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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다큐 '김치 연대기' 찍으며 진정한 한인으로"…유명 셰프 장 조지의 한·흑 혼혈 아내 마르자 봉거리첸

전국 돌며 숨겨진 음식 소개…올 여름 PBS서 방영
"세계화=퓨전화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 줘야"

한인 혼혈 입양인 마르자 봉거리첸(35)은 처음에는 남편 이름 덕을 좀 봤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프랑스 레스토랑 '장 조지'의 셰프이자 뉴욕·홍콩· 영국·상하이 등 20여 개 레스토랑의 메뉴와 운영을 책임지는 장 조지 봉거리첸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봉거리첸'이라는 성만으로도 "혹시~?"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남편 성의 브랜드 가치는 높다.

그런데 이제는 장 조지 봉거리첸이 아내 덕을 보고 있다. 한국 팔도강산을 돌며 한식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김치 연대기(The Kimchi Chronicles)' 호스트를 마르자씨가 맡아 남편도 숨겨진 한국의 맛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 미역을 넣어 푹 끓인 제주도 '몸국' 요리법을 배우고 맛본 뒤 장 조지가 외치는 한국말 한 마디. "맛있네!" 장 조지와 마르자씨, 딸 클로이, 영화배우 휴 잭맨·헤더 그레이험이 등장해 감칠맛 나는 한식을 풀어낸 이 다큐는 올 여름 미 공영방송(PBS)를 통해 13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이에 맞춰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식 조리법을 담은 요리책도 출간된다.

마르자씨와 한식의 인연은 새롭지 않다. 2009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뉴욕을 방문,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해 한식을 요리했을 때도, 2010년 뉴욕에서 열린 사찰음식 행사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그를 최근 장 조지의 레스토랑 중 하나인 맨해튼 '페리 스트릿'에서 만났다. 그는 앉자마자 인터뷰 시간을 줄일 수 있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이유는? 뉴저지주 에디슨 H마트에 한국으로부터 들어온 갈치를 사러 나가야 하기 때문. "갈치조림 레시피는 어디서 보고 해요?" "내가 만드는 갈치조림이 제일 맛있어요. 내가 나중에 알려 줄게요." 갈치조림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불고기와 된장찌개, 잡채, 부대찌개, 김치찌개, 자장면, 호떡, 김치 핫도그, 해장국, 감자탕으로 이어져 고추장 버터로 막을 내렸다. 물론, 인터뷰는 마르자씨의 계획대로 짧은 시간 안에 끝날 수 없었다.



-'김치 연대기'에 출연하게 된 배경은.

"레스토랑 '장 조지'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한인 프로듀서 에릭 이씨를 만났다. 한식을 다룬 다큐 제작 계획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자연스럽게 내 입양 스토리가 나왔다. 그 다음날, 프로그램 호스트를 맡아줄 수 있느냐고 전화가 걸려 왔고, 흔쾌히 허락했다."

이렇게 시작된 김치 연대기는 지난해 5월과 12월 한국서 촬영을 마쳤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봉거리첸의 업스테이트 뉴욕 별장에서 한식을 만드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셰프 마리오 바탈리와 영화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스페인을 돌면서 촬영한 '스페인 온 더 로드 어게인'을 제작한 프로덕션 회사 '프라페 (Frappe Inc)'가 맡았다.

-프로그램에 '몸국'도 그렇고 들어보지 못한 한식이 많이 등장한다.

"나도 몸국은 촬영 전에는 알지 못했다. 냉면이 북한 음식이라는 것도 몰랐고, 김치 고춧가루가 들어온 다음부터 매워졌다는 것 등을 배웠다. 촬영 자체가 내겐 너무 큰 경험이었다. 내가 이제야 진정한 한국 사람이 됐다는 느낌이랄까. 생모를 만난 뒤 한국에 많이 다니면서 할머니, 이모, 외삼촌 등 친척 방문을 많이 했어도 언어 장벽도 있고, 누가 제대로 설명을 해 준 적이 없어서 한국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알았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한식으로 한국 문화를 많이 배웠다. 한국 사람들의 부지런함, 고통, 극복, 해내겠다는 집념, 그리고 한까지…. 내가 한인이란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졌다."

