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따라잡기-2] 안 되는 것도 믿게 만드는 '설득의 달인'
Reality Distortion Field
전세계 최고의 CEO란 평가를 듣고 있는 스티브 잡스와 관련한 무수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촌철살인의 직설적인 화법은 설사 남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도 잊지 못할 잡스만의 독창성이 베어 나온다.
피카소는 "훌륭한 아티스트는 배끼지만 위대한 아이티스는 훔쳐낸다"고 말했다. 컴퓨터 여명기인 80년대 디지털 테크놀러지 역사속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차용되고 발전하고 상업화 되는가를 논하면서 잡스가 인용해 유명해진 말이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잡스가 지어낸 말이라고 여길 정도다.
탁월한 설득화법이야 성공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때와 장소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춘 잡스의 한마디는 사람들로 하여금 꼼짝 못하고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진정 토론의 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해서 등장한 말이 'Reality Distortion Field'다.
60년대 시작한 SF TV 드라마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말로 현실과 상관없이 발생하는 알 수 없는 우주의 비밀 메커니즘을 지칭하는 뜻. 헌데 81년 초 애플의 차세대 컴퓨터 매킨토시 개발팀은 잡스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이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잡스의 말을 듣다보면 도저히 현실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결국에는 진짜처럼 들린다는 뜻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반대파도 세뇌시키는 재주
매킨토시 개발팀의 핵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앤디 허츠펠트(현 구글 소프웨어 부사장)는 그의 회고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81년 2월의 어느날 잡스는 갑자기 매킨토시 팀을 모아놓고 신제품 출시가 82년 초로 잡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불과 10개월 남짓한 시간이었다. 매킨토시는 당시 컨셉만 잡혀있는 것이었지 시작도 못한 실정이었다. 헌데 10개월 내에 제품개발 완료라니! 이건 말도 안되는 지시사항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잡스에게 다시 정확한 일정을 바로 잡도록 말해야 한다는 개발팀의 의견이 분분했다.
이때 의사출신 프로그래머 버드 트리블의 냉소적인 한 마디가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It's like reality distortion field' 잡스에게 아무리 말이 안되는 계획이라고 설명해봤자 말하는 사람이 도리어 설득당하고 만다며 그만두란 의미였다. 순간 모두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때부터 잡스가 매킨토시 개발팀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순간 팀원들은 '우리는 모두 잡스에게 세뇌 당하게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아무리 잡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려해도 잡스의 끊임없는 설득 역공으로 결국엔 그의 주장이 옳다고 맞장구치게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 출신도 아닌 잡스가 어떻게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갖고 팀원을 설득했는가는 여전히 미궁이다. 억지를 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날고기는 전문가들이 잡스의 주장에 백기항복했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당시 매킨토시 개발팀을 이끌면서 "우리는 주당 90시간을 일한다 해군보다 해적이 되고 말겠다"고 자랑한게 잡스였다.
20대의 잡스는 거칠게 없었고 건방지고 제멋대로의 통제불능 망나니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 팀원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라고 잡스를 신뢰했고 제품 개발을 완료해 경쟁사들 보다 10년이나 시대를 앞서는 최고의 컴퓨터를 선보였다.
중학생때 HP사장 설득
설명이 안되는 논리를 어거지로 우겨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옳다 믿게 만드는 잡스의 재주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한 일화가 있다. 중학생 시절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라디오 트랜스미터 장난감 'Heath Kit'에 심취했고 학교에서도 일렉트로닉스 특활반을 선택했다. 사실 공부하곤 담을 쌓고 있던 그였지만 특활반에는 큰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어느날 라디오 기기를 만들어 제출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당시에도 이미 다양한 조립품들이 학교 앞 업소 매장에서 팔리고 있었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조립품을 사다가 완성시켜 과제물로 제출하곤 했다. 수일이 지나 한 친구가 잡스에게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남들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잡스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최고의 과제물을 준비 중이야"라고 대답했다. 큰 소리는 쳤지만 과제물 제출 시간은 다가오고 그는 궁리에 빠졌다. 그러다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옐로 페이지를 펼쳐놓은 잡스는 실리콘 밸리 최대 기업 HP(휴렛 패커드)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는 HP 창업자이자 사장인 데이브 패커드를 바꿔달라고 했다. 무슨일이냐는 비서실의 질문에 인근 공립학교 학생 대표 스티브 잡스라면서 일렉트로닉스 특활반 과제물을 위해 HP의 부품 공급을 상의하고 싶다고 대담하게 뻥을 쳤다. 말도 안되는 기적이 벌어졌다. 그에게 패커드 사장과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패커드 사장은 "학생들에게 HP에 남아도는 전자 부품을 공급해 주면 전자 기기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회사에도 좋은 일이 아니냐"는 중학생 잡스의 설득에 넘어가 부품공급을 약속했다. 패커드는 훗날 어린 학생의 배짱과 용기 그리고 조리있는 말솜씨에 홀딱 반해 부품 한 박스를 전달했다고 술회했다.
HP의 부품을 공수 받은 잡스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과제물을 제출해 친구들과 교사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부품을 얻었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잡스는 잔뜩 목에 힘을 주고 "엉…미스터 패커드가 직접 줬지!"라고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사실은 당대의 IT 업계 선구자 데이브 페커드가 10대 소년 잡스의 "reality distortion field" 공략에 넘어간 사건이었다.
아이팟 신화까지 이어져
잡스의 설득력이 가장 빛을 발한 사건은 그 유명한 iTunes 런칭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있다.
90년대 후반 인터넷의 광폭 파급은 Nepster(MP3 파일 공유사이트)에 의해 진행됐다. 불법음원 다운로드의 온상이었다. 순간의 클릭으로 최고인기 가수의 음악이 전세계 네티즌들의 하드디스크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순식간에 파산위기에 직면한 음반 유통사들은 모두 어떻게 위기를 돌파해야할지 몰라 허둥댔다. Nepster의 폐쇄는 쉽게 얻어냈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 이미 인터넷의 MP3 불법 다운로드사이트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아이팟이란 휴대용 MP3기기를 히트시키면서 유료 다운로드 아이튠스의 런칭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나의 음원 파일을 등록시키기 위해선 음반사 프로듀서 작사작곡가 그리고 가수를 한자리에 모아 서명을 받아야 했다. 지칠줄 모르는 잡스의 설득공세에 각 파트의 사람들과 변호사를 한 테이블로 불러들여 서명을 받아낸 것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운명은 이처럼 잡스의 'Reality Distortion Field'라는 말도안되는 설파작업에 의해 서서히 바뀌기 시작됐다.
이정필
전직언론인
디지큐브대표
블로그 www.jpthegreenfu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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