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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미국 적응의 귀재, 조카 '햄달새'

2009년 2월 초 햄달새와 할배 삼촌 이 어울리지 않는 가족의 미국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조카와 나이 차이가 40살 가까이 되는 그래서 할배 별명을 감수해야 하는 나로서는 아이 엄마 없이 두번째로 미국에서 어린 아이를 키우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 우리 아이 둘을 키울 때와는 생홀아비라는 점을 빼고는 내 입장에서는 조건이 꽤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먼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 때는 직장이 풀타임이었다. 하지만 햄달새와 함께 하는 지금은 파트 타임 그것도 출퇴근이 아예 없는 재택 근무이다.

10여 년 전 시절이 일에 쫓기고 아이들에 치이는 하루하루가 전쟁인 싱글맘 처지였다면 햄달새와 지내는 기간은 완전한 전업주부에 가까운 몸이라고 해야겠다. 싱글맘과 전업주부의 생활이 천양지차라는 걸 몸으로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둘의 일상 생활은 엄마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서로 사뭇 다른 세계를 산다고 할 만큼 차이가 크다.

햄달새는 미국 도착 후 채 일주일도 안 되는 시차 적응 기간을 보낸 뒤 첫 등교를 했다. 첫날 학교에 데려다 줄 때 조금 긴장하는 표정이 스치듯 보였지만 오후 학교가 파할 무렵 태우러 가니 마치 오래 다닌 학교에서 하교하는 것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순간 적응의 귀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햄달새의 등교 모습 우리 아이들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우리 딸과 아들은 햄달새와 비슷한 나이였던 2000년 미국 학교 생활을 시작했는데 학교를 불편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했었다. 한 성격하는 바람에 '까칠이'라고 내가 부르는 지금은 시집가도 문제가 없을 나이가 된 딸은 첫날부터 시작해 두어 달 넘게 등교 길이면 닭 똥 같은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곤 했다.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출근 길 딸을 옆자리에 태우고 학교에 바래다 줄 때면 매일 어김없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살짝 옆을 돌아보면 딸의 두 눈 밑으로는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말을 시키면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5분이나 될까 말까 했던 학교까지 가는 길은 매우 불편한 시간이었다.

까칠이는 미국으로 건너온 뒤 한 동안 "내가 왜 미국에 와야 하는데"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화를 내곤 했다.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준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갈 기세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갑자기 "아빠하고 미국으로 가는 거다"라는 통보를 받은 뒤 얼떨결에 태평양을 건너 온 까칠이는 한국을 너무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까칠이의 한국 생활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집이 대학가에 있었는데 딸은 대략 4학년 무렵부터 대학 유흥가 근처에서 노는 걸 무척 즐겼다. 밤 9시 10시에 집에 들어오는 적도 많았다.

5학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한번은 목사 부인이기도 하신 담임 선생님이 아이 엄마를 불러 훈육 지도를 할 정도였다.

까칠이는 그 좋은 시간들을 뒤로 하고 낯설고 물 설고 말 설은 미국 땅을 덜컥 밟게 됐으니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햄달새는 사촌언니인 까칠이와는 달리 첫날은 물론 날이 갈수록 미국이 좋아 죽는 모습이었다. 사촌자매간에 차이가 있어도 이렇게 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도대체 넌 미국이 뭐가 그렇게 좋은 거냐"하고 물으면 그렇게 재잘재잘 평소엔 잘도 떠드는 아이가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좋아죽겠다는 몸짓과 표정뿐이었다. 그러나 햄달새가 말하지 않았어도 나는 두어 주쯤 지나 조카가 미국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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