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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 역사.효과] 문맹인에 '잠자던 한글' 가르쳐

복음 전파 일등공신 '권서'
지게에 성경 메고 '방방곡곡'

대한성서공회가 내놓은 '우리말 성서 번역 계보도'에 따르면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한글 성경은 7권이다.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판은 한 번도 한반도를 밟은 적 없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중국에서 탄생했다. 1882년 3월 심양 문광서원에서 간행된 누가복음 번역판 '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셔'다.

이 복음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와 조선청년 이응찬의 운명적 만남에 의해 10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이응찬은 한국교회 최초의 세례자로 꼽히는 사람중 하나다.

이 성서에서 로스는 'God'을 '하나님'으로 번역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하나님이라는 한글 고유명사의 역사는 130년이 되는 셈이다.



로스 선교사가 신약의 복음을 쪼개서 번역해 내놓은 이른바 '쪽복음'은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조선 땅을 밟은 적은 없었지만 로스 선교사 덕분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1885년 4월 제물포로 입항하기 이전부터 성경은 이미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 도착 21년만인 1906년 한국 교회가 공인한 신약성경 '신약젼서'를 간행했다. 이어 5년 뒤인 1911년 '구약젼셔'까지 완역 마침내 국내 최초로 신.구약 전체 66권을 번역한 '셩경젼셔'를 출간한다. 최초의 완역판 성경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1910년이 나라의 주권을 잃은 '절망의 해'였다면 1911년은 질곡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 해"라고 평가했다.

한글 창제 이후 한글로 방대한 문장이 집대성된 첫 책이기도 한 성경의 파급효과는 컸다. 신학자들은 "기독교가 잠자던 한글을 깨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당시 게일 선교사 보고에 따르면 1907년 한 농부가 외우는 재능이 없어 성경구절 한 절을 읽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다 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데닝 선교사는 "60~70대 노인들이 성경을 줄줄 외우고 맹인이 사복음서 전체를 외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글 성경의 빠른 흡수력에 놀라워했다.성경 전달의 일등 공신들은 성경을 전하거나 판매하는 '권서'들이다. 이들은 지게에 성경을 메고 전국 방방곡곡 두메산골까지 찾아다니며 문맹인과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넉넉치 못한 살림 속에서 성경은 쌀로 교환되기도 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최초의 완역판은 비교적 간결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지긴 했지만 영어 흠정역(AV)과 중국어역을 중역한 것이어서 히브리어 헬라어 원본 성경과의 대조가 충분치 못해 원문의 의미에서 빗나간 내용이 많았다. 이에 따라 개정작업이 시작됐고 26년만인 1938년 '셩경개역'이 마무리됐다.

한국전쟁을 거친 뒤 한국 교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부흥되고 원어 독해력 등 신학 수준이 향상되면서 새로운 성경 번역의 요구가 커져갔다.

이에 발맞춰 1961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른 '개역한글판'이 나오고 다시 37년 뒤인 1998년 한글 맞춤법을 따르고 성차별이나 장애인 관련 용어를 개정한 '개역개정판'에 이른다.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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