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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철 덩어리가 예술인 까닭은

안성민(화가·브루클린)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리차드 세라(1939- )가 전속으로 있는 가고시안 갤러리는 파워 화랑이다. 맨해튼 업타운과 첼시를 비롯, LA, 런던, 파리, 홍콩, 아테네까지 지부를 두고, 뮤지엄급의 전시 공간과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다. 그러한 파워를 등에 업고 뮤지엄에서도 하기 힘든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아주 젊은 신진작가도 운좋게 가고시안의 눈에 띄면 하루 아침에 첼시의 수퍼스타가 되버린다.

처음 뉴욕의 갤러리를 둘러보던 나에게 가고시안의 천정이 높고 뻥 뚫린 공간은 ‘뉴욕 갤러리’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비단 가고시안 뿐만 아니라 옛 공장터를 개조해서 만든 많은 첼시의 갤러리들은 황량할 정도로 거대한 공간들을 자랑한다. 그 지천에 널린 방대한 공간이 유별나게 큰 스케일의 미국 미술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바로 세라의 작품이 그 중심에 있다.

세라는 미국 현대미술의 아버지 격이 될 정도로 살아있는 거장이다. 어렸을 적 여름마다 철공소에서 일한 경험이 오늘날 거대한 철제 작품을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가져왔다는 점도 흥미롭다. 작가의 작품이 그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기존의 철제 작품처럼 용접기법을 이용하지 않고 집채만한 철판을 굽히고 비틀어 만듦으로서 창작 재료로서의 철의 가능성을 확대하였다. 물자국처럼 녹이 슬은듯한 인상적인 작품 표면은 산화처리 과정의 결과인데 마치 망망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웨더 프루프 스틸 (weatherproof steel)’ 이라고 불리는 그의 재료는 흔히 말하는 코텐스틸이다. 공기와 접촉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아름다운 색을 찾아내는 생명이 있는 철재료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조소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축에서처럼 발란스, 중력, 무엇이 무엇을 지탱하는가 하는 텍토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작품은 ‘셀프 스탠딩 self standing’ 즉 지지대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발란스를 유지하며 서있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듯한 12피트 높이의 강철벽을 따라 걸으며 두려움과 경외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시적인 고요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 현대미술의 대명사격인 그의 작품에서 언뜻 비쳐지는 동양적 심미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톨크드 이클립스 torqued eclips’는 커다란 철판을 여러 개 연결해 설치한 작품이다. 커다란 철판을 둥굴게 굴리고 비틀어 휘게 함으로서 철판의 아래쪽 엣지와 위의 엣지가 서로 다른 곡률의 타원형을 그리고 있다. 그 사이의 공간은 여백을 연상시키듯 비어있다. 실제로 일본을 여행하면서 선에 관심을 가졌으며 작품에 심오한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저게 무슨 예술이야!” 라며 마감 전의 철 덩어리를 그냥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반면에 내가 아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그의 작품을 거의 우상숭배한다.

그 작품이 그곳에 있기까지 그가 쏟은 노력과 천재적 해결책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따라할 수 없다. 예술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눈에 예뻐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틀에 밖힌 관념을 깨고 사고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창의력과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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