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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천주교계 산증인 박창득 몬시뇰 "주님 은총으로 이 모든 열매 맺었다"

성직자 10명 배출, 신심운동 활발히 이끌어
20일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 축하미사·잔치

'미 동북부 한인 가톨릭의 역사는 박창득 몬시뇰의 역사이고, 박 몬시뇰은 한인 가톨릭계의 살아 있는 역사다.'

박창득(사진) 몬시뇰이 오는 20일 사제 서품 받은 지 50년이 되는 금경축을 맞는다. 1961년 3월 20일 대전교구에서 서품 받은 지 꼭 50년이 되는 이 날을 맞아 뉴저지 한인 가톨릭계는 현재의 한인 천주교계를 있게 한 '주춧돌' 몬시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의 사목을 되돌아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 몬시뇰은 서품 후 대전에서 사목 첫 발을 디딘 뒤 군종신부를 거쳐 지난 66년부터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해 종교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70년 미국으로 유학, 펜실베이니아주와 뉴저지 저지시티 한 성당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1970년대 초 뉴욕·뉴저지에 개신교회는 제법 많았으나 한인성당은 하나 밖에 없었다. 가톨릭 신자들도 성당이 없어 개신교회에 나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몬시뇰은 72년 12월 30여 명의 한인 신자들과 첫 미사를 봉헌했다. 이 미사가 뉴저지 한인 가톨릭교회의 시초가 됐다.

이 일을 시작으로 몬시뇰은 사목 50년 중 40년 가까이를 뉴저지를 넘어 미동북부 한인 가톨릭계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때문에 교계에서 그를 '살아 있는 역사''주춧돌''반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이번 금경축 행사는 그가 사목하면서 배출한 '아들 신부들'이 주임신부로 있는 5개 성당이 주축이 돼 공동으로 마련해 더욱 뜻 깊다. 이 행사를 준비하는 뉴저지 한인 가톨릭계는 잔칫집 분위기다. 행사는 20일 오후 5시 메이플우드한인성당에서 열린다.

◆’손자 신부’까지= 박 몬시뇰은 뉴저지한인천주교회 오렌지성당 주임신부로 있으면서 98년 이승윤 신부를 시작으로 98년 이윤나 수녀, 99년 조민현(메이플우드성당) 신부, 2001년 박홍식(새들브룩 성103위성당) 신부, 2003년 김정수(데마레스트성당) 신부 등 지난 10여 년 동안 10명의 성직자를 배출했다. 이처럼 성직자의 잇따른 배출은 사제가 점점 줄어드는 미국 가톨릭계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박 몬시뇰은 "사목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성소(聖召)의 샘이 마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공동체가 하나돼 기도하고 후원해 이뤄진 결실이다"고 기뻐했다.

몬시뇰이 사목한 오렌지성당은 안드레아회를 중심으로 신학생을 재정적으로 돕고 기도해 왔다. 특히 몬시뇰은 미국에서 자란 한인 1.5·2세들이 사제가 돼 사목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성소 계발에 힘써 왔던 것이 주효했다.

오는 5월에는 몬시뇰의 '손자 신부'가 탄생할 전망이다. '아들' 조민현 신부가 사목하고 있는 메이플우드성당에서 배출한 조홍래 부제가 오는 5월 신부 서품을 받을 예정이다.

◆북한 위해 기도= 지난 80년, 84년 중국을 방문해 백두산을 등정하면서 북한선교의 꿈을 꾸었다. 89년 미주 한인신자들과 평양을 찾아 북한 유일의 장충성당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신자들이 함께 합동미사를 봉헌했다.

이후 몬시뇰은 천주교 평양교구서리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에 따라 3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성모상을 모셨다. 95년 북한 신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96년엔 북한의 어려운 식량난을 돕기 위해 평양천주교국수공장을 세워 2002년까지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또 2008년엔 평양에 라면식당을 세워 운영했다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다. 2000년엔 미국에서 개신교, 불교 등 종파를 초월한 종교지도자들이 함께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미주종교인협의회 설립을 주도했다.

몬시뇰은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또 다시 나섰다. 지난해 10월부터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탁아소를 건립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은 오는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500명을 수용하는 탁아소 건립에는 총 30만 달러가 들어갈 예정이다.

박 몬시뇰은 "국수 공장을 할 때는 교계 호응이 상당히 좋았으나 현재 남북 상황이 좋지 않아 모금 활동이나 도움이 썩 좋지는 않다"며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도움이 있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성심 운동 이끌어= 박 몬시뇰은 사목하던 오렌지성당이 점점 성장하자 등록신자 500가정이 넘으면 200가정을 나누어 공소(본당보다 작은교회)를 잇따라 설립, 뉴저지 한인공동체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몬시뇰은 78년에는 성령쇄신운동을 처음으로 시작, 미주 한인성당에 성령의 불을 지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일부 사제와 신도의 반대에도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작돼 94년엔 전국적인 단체 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가 조직됐다. 현재까지 해마다 성령집회가 열리고 있다.

또 83년엔 부부주말피정(ME)을 미주 한인교계에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신심운동에 불을 붙였다. 또 젊은이 사목에도 공을 들여 87년에는 청소년안티옥피정도 열었다.

몬시뇰은 미디어를 통한 선교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서품 25년을 맞은 86년 은경축 때 축의금으로 미주가톨릭다이제스트를 발간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88년엔 '매일미사'도 출판했다. 또한 평화신문 미주지사를 설립해 미주판을 만들어 보급했다.

조민현 신부는 "몬시뇰은 주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그에 따라 실천으로 옮겼다"면서 "주님의 은총으로 이 모든 열매가 몬시뇰을 통해 맺게 됐다"고 말했다.

정상교 기자 jungsang@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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