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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승만, 그의 어린 시절 -건국대통령 이승만 탄생 136주년에 부쳐

김상모/뉴욕이승만기념사업회 명예회장·목사

이승만의 어릴 때 이름은 승룡이었다. 1875년 고종 12년 3월 26일(음 2월 19일) 이승만이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능내동에서 부친 전주 이씨 이경선(1839∼1912)과 사당훈장 김창은의 외동 딸인 어머니 김해 김씨(1833∼96) 사이에서 3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둘이 그의 출생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사실상 6대 독자였다. 이승만은 세종대왕의 형님인 양녕대군의 16대손, 즉 이성계의 18대손이었다. 이처럼 이승만은 조선사회에서 으뜸가는 왕족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벼슬길이 막혀 몰락한 양반가문으로 가세가 극빈 하였다.

어머니 김씨는 갓 마흔에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어 난 아들이었기에 이름을 승룡(承龍)이라 불렀다. 아버지 때에 가세가 더 어려워지자 시골에서는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었다. 시골 서당훈장의 따님이었던 어머니 김씨는 외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남편을 설득하여 승룡이 만 두 살 때(1877) 서울 남문 밖 염동으로 이사 갔다.

어머니 김씨는 삯바느질로 집안 살림을 하면서 아들의 교육에 전력을 다하였다. 손수 아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시작을 훈도했다. 아버지는 보학(譜學, 족보)과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선비로 전국을 유랑하며 한 해의 절반 이상은 돈벌이 없이 집 밖으로 떠돌아 다녔다.

승룡은 서울이 시골보다 좋았다. 친구도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연날리기를 좋아했고 노년까지 이어졌다.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은 승룡이 하루빨리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었다.

가난했던 승룡의 집 형편으로는 훈장을 초빙해 아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 이조판서를 역임한 친척이 되는 이근수옹이 세운 도동서당에서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낙동으로 이사를 했다. 승룡은 열심히 학업에 정진했다. 승룡이 5살 때 실명 직전에 서양의사가 준 안약으로 사흘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양문명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승룡은 6살 때 천자문을 통째로 암기했고 동몽선습(童夢先習)을 배웠다. 1882년 8살 때 승룡은 서당에서 치르는 도강(都講, 종합경시)에서 언제나 장원을 했다. 부모의 유일한 희망은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었다.

15살 때부터 한시를 지었고 16살에 사서삼경을 모두 익혔다. 그는 13살 때부터 나이를 속여 해마다 과거에 응시했지만 11차례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썩을 대로 썩은 과거제도로 당시 권문세가의 자제들 외에는 급제하기가 어려웠다.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4∼95) 등으로 인한 나라의 불안정은 어린 승룡에게 정치적 관심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청일전쟁 때는 나이 19살 청년이었다. 1894년 과거제도가 폐지되었다.

젊은이들은 등용의 길이 막히자 실의에 빠졌다. 이승만은 20살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당시 학생 2명으로 시작한 배재학당이 창립된 지 10년이 되었는데 1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큰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속담은 어렸을 때부터 영민하고 재능이 탁월한 이승만을 두고 한 말이다. 어머니의 교육열은 이승만을 세계적 정치의 거인으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청빈겸허 하였다. 청빈한 삶은 기독교적 신앙에서 비롯했다.

평생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일했다. 2차 대전 후 세계 약소국가들이 모조리 공산화되었으나 대한민국만이 민주주의 국가로 존재하는 것은 그의 탁월한 자유와 민권의식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침 전쟁에서 나라를 구해냈으며, 한미방위조약을 이끌어내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강화했고 세계 경제대국의 초석을 놓은 분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우리에겐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버금가는 세계적인 애국자요 정치가이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다. 반공포로 석방으로 마오쩌둥, 처칠과 아이젠하워를 경악케 한 이승만, 그의 탄생 136주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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