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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203] 문어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문어

-문정희



문어文魚가 꽤 지적知的인 이름을 가진 것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먹물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가 먹물을 찍어 글을 쓰는 것을 누구도 본 적은 없다
물렁한 대가리에 움푹한 눈을 하고
여덟 개의 긴 다리를 팔방으로 뻗치고 다니며
포획물을 휘감는 것을 보면
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그는 전형적인 먹물 가진 속물
흡반으로 강하게 밀착한 후
맹렬히 빨아대는 그에게 걸리면
누군들 그만 슬슬 넋이 나가고 만다
긴급 상황에는 유감없이 먹물을 뿜어 사태를 흐려 놓고
다리를 통째 자르고 사라질 때도 있다

그가 노는 물에 떠다니는 새끼들을 보면
이건 모두 오리발이다
주로 여의도나 인왕산 부근에서 논다고 들었지만
이 무척동물들이 색깔을 바꾸어가며
대학가에도 나타나고 우리 동네에도 있다
그는 시보다 몸으로 더 많이 돌아다닌다
어떤 시집을 펼치면 덜 말라 쭈뼛한 그의 대가리가
고약 같은 먹물을 달고 튀어나와
섬뜩 뒤로 물러설 때가 있다

처음부터 함량미달이거나 분수 못 지킬 정치지망생이 정치인 아닌 정상배政商輩가 된다거나, 문인후보생(?) 찾아나서 신문에 글 나게 해준다고 돈까지 받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렇다면 이는 문상배文商輩겠군. 시 비슷한 것도 아닌 시, 그마저도 안 쓰는 이름만 시인인 사람, 양두구육羊頭狗肉 종교인, 한글 안다고 아무 말이나 설說하고 수필입네 이르는 카더라 통신, 글줄 토막만 쳐놓은 시집, 이 모두가 이 시인 눈엔 맥없이 먹물 풀고 다니는 문어 같이 보였나 보다. 이 문어들 나라보다 돈, 양심보다 위선, 시보다 이름, 그런 공명심으로 세상 천방지축 돌아다닌다는 거지. 이 무척동물들 서울 여의도와 인왕산 근처에서 많이 논다는데, 오늘은 상아대象牙臺에도 나타난단다. 이런 문어 같은 사람 이곳에도 있는 듯, 어딘들 없으랴. 먹물이라고 다 먹물이겠나. 벼루 붙들고 손마디 닳도록 밤새워 먹 갈고 또 갈아냈어야 먹물이었을 것을. 시어 하나, 행간, 한자 한자 퇴고하기에 흰 밤 지키는 참 시인들은 어찌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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