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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경, 나의 인생] 김창식 목사 "포로 생활서 살려준 '생명책' 이죠"

"포로수용소에서 받은 성경이 내 목숨을 구했습니다."

오래된 책의 향기는 짙었다. 60년을 견딘 검은 겉표지는 이미 표지라기 보다 종이에 가까울 정도로 얇아졌지만 지난 세월은 책에 '고서'라는 명예를 달아주었다.

첫장에 쓰인 '일천구백오십년'이라는 발행 연도와 '셩경젼셔'라는 옛 맞춤법은 그래서 생경하기 보다 친근했다.

이 성경은 김창식(81.사진) 목사의 보물이다. 단순히 흘러가 고인 시간 때문이 아니라 극적인 그의 인생사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이념 성경사의 암흑기 새로운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 목사가 이 성경을 만난 것은 꼭 60년전인 1951년 거제도 '73 수용소'에서다. 1950년 9월 인민군에 강제징집돼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갇혔던 곳이다.

원래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참혹한 포로생활을 견디기 위해 수용소내 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한국 반공포로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럴드 보켈(한국명 옥호열) 군목을 만나 이 성경을 선물받았다.

"먹을 것이 없어 변도 보지 못했던 생활 속에서 영혼의 허기짐을 채워준 책입니다."

성경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생명을 구했다. 후세에 '반공포로석방사건'으로 불려진 1953년 6월 18일의 일이다.

"새벽 0시를 기해 일제히 포로석방이 단행되면서 포로들이 모두 수용소 철책을 넘어 도주했죠. 그 때 이 성경을 가지고 철책을 넘을 방법이 없었어요. 기회를 놓쳐 그만 탈출에 실패했었죠." 성경을 손에 들고는 철책을 넘을 수 없었고 성경을 철책 밖으로 던지자니 찢어질 것이 뻔했다.

낙담했지만 잠시였다. 그 때 철조망을 넘은 포로의 상당수가 미군과 국군의 총에 맞아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후에 풀려나 만난 같은 포로출신 교인도 총상을 입은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고 한다.

오랜 포로생활을 끝낸 후에도 이 성경은 김 목사의 분신이었다. 이 성경으로 신학 공부를 했고 74년 미국에 이민올 때도 가장 먼저 챙겼다.

성경의 맨 뒷장에는 암흑기였던 교회사의 편린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성경은 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출판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본은 불과 성서 출간 8년전인 1942년 한국에서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성서 판매 중지령을 내린 바 있다. 전범 국가는 식민지 삼은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의 틈새에서 여전히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었던 셈이다.

그간 이 성경에 담긴 비화를 말하지 않았던 김 목사는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세 자녀를 불러모아 사연을 들려주었다.

"이 성경이 아니었으면 너희들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했죠. 내가 죽어도 가보로 간직하고 예수 잘 믿으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 목사는 보수적인 세대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핸드폰 성경'에 대해 "성경을 읽게 할 수 만 있다면 형태는 큰 의미가 없다"라는 열린 의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성경 읽기의 소홀함에 대해서는 "신앙적 바탕이 없다면 위험한 곳에 빠지기 쉽다"고 '생명책'이 된 본인의 경험을 전했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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