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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위한 '힙합 이야기'-4] 폭력적·선정적 내용으로 인기 끈 갱스터랩

랩퍼의 총격 사망으로 사람들 비판 속 퇴조

1996년 9월 7일,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범인들은 차 안에서 옆 차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사라졌다. 당시 차 안에서 총격을 당한 랩퍼 ‘투팍’(2Pac)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천재 랩퍼의 죽음과 함께 힙합계를 주도하던 갱스터 랩은 종말을 맞게 된다.

힙합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것이 거친 거리의 삶을 대변하는 갱스터 랩이지만 힙합이 처음부터 폭력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힙합은 파티와 함께 시작되었다. 70년대 뉴욕의 흑인밀집지역에서는 라이브 밴드가 아닌 DJ를 중심으로 음악을 즐기는 파티가 크게 성행했다. 이런 파티에서는 70년대 후반부터 흥을 돋구기 위해서 여흥구를 넣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DJ 옆에서 보조적인 역할로 여흥구를 외치던 사람들이 랩퍼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힙합은 1979년 랩으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음반인 ‘슈거힐 갱’(Sugarhill Gang)의 ‘랩퍼스 딜라이트’(Rapper’s Delight)가 발매되면서 주류음악계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 후 10년간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해 오던 힙합은 1988년 LA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동부의 힙합은 어둡고 무거운 반면 LA 힙합은 멜로디컬한 요소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LA 힙합 최대의 특징은 가사였다.

특히 전설적인 5인조 힙합그룹 ‘엔.더블유.에이.’(N.W.A.)는 경찰을 직설적이고 거친 언어로 신랄하게 비판하는 가사로 파문을 일으켰다. 욕설이 예사로 등장하는 이들의 거친 표현은 충격이었고 연방수사국(FBI)까지 나서서 이들을 반법률적인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그룹으로 지목하였다. 이들의 데뷔 앨범 '스트레이트 아우터 캄튼'(Straight outta Compton)은 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새로운 조류가 힙합의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들이 일으키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갱스터 랩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갱스터 랩은 갱스터로서 살아가는 삶을 여과 없이 풀어낸다. 대부분은 가사가 매우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때때로 상대 갱을 비난하는 내용도 있다. 이런 갱스터 랩이 크게 히트를 치자 서부를 중심으로 많은 갱스터 랩이 쏟아져 나오며 갱스터 랩의 전성기를 연다.

시작이 요란했던 갱스터 랩은 10여 년의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90년대 중반, 당시의 힙합계는 둘로 갈라져 있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와 LA를 중심으로 한 서부는 서로를 비난하며 랩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이게 된다. 그 중심에 서부의 대표 '투팍'과 동부의 대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가 있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둘은 오해로 사이가 틀어졌고 서로를 맹비난하는 원수가 된다.

동부 랩과 서부 랩의 대결은 1996년 투팍이, 1997년 노토리어스 바이.지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이 둘의 죽음은 단순한 아티스트의 죽음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었고 갱스터 랩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 속에 퇴조하게 된다. 세기말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교체기, 갱스터 랩이 사라진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물결로 밀려온 하이브리드 힙합이었다.

조원희 인턴기자 whc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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