-한식 요리책도 출간하는데.

"모든 가정마다 그만의 레시피가 있지 않나. 우리 집 한식 레시피를 요리책에서 모두 보여 준다. 대부분 전통 한식이지만 남편이 코리안 칵테일도 많이 개발했다. 생강 시럽이 들어간 칵테일, 막걸리 아이스크림, 복분자주와 샴페인, 자몽 소주 칵테일, 김치 블러디 메리 등 다양한 칵테일도 포함됐다."

-영화배우 휴 잭맨도 출연하는데.

"휴 잭맨은 이웃이다. 한국을 워낙 좋아해 출연을 허락해 줬다. 업스테이트 뉴욕 우리 별장에서 김치 렐리시가 들어간 핫도그, 김치 버터, 호떡 등을 함께 만들었는데, 한식을 너무 좋아하더라. 또 잭맨 아이들은 우리 집에 오면 항상 주방으로 와서 먹을 것이 없나 이리 저리 뒤져본다. 한국 김을 좋아해서 그냥 맨밥을 싸서 먹기도 하고, 제주도산 감귤 쥬스도 좋아해 즐겨 찾는 편이다."

-딸 클로이도 방송에서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 나온다.

"한식을 잘 먹는다. 예전에는 학교 도시락에 단무지를 넣어줬는데,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한다길래 요즘은 안 넣어준다. 그래도 딸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다 김밥을 만들어 주면 그렇게들 좋아한다. 김밥에 단무지가 들어갔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통해 단무지 맛에 길을 들이는 중이다.(웃음)"

-프랑스인 남편 가족들도 한식을 즐기는지.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한식을 해달라고 한다. '외국인 입맛에 혹시 너무 한국적이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제대로 된 한식을 맛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불고기만 해줄 것이 아니라 시원한 무국, 혹은 녹두가 들어간 빈대떡도 좋다. 빈대떡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 중 하나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어떤 한식을 어떻게 소개하나.

"나만의 비법이 있다. 미국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끔 가는데, 한바탕 논 뒤에는 32가 한인타운 식당에 들러 감자탕, 해장국, 부대찌개 같은 '하드코어' 한식을 시켜서 친구들에게 먹인다. 김치는 커녕 한식이라고는 입에도 안 대본 친구들에게 불고기나 잡채가 아닌 정말 매운 한식을 주문한다. 친구들이 이미 만취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슨 음식인지도 모르고 맛있게들 먹는다.(웃음) 그리고 다음날이면 전화해서 이런다. '어제 우리가 먹은게 뭐니? 그거 정말 맛있더라!'고."

-하지만 그런 하드코어를 소개하기에 아직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매일 피자 같은 미국 음식만 먹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한번은 닭볶음 요리를 해 줬는데, 다 먹고 나서 '정말 제대로 먹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는 말을 하더라. 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선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이미 닭요리에 친숙한 외국인에게 매운 맛을 첨가해 소개하면 부담이 없다. 마찬가지로 무턱대고 김치를 내놓을 것이 아니라 김치랑 같이 먹을 수 있는 다른 한식과 페어링을 제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쯤되면 한식 '중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주 이상 김치를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캐러비안에 있는 세인트 바트 섬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거기서 양배추로 즉석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길게 여행을 갈 때면 미리 뉴욕에서 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 같은 한식 재료를 페덱스로 미리 보내놓고 먹는다. 진짜 한국의 맛은 재료에서 나온다. 한국 김치찌개와 뉴욕 김치찌개의 맛이 다른 이유다. 그래서 한국에 나갈 때마다 꼭 한국산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사갖고 들어온다."

마르자 봉거리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사연도 많다. 주한 미군 아버지는 마르자가 태어나기 전에 한인 어머니를 버렸고, 한인 어머니 역시 마르자가 3세 때 고아원으로 보냈다. 곧 버지니아주로 입양돼 '흑인'으로만 살았던 마르자. 그는 19세 때 생모를 찾기로 결심했다.

