

"아무래도 미국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것들을 미국식으로 하기 마련이지요. 이런 이유로 새로 이민 온 사람들의 한국식의 보수적인 생각과는 판이하기 때문에 같은 김씨고 이씨라도 동질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하와이대학에 가면 2세들이 많거든요. 한국인 2세니깐 반갑고 그런데 그 사람들은 좀 피하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우리는 친밀감을 느끼는데 그 애들은 그런 느낌을 안 갖는 것 같애요."

같은 김씨이고 같은 이씨이고 그리고 같은 혈통이면서도 대화가 없다는 얘기는 서글픈 얘기다. 살아온 바탕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도 서글픈 일이다.

그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고위직인데도 한인 밝히기 꺼려

하와이대 동서 문화센터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박윤제씨의 얘기다.

"시 정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인데 여기를 방문한 한 한국교수와 친한 사이여서 어느날 같이 식당에 갔다고 그래요. 고급 식당이었던 모양인데 웨이트레스가 음식을 갖고와서 그 교수에게 친근감 있게 일본사람이냐고 묻자 이 교수는 '나는 한국 사람이다'라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앞에 앉아 있던 그분이 얼른 '이 사람은 여기 사람이다 그런 것 따지지 말라'면서 무안하게 해서 쫓아버린뒤 이런데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괜히 대접도 못 받는다고 얘기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상당히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도 식당에 가서 웨이트레스 앞에서 그런 것을 나타내려하지 않는다니 그밑으로 내려가면 더 심하게 나타나지 않겠는가…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습니다."

2세들 모두가 한국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2세들도 많다. 그러나 편의상 한국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와이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김하영씨의 얘기다.

"지금 여기 2세들을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애국적인 정신으로 나는 한국인의 '피'를 가졌다면서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애국하시는 분들이 있고 그런가 하면 그 반면에 영사관에서 파티를 하면 거기에 참석해서 그럴 때는 한국사람이고 신문에 '어글리 코리언'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는 나는 한국사람이 아니다 나는 미국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천문권 기자 cmk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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