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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 다큐멘터리-16] 초기이민자 자녀교육2

한인학생들 뛰어나…인종차별 피해 전문직으로

◆멕시코이민 겨우 초등학교 졸업

멕시코로 떠났던 초기 이민은 하와이의 이민보다 더 불행했다. 출발에서부터 그들은 불법 이민이었고 애네켄(어저귀) 밭의 일 자체가 고달팠다. 그리고 임금도 너무 저렴했다.

하와이 이민들이 하루 69센트를 받았을 때 그들은 25센트씩 받았다. 그래서 쉽사리 터전을 잡을 길이 없었다. 4년 간의 노동계약이 끝났을 때 그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농장일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임금을 받을 길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이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저 농장이 좋다고 해서 그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곳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또 다른 곳으로 옮겼다. 또 옮겼다. 그러나 옮기는 것으로 나은 생활이 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녀교육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먹고살기도 어려웠고 옮기느라고 학교를 보낼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당시의 멕시코는 미국처럼 좋은 교육제도를 가진 나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도 자녀들에게 최소한 한국말과 글은 가르쳤다.



◆악조건 속에 한글만은 가르쳐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살고 있는 2세 동포 현오목할머니의 얘기다.

"나는 학교도 못 댕겼어요 집안 살림살이 하느라고요. 이리 저리 농장을 옮기는데 1년은 머물러 있어야지 공부를 하지요. 일곱달 다섯달 여섯달 석달…. 한 농장에서는 2주일 있다가 떠나서 이름도 모르고 그냥 나왔어요. '농장에 가서 아버지 거들어 드리고 어머니 거들어 드려야 할 테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할 형편이 못된다. 좋긴 좋지만…' 그리고는 농장에서 글을 아시는 분을 우리 집으로 모셔와서 언문(한글)을 가르치셨어요. 가갸 거겨… 그것을 가르치셨는데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글을 완전히 습득했어요. 그래서 나는 한문은 한 자도 몰라요."

멕시코의 2세 동포들 중에서 그런 가운데서도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학교 졸업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것이 한이 됐다고 했다.

티우아나의 김경우씨의 설명이다.

"처음에 온 사람들(멕시코 초기 이민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시킬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저 농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도 안 보내고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부모 복이 없어서 공부를 자기들이 못했다는 것이 그 사람들의 한 서린 얘기입니다. 그때 온 사람들의 자녀들 중에 공부를 마쳤다고 한다면 그저 국민학교를 마친 정도로 이 나라 글을 보고 쓰고 읽고…. 그 정도 이상은 거의 없습니다."

◆하와이 2세들은 전문직 진출

하와이 초기 이민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집념은 헛되지 않았다. 2세들 모두가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들은 백인을 누르고 좋은 성적을 얻었다.

도라 킴여사의 얘기 다시 들어본다.

"미국에서는 교육비가 들지 않는 무료교육이기 때문에 다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한국학생들이 특히 공부를 잘 했습니다. 성적이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1 2등을 다투는 한인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오래 계속됐다. 그래서 공부를 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교육에는 차별이 없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동양인이건 어린이라면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적은 숫자였지만 정부기관에서는 모집에 차별이 없었다.

도라 킴여사도 주 정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왔다.

"정부 일은 그때도 인종차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정부기관에 들어갔습니다. 직업을 알선해주는 부서인데 지금 2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77년 당시의 일이다)"

아메리카의 동포 2세들 대부분은 남의 도움 없이 해낼 수 있는 상업이나 변호사 그리고 의사와 같은 자유직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모집에 차별이 없었던 관공서나 정부기업체의 직원도 많다. 동양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피해서 찾아 나선 직업들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비록 장사를 해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 못지 않게 잘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의 수고와 노력의 대가이다. 그러나 그 밑 바닥에는 노동자로 머나먼 타국에 건너가서 먹을 것을 못 먹었고 입을 것을 못 입었고 그러면서도 내 자식들만은 가르쳐야겠다는 1세 동포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한인 2세 인종별 소득 최고

전 하와이대학교 이상억교수의 얘기다.

"얼마 전에 주 정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2세가 1인당 소득이 제일 많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77년 당시도 그랬다) 그것은 백인이나 일본사람 그리고 중국인을 포함한 것인데 그들 중에서 제일 많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수효는 많지 않지만 직업적으로 가령 건축가 라든지 학교 선생님들 또 의사 변호사 등 수입이 많은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구 비율로 볼 때 한인들의 전문직 진출 비율이 높습니다. 그럼 왜 이러느냐? 역시 그 부모들이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강조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부모님들이 여기 와서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면서 하루 69전밖에 못 받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애국운동에 쓰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교육에 썼습니다.

그래서 자기네들 끼리 학교도 설립했습니다. 또 자기들은 바느질을 한다 빨래를 한다 하지만 자손들은 대학까지 다 졸업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자라서 이제 다 쟁쟁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정리= 천문권 기자 cmk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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