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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쇼캄쇼바

서량/정신과 의사·시인

'flapper'는 1918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 후 1921년에 생긴 슬랭이다. 전쟁을 끝낸 사내들이 자괴감에 시달리는 동안 그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행동거지가 자유분방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flapper'는 깃발이 펄럭이거나 새가 퍼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의성어에서 유래했으며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버르장머리 없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여자를 지칭한다.

6·25 전쟁 후 50년대 우리 사회에도 전후파 기질의 '후라빠'들이 출몰했다. 젊고 발랄한 그들은 허리가 잘록하게 돋보이도록 고등학교 교복을 몸에 꼭 끼게 고쳐 입거나 불량배 남학생들과 빵집 고려당이나 태극당에서 마주 앉아 눈을 내리깐 채 시대의 첨단을 가늠하는 숨을 몰아 쉬었던 것이다. 그들은 건강한 남자 고등학생들 가슴에 깊이 숨겨진 애정의 표적이었다.

'후라빠'는 'flapper'의 일본식 발음이다. 당구에서 요행수로 공이 맞았을 때 '후로꾸'라 하는 것도 요행이라는 뜻의 영어 'fluke'의 일본식 발음이다. 우리는 'f'를 필(feel)이나 플로리다(Florida)처럼 피읖(ㅍ)으로 소리내지만 일본인들은 히읗(ㅎ)으로 발음한다. 그런 일본강점기 영어의 잔재로 우리는 'fried egg'를 아직도 '계란후라이'라 한다.

'계란후라이(fry)'는 ‘팀장(team長)’이나 '휴대폰(phone)'처럼 영어와 우리말의 이상한 조합어다. 당신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만탱크(滿tank)' 채울 때도 일본식 발음으로 '만땅'이라 한다. '잠바'를 정확하게 점퍼(jumper)라 하면 도무지 무슨 말인가 싶다.



'underwear(속옷)'는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굳이 'pants'의 일본식 발음인 '빤쓰'라 소리쳐 말하면 금방 귀에 쏙 들어오는 것도 당신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언어습관은 이토록 몸서리치게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가라오케' 또한 '가짜'라는 뜻의 일본말 '가라'와 '오케스트라'라는 영어의 첫 부분을 싹둑 잘라 만든 합성어다. 일본인들의 성향에 썩 잘 맞는 것처럼 들리는 이 단어는 근래에 'karaoke'라는 표준영어가 됐고 '캐러오으키'로 느글느글하게 발음한다.

옛날에 군의관으로 강원도 최전방에서 보냈던 시절이 생각난다. 한 번은 위태롭게 절벽 위 산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조심스레 앰뷸런스로 응급환자를 후송한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운전병이 말하기를 "군의관님 아무래도 메다루가 나간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언뜻 '메다루'가 내가 알지 못하는 자동차의 중요 부속품이려니 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metal(금속)'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적이 끊긴 어두운 산길에서 잔뜩 겁에 질렸던 그는 차가 심하게 덜그럭거리자 내게 그렇게 '구라'를 쳤던 것이다. 내가 눈치가 있었더라면 그에게 '쿠사리'를 줘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구라'와 '쿠사리'는 완전 일본말이다. 3·1절이 가까운 시기에 함부로 일본말을 해서 당신에게 엄청 미안하다.

그 운전병은 그때 내게 '노가리를 깐 것'이다. 당신은 지금 내가 또 '노가리'라는 일본말을 했다고 넘겨짚지 말아 다오. 노가리란 명태새끼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노가리 깐다'는 것은 명태가 무수하게 새끼를 까듯 사람이 말을 터무니없이 부풀리며 허풍을 떤다는 뜻이다.

제대 후 청계천 자동차 부속품 가게 간판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쇼캄쇼바'가 'shock absorber'의 일본식 발음인 것 또한 배웠다. 요새는 쇼캄쇼바를 절반으로 툭 잘라서 그냥 '쇼바'라고도 한단다. 이상하다. 구글에도 버젓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도대체 쇼캄쇼바가 뭔가, 쇼캄쇼바가. http://blog.daum.net/stick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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