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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김의 할렘에서 월스트릿까지-파이낸셜 디스트릭트 (16)]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취가…

주식시장 사용 종이 뿌리며 행진
각국 대통령·한국전 참전용사도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서 브로드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쭉 걸어가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보도를 따라 검은 띠들이 줄줄이 박혀 있다. 그 검은 돌판에는 간략한 글귀가 있는데 연도와 특정 인물의 이름·직위 등의 간략한 정보다. 물론 그들은 한 국가의 대통령이거나 유명 운동선수·공을 세운 군인·그리고 우주비행사·남극탐험가 등의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긴 하다. 하지만 그들이 왜 이 바닥 돌로 여기 박혀 있는지는 많이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주말 오후에 이곳을, 그날따라 모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나간 적이 있었다. 나도 궁금했는데 다른 미국 사람들도 그랬나 보다. 한 아주머니가 발걸음을 옮기던 인솔자 할머니에게 “도대체 이게 뭐죠?” 하고 물으니, 너무나 간단하게 “티커 테이프(Ticker Tape) 행진한 거야”라고 대답하셨다.

티커 테이프는 1867년에 발명되어 주식 시장에서 사용되던, 증권 시세 표시기에 끼우는 가느다란 종이 두루마리다. 이 기계가 인쇄할 때 “틱틱”거리는 소리를 내서 티커라 이름 붙여졌고 종이 역시, 티커 테이프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는 많은 증권회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에 퍼레이드가 열릴 때 이 브로드웨이 양쪽의 높은 빌딩들에서 자기들이 사용한 폐 티커 테이프를 엄청나게 뿌려댔다. 조각조각 자르기도 하고, 우리가 두루마리 휴지 던지듯이 이 테이프를 옥상에서 길게 던졌다. 그래서 뉴욕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거리행진은 티커 테이프 행진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1945년 8월 14~15일, ‘대한민국의 광복절 행진’은 가장 환영받은 퍼레이드 중 하나다. 일본의 패전 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을 기념한 거리행진이었다. 진주만 피격으로 한때 상실에 빠졌던 미국인들, 이때 이 짧은 길에 무려 5,438t의 티커 테이프와 색종이를 뿌렸다. 이다음 순위는 1962년의 우주비행사가 받은 3,474t이다. 하지만 2009년의 뉴욕 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제패 기념 거리행진에서는 단 36.5t의 폐지가 나왔다.



이런 거리행진은 무척 화려하지만 한순간 지나가고 마는 무형의 것이다. 이에 1996년 어떤 사람이 축제를 지켜보고 있다가 소중한 역사를 남겨두는 게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상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Alliance for Downtown New York)에서 사업을 추진했다. 이에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검은 띠 모양의 화강암에 글자를 박아넣기 시작했다. 물론 파이낸셜 디스트릭트 최초의 행진인 1886년의 자유의 여신상 건립 축하 행진부터 소급해서 말이다. 그래서 현재 브로드웨이의 배터리 공원 지점부터 시청까지 200개의 기념 바닥돌이 있고 미래를 위해 남겨둔 수십 개의 자리가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성가신 발걸음 사이에서 글자를 읽는다. “윈스턴 처칠이 왔었네, 베를린 올림픽의 육상 영웅 제시 오웬스도, 대서양 비행횡단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도 퍼레이드를 했구나, 아이젠하워는 두 번이나 했네” 하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놀랍게도 대한민국 대통령들도 있다. 어느 날 길에 고개를 처박고, 퍼레이드 연대기를 거꾸로 하나하나 읽으며 내려가고 있었더랬다. 어느 돌 위를 성큼 내딛는데 승만 리, 남한 대통령(Syngman Rhee, President of South Korea)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깜짝 놀라 내딛던 발목을 접질릴 만큼 놀랐다. 어머나, 왜 이게 전에는 안보였을까. 우리의 대통령 이름이 맨해튼에서도 가장 번화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저렇게 새겨져 있다니, 참 신기하고 고맙기까지 했다. 전쟁 직후의 가난한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나라가 그 화려한 행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에 행진을 했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도 퍼레이드를 했다.

하나 더 신기한 것은 이 바닥 돌에서 ‘Korea’가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귀환 때마다 벌어진 행진 때문이다. 그분들은 노병은 죽지 않음을 과시하며 1991년에도 행진을 했다. 심지어 대전이라는 도시 이름도 덕분에 이곳에 선명히 박혀 있다.

이승만 대통령 티커 테이프는 에쿼터블 빌딩 앞에, 대전 전투는 트리니티 교회 앞에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현재로선 볼 수 없다. 그분이 있던 자리 뒤로 거대한 빌딩 공사가 시작된 탓에, 보도까지 막아놓은 탓이다. <끝>

☞안나 김은 한양대 도시공학과 졸업 후 LG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다 컬럼비아대학원에서 부동산개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뉴요커도 모르는 뉴욕’(한길아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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