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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 보이지 않는 자산

박봉구/VP Stage NY 대표·국악인

김석출. 이름 석자를 대면 지금도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장구재비들도 혀를 내두른다. 어쩌면 그 이름은 모든 타악 연주자들의 로망임과 동시에 영원히 넘어 설 수 없는 커다란 벽이기도 했기 때문일 게다.

그의 장구는 천둥소리를 부르고, 꽹과리는 벼락을 내리며, 호적(날나리) 소리는 바다를 가르고 중원에 다다를 만큼 기운차다. 한국 전통 예술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굿판의 큰무당, 대한민국 무형 문화재 82호, 동해안 별신굿 인간 문화재이던 김석출이 다큐멘터리에 나온다 하여 그 날 저녁 봉 선생 링컨센터에 갔더랬다.

다큐멘터리 'Intangible Asset No. 82(감독 엠마 프랜즈)'는 호주 출신의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가 자신의 음악세계에 충격을 준 한국 무속음악의 대가 김석출 명인을 찾아 한국에서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물놀이 김동원, 판소리의 배일동, 전라도 씻김굿의 박병천, 황해도 굿 정순덕, 한국 무용가 진유림 등을 만나며 무속 음악뿐 아니라 한국 전통음악에 관한 이해를 넓혀가는 내용을 그렸다.



영화 '서편제'나 브로드웨이 쇼 '난타'처럼 한국 전통예술을 소재로 삼아 상업적 성공과 미학적 성과를 내 온 일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이 다큐는 외국인이 제작하고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전통예술에 관한 견해를 볼 수 있다는 면에서 봉 선생 구미를 당겼다.

이 영화는 단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통 음악의 맥을 제대로 집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무엇보다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자산’ 김석출이 고령으로 병상에 있는 모습과 그의 연주를 화면 안에 담았다는 것 만으로도 다큐멘터리로 절반의 성공이다.

특별한 사건, 구성, 카메라 테크닉 없이도 ‘사실 자체가 주는 감동’을 위해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엮어 가며 주제에 다가가는 진실의 힘이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는 탁월한 소재의 발굴에서 출발한 영화라 하고 싶다. 월드 뮤직 신이나 학계에서 한국 전통 음악은 아직도 덜 알려진 장르이고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걸 찾아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는 것이 희소성에 의한 가치 상승의 명제에 부합한다.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또한 영화 내용 중 김석출 명인을 만난 사흘 뒤 김옹이 세상을 떠난(2005년) ‘사건’이 다큐멘터리에 ‘특별한 사건’을 더해 주었다.

폭포수 근처에서 배일동의 득음수련 과정을 영상화한 것도 감독의 탁월한 선택임과 동시에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사실 요즘 그렇게 판소리 공부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정작 영화 밖 현실 속에선 명인들 밑에서 고액 과외를 받으며 이런 저런 이해 관계 속에 예술학교를 진학하고, 각종 대회에 입상하고 활동하는 것이 전통 예술 음악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감독 엠마 프랜즈는 이 영화를 통해 인종, 국가, 세대의 경계를 넘어 음악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다는 명쾌한 진리를 재 확인 시켜 주었다. 프랜즈의 감독 데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17년 프로페셔널 재즈 싱어로서의 경험이 뮤지션들의 이야기인 이 영화를 가능케 했을거라 짐작한다.

이 영화 전면에 내세우는 김석출에 관한 내용은 전체 다큐멘터리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음악의 호흡, 기, 도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아직도 추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

소재인 김석출에 대한 옛 자료나 현재의 자료를 찾기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고 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도 있었을 테다. 아니 어쩌면 김석출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의도에서 메인 주제가 아닌 동기 정도로 설정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호주의 재즈 드러머가 한국음악에 관한 이해를 넓혀가며 크로스 오버 프로젝트를 성사 시킨다는 쪽에 더 중심이 실려 있는 듯 하다.

우리말로는 ‘무형 문화재’를 일컫는 'Intangible Asset'이 정작 우리들이 무관심해 하는 동안 외국인에 의해 발견되고,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자산(Intangible Asset)’ 역시 외국인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사이에 유출 되는 꼴이 아닌가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맨 마지막 크레딧에 나오는 호주 정부의 지원과 ‘In The Sprocket Productions’이라는 프로덕션이 '모든 권리를 소유 한다(All right reserved)'는 영화가 끝난 뒤도 계속 머릿속을 뱅뱅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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