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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아의 오페라 일기 (7)] 동요, 가곡, 성가에서 아리아로의 여정

- '나비 부인' 101번째 공연을 기다리며…

네살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바이올린도 짧은 기간 배웠었지만, 한번도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10살 때 내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치과의사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당연히 의대를 지망해야 했다.

열 다섯살하고도 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 수련회에 참가했는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그래프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각자 풀밭에 흩어져서 그림을 그리던 순간이었다. 그때 막연히 ‘음악가’라는 커다란 글자가 내게 다가왔다. 마치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다음날 아침 노래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내가 성악가를 꿈 꾼 첫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2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오페라 가수가 되어 있다. 음악가라는 큰 분야에서 성악가로 좁혀졌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후 오페라라는 장르로 더욱 구체화됐다. 성악가로서 연주할 수 있는 분야는 크게 오페라와 콘서트 가수다. 최근에 들어 뮤지컬 가수가 되기 위한 성악도도 많아졌다.

오페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는 오페라에게 선택돼졌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내가 무엇을 알고 그 길을 찾아간 것이라기 보다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오페라 레퍼토리를 공부해야 했었고, 프로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던 것이다. 어렸을적엔 동요를 불렀고, 학창시절에는 가곡을 배웠고, 교회에서는 성가를 배웠었지만,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처음으로 오페라 아리아들을 배웠다.

하지만 미국으로 유학 온 이후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오페라가 노래 이상의 거대한 장르라는 것이다. 언어, 동작, 연기 등이 필요한 예술이다.

이탈리아 언어로 된 오페라가 가장 보편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유럽의 언어들을 완벽에 가깝게 발음해야 하며, 무대 위에서는 마치 무용수처럼 가벼운 걸음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연극 배우들처럼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연기력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인 것을 처음부터 알았었다면, 굳이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덤볐던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도전을 즐기는 쾌감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줄리아드 대학원 시절 생전 처음으로 오페라 주인공에 뽑혔다. 푸치니의 ‘수녀 안젤리카’ 에서 안젤리카를 부르게 된 것이 나의 첫 오페라 역사이다. 무대에서 간신히 노래를 부르는 실력만을 겨우 가졌던 나에게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며 극중의 인물이 된다는 것이 상당한 도전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학교 내에서의 오페라였고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되었었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첫 무대의 경험이었고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오페라를 즐기게 되었고 무대에 서는 시간을 무작정 기다리며 사모하는 이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TV에서 가수를 보면서, 내가 마치 노래하는 상상을 하며 나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일기나 수필을 쓰면서 내 속에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적어 내는 일을 즐겼다. 무뚝뚝하고 수줍음 많았던 경상도 아이에게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였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와서 무대 위에서 울고 웃으며 연극을 노래하고 있는지. 무대에서 관중과 소통하는 일이 마치 악몽처럼 무서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떻게 지금 무대를 기다리고 즐기며 그리워할 수 있는지. 조명이 꺼진 무대를 내려오면서 한없이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방금 내려온 그 무대를 벌써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버지니아에 와 있다. 2주 후에 올려질 나의 101번째 ‘나비부인’ 공연을 기다리며 어릴 적 내가 동경했던 TV 상자 속의 그 가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무대에 선 내 모습을 처음으로 꿈꾸게 해줬던 그 때를. www.yunah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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