양아버지가 한국으로 나가 입양됐던 고아원에 수소문한 결과, 생모는 오래 전부터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생모 배영애씨는 재혼했지만, 딸을 고아원에 보낸 것이 마음이 아파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채 같은 미국 하늘 아래 살고 있었다. 지금은 모녀가 뉴욕에서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인터뷰 도중 배씨가 갑자기 등장했다. 딸과 함께 갈치를 사러 가려고 들른 것. 배씨는 성인이 된 마르자씨와 재회한 날 불고기와 된장찌개를 끓여 먹였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된장찌개와 불고기였을까. "그걸 우리 애가 제일 잘 먹었거든요. 그래서 그 생각이 나서요." 그런 엄마의 손맛이 요즘에는 딸의 솜씨에 한풀 꺽여버렸다. "요즘에는 우리 애가 요리를 더 잘해서 나를 가르쳐 줘요."

씩씩하게 입양 사실을 밝히고, 다시 만난 한국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고, 생모의 콩글리시도 척척 알아듣는 마르자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구석이 있다. '한'이라는 단어를 인터뷰 도중 많이 언급한 이유도 그 까닭은 아닐까.

-(입양인으로) 한식 프로그램 촬영이 더 큰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이번 방송 때문에 내가 진정한 한인으로 성장했다. 흑인 혼혈이었기 때문에 난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우리 엄마도 (고아원에 보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식을 소개하면서) 한국 홍보 대사가 된 것 아닌가. 버지니아에서 살면서 그렇게 원했던 일이 지금에서야 가능하게 됐다."

-흑인과 한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은 없었나.

"예전에는 세상이 '흑인'이라는 하나의 박스 뿐이었다. 거기에 맞추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똑같이 흑인이면서, 한인이면서 또 미국인이다. 요즘에는 글로벌 시대라서 국제결혼도 늘어나고, 혼혈아들도 많이 생겨서 혼혈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는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한 사람의 얼굴색, 출신 성분은 물론 부모가 이혼을 했다고 해서, 대학을 못갔다는 사실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인 것도 사실이다."

-다른 입양인들과도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는지.

"페이스북으로 같은 입양 기관에서 입양된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낸다. 이 친구들이 얼마나 한국에 포함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한국 여권을 얼마나 갖고 싶어하는데..."

마르자씨는 친구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쏟아냈다. 갑자기 터져나온 울음이었다. 계속해서 "바보같이 울긴 왜 울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눈물을 닦아내던 마르자씨. "가족도 만나고, 이제는 다 괜찮은 것 같은데도 이런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이런 마르자씨는 한식에 있어서도 '한국적인' 것을 강조한다. 퓨전이 탐탁치 않은 이유가 있다.

-요즘 한식 세계화가 화두다.

"한식 세계화가 한식 퓨전화는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부터 확실히 확립해야 한다. 솔직히 아직도 세상 사람들한테 한국은 이방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알려야지, 어중간하게 퓨전화를 추구하면 안된다. 너무 한국적인 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게 우리 모습 아닌가. 너무 한국스럽다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또 한식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한식을 제대로 알려주면 된다. '김치 연대기'가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

마르자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레스토랑 '페리 스트릿' 메뉴를 펼치고, 한 메뉴를 손으로 짚어 보이며 시식을 권했다. 메뉴 이름은 '그릴 비프 행어 스테이크와 고추장 버터'. 마르자씨는 "내가 집에서 고추장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남편이 메뉴에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접시의 모퉁이에는 잘 구어진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 접시 중앙에는 강렬한 붉은색 소스가 고추장 버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추장 버터는 느끼한 버터 맛이 전혀 없는 매콤하면서도 톡쏘는 초고추장과도 흡사한 한국의 맛 그대로였다. 고추장 버터 맛을 보면 볼수록 "내가 그래도 뒤에서 한식 세계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마르자씨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조진화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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