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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영주권이 뭐길래

이수임(화가·브루클린)

“큰 아비가 결혼할 것 같다!” “갑자기 결혼이라니요?” 7년 전에 상처한 아주버님은 소극적인 성격으로 번번한 데이트 한번 못하고 외롭게 사셨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한다니 그것도 여자가 적극적으로 서둘러서. 사연을 알고 보니, 결혼할 여자가 영주권이 없단다. 집안 분위기가 ‘영주권 때문에 시민권자인 아주버니를…’ 하는 의심의 분위기로 감돌았다. 집안 대소사에 무심한 나지만 이번 혼사만은 양팔을 걷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절대 집안 식구 누구도 그 여자 앞에서 영주권 얘기는 꺼내지 못하게 하세요!” 하며 언성을 높였다.

나도 유학 와서 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 물론 내가 결혼을 서둘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LA에 사는 시집으로 결혼한다며 갔을 때였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 후 식구들이 식사하러 부엌으로 몰려갔다. 작은 시아버지가 나를 잠깐 불러 세우더니 내 얼굴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봤다. “아가씨, 사회 경험이 많아 보이는 게 보통이 아니겠어. 영주권 때문에 우리 조카와 결혼하려는 게 아닌가?”

권투선수가 링 위에 올라가자마자 한 방 맞고 뻗듯이 몸이 얼어붙었고, 아픔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모 떠나 멀리 낯선 땅에 와 혼자 있으니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과연 이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결혼을 해야 하는가? 생각 같아서는 다 집어치우고 끝내고 싶은 걸 참았다가 저녁에 샤워하며 울음을 소리 내 ‘엉엉’ 울었다. 전형적인 이북 여자들의 투박하고 거친 매너에 늘 혀를 찼다던 과묵한 함경도 출신 시아버지. “나는 서울 아가씨가 상냥해서 좋아요. 변변치 못한 우리 아들과 결혼 한다니 고마워요.” 그 말씀이 없었다면 아무리 영주권이 급해도 결혼을 했을까 ?

어떻게 같은 시할머니 뱃속에서 나온 두 형제 분이 그리도 달랐는지. 이런 작은 시아버지의 거칠고 모진 말투에 본인 며느리도 아들과 이혼했다. 미국인과 결혼이 못마땅하다고 딸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LA에 가면 시어머니 손에 끌려가서 “안녕하세요.” 하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유도 없이 또 다른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가끔은 시아버지가 옆에 있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애한테.” 하냐며 방어를 해주시기도 했고 못 들은 척하며 피하기도 했다.

작은 시아버지는 6.25전, 북어 한 짐을 지고 걸어서 38선 넘어 서울에 와 모진 고생을 하다 70년대 초에 이민 와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말년엔 라스베이거스에 한 잘못된 투자로 속을 썩이셨다. 잠이 오지 않아 가라지에 앉아 있다 돌아가셔서 네바다주의 뜨거운 모래밭에 묻히셨다. 그렇게 수많은 모진 소리를 하고도 잠을 잘 수 있었을까 항상 궁금했는데.

“영주권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해주면 안 되나요? 결혼은 상대방이 없는 것을 서로 보충해 주며 잘살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혹시라도 그분이 영주권만 받고 도망간다 해도 2∼3년은 같이 살아야 할 것이고, 불쌍한 사람 도왔다 치면 안 되나요? 저도 잘살잖아요.” 하고 시어머니에게 그 동안 가슴에 묻어둔 한을 털어놓았다. “아이고 먼젓번에 너희 왔을 때도 ‘화가는 죽어야 이름이 난다.’며 쓸데없는 소리를 하더니.”

물론 영주권이 없으면 불편하고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오직 영주권 하나만을 위해 결혼을 하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성적으로도 끌리고 영주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좋은 게 좋은 것 아닐까.. 상대가 없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감사함으로 너그럽게 베풀면 지나가던 복도 편하게 누울 자리 보고 오리라 믿는다. 형님 될 분은 착한 우리 아주버님 울리는 일 없이 남은 삶을 함께 잘 살아 주길 바랄 뿐이다. 바쁜 우리 부부는 열 일을 제쳐놓고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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