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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멜기세덱, 여백 많은 수묵화 같은 인물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교무처장

성서에서 가장 신비에 싸여있는 인물이 있다. 그는 이 세상과의 인연을 초월한 듯 부모와 족보에 관한 기본적 정보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구약성서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성서에서 딱 세 번만 언급되는데 그 횟수에 비해 그의 존재감은 음악으로 치자면 '스타카토'처럼 강한 반절의 리듬과도 같은 족적과 함께 나머지 반절의 묘한 단절된 여운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총총히 사라진 인물이었다. 신약성서는 그를 두고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멜기세덱이다.

멜기세덱의 이력이 특이한데 그는 제사장이면서 살렘 왕이었다. 그의 이름 '멜기세덱'은 '의로운 왕'을 뜻하고 '살렘'은 '평화'를 의미하기에 그는 의와 평강의 왕인 셈이다. 멜기세덱은 속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인 제사장이었고 의에 기초하여 질서를 세우고 평화를 가져올 왕이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홀연히 등장한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인근 왕들이 조카 롯을 사로잡아갔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롯과 빼앗긴 재물을 되찾기 위해 그들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여러 왕들이 마중 나왔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으니 그가 멜기세덱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전쟁에서 노획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크다. 멜기세덱은 초대 제사장인 아론이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기 전 대략 600년 앞서 모든 민족을 위한 대제사장이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왕권과 제사장직을 엄히 구분한 이스라엘 왕국 시대 그 이전에 그 두 직책을 함께 수행한 멜기세덱의 행보는 무척 흥미롭다. 이러한 멜기세덱의 특이한 이력과 행보는 신약성서에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비추는 모형으로 소개된다.

예수님은 시종이 묘연한 멜기세덱처럼 시작과 끝도 없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늘과 땅을 매개하기 위해 그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셨다. 신약성서의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의 행적 속에 드리운 예수님 생애의 그림자를 한편의 묵직한 선으로 처리된 '수묵화'로 표현한 셈이다. 그러기에 붓이 가지 않은 여백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메워야 할 아이러니와 역설로 가득한 신비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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