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읽기] 동양의 재발견…그곳엔 인간의 품격 완성하는 보석, 인문주의가 있다
사람과 만물의 조화 꾀하는 동양
위로는 신의 숭배에 빠지지 않고
아래로는 물질에 휘둘리지 않아
동양철학자 한형조(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왜 조선유학인가』(문학동네)에서 던졌던 말인데 이게 중국학자 러우위리에(樓宇烈.77)의 신간 『중국의 품격』과 내내 공명을 이룬다. 두 책은 지난 세기의 아픔을 딛고 현대화에 성공을 거둔 한.중 학계가 전통을 새롭게 발견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형조가 전통의 깊은 우물에서 지혜의 물을 길어 올리듯 러우위리에 역시 유교.불교.도교에 담긴 인문주의.인본주의 가치를 강조한다. 인문주의야말로 동북아문화의 핵심이고 우리의 품격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란 적극적인 주장이다.
그들의 태도는 20세기 사상가 후스(胡適)와 대조적이다. 후스는 "내가 전통을 연구하는 목적은 전통 안에서 쓰레기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쓰레기를 찾아낸 뒤에 그것들을 철저히 없애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그러했다. 『조선상고사』의 저자 단재 신채호의 경우 조선조 문약(文弱)의 전통이 끔찍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육경(六經)을 불 싸질렀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품격』은 후스와 단재가 없애고 불 태우려했던 것에서 보석을 재발견하려는 21세기의 노력이다.
확실히 동북아 한자문화권은 예전과 달라졌는데 이 책은 중국 '국학 붐'에 대한 호응이기도 하다. 지난해 주윤발 주연의 영화 '공자'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공자학원의 설립도 저들의 자부심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자국 중심주의의 흔적은 별로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강연 내용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일단 평이하면서도 깊이도 있어 전통사상 입문서 류와는 차별화된다.
러우위리에는 유교.불교.도교를 두루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석학의 한 명으로 평가 받는데 스케일도 크다. 즉 서양의 오랜 지적 전통과 맞대결하려는 자부심이 곳곳에 보인다. 그에 따르면 동양의 품격은 인본주의에서 나온다. 그건 한 마디로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문화"(94쪽)다. 신을 근본으로 하는 서구 신본주의(神本主義) 문화는 차원이 다르다. 저들도 합리적이고 이성을 앞세운 근대문명을 일굴 때 신본주의가 족쇄이자 걸림돌이라는 걸 감지했다.
그래서 근대 휴머니즘이 꽃을 피운 18세기 계몽주의에는 선교사들이 수입해간 중국 인본주의 영향이 스며들어 있다. 당시 중국문명이 대안으로 검토.수용됐던 게 사실이다. 그럼 인본주의 핵심은 무엇일까? "위로는 신에 대한 숭배를 중시하지 않고(上薄拜神敎) 아래로는 물질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가르침(下防排物敎)"이다. 이게 이 책의 키워드다. 이런 태도가 동북아 고유의 가치를 창출해냈다는 주장은 논란의 소지가 아주 없지 않지만 큰 줄기는 무리 없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유교.도교의 사이도 그렇게 벌려놓지 않는다.
일테면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은 도교 사상이지만 유교 역시 비슷했다는 것이다.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고 하는 천일합일 사상도 그렇다. 만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순응해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태도란 점에서 닮은꼴이다. 자연 파괴의 충동을 숨긴 서구 휴머니즘과 또 다른 게 사실이다. 한가지. 이 책에 실린 중국 전통의학에 관한 두 꼭지 글도 관심거리다. 중국의학에는 전통사상의 모든 게 담겨있다는 게 저자의 논리다.
함께 읽을 만한 책
러우위리에의 『중국의 품격』과 짝을 이룰만한 책은 일본 학자 모로하시 데쓰지의 『공자 노자 석가』(동아시아)이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全)』의 저자인 그가 100세 되던 해에 펴냈다. 공자·노자·석가의 가상토론 방식으로 동양사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해박함과 넓은 시선은 『중국의 품격』과 흡사하다. 다른 건 유불선(儒佛仙)의 차이점 변별에 상대적으로 악센트가 찍힌 점이다. 그에 비해 『중국의 품격』은 3교의 사상을 회통하는 쪽이다. 서로 보완해 읽을만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쪽의 이런 ‘노회한 저술’이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있다면 ‘젊은 유학철학서’인데, 그건 한형조의 3부작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조선유학의 거장들』(이상 문학동네)다. 전통사상의 자기반성도 경청할만한데, 러우우리에나 모로하시보다는 읽기에 빡빡하지만 치열한 접근이 큰 매력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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