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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마리아의 발현 (3)

전달수 안토니오/성 마리아성당 주임신부

성모 마리아는 전체 그리스도교 안에 하나의 쟁점 주제이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성령의 특별한 능력으로 동정녀로서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으셨다는 것까지는 모든 교파가 인정한다.

예수님 탄생 이후에도 평생 동정녀로 사셨다는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일치된 견해와 신조와는 달리 많은 개신교 교파들은 평생 동정녀임을 거부한다. 성모 마리아는 너무나 유명하여 이슬람교도들도 공경한다. 그러므로 에페소의 성지는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부 그리스도교 교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들은 마리아를 공경하지 않는데 개신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르틴 루터 신부는 죽기 전까지 성모 마리아에 대해 설교하였고 마리아를 공경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신학을 공부할 때는 60년대 제2차 바띠깐 공의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 때 교회 일각에서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은 성모 마리아를 뒤로 물러 앉히자는 운동이었다. 내용인 즉 갈라져 나간 형제들(개신교)과 일치를 해야 하는데 마리아가 일치 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새로운 신학 동향을 배워온 신진 교수들은 마리아 신심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로사리오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펴는 듯이 보였다. 필자에게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교수들이 교회의 공적인 아름다운 기도이며 필자가 어릴 때부터 배운 그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을 펴고 있었으니 내 머리에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학교생활 시간표에는 기도하는 규칙이 있어 그대로 따라 했지만 사제가 된 다음에도 이 생각은 늘 나를 괴롭혔다. 그 이후 로마에 가서 공부를 마친 다음 교수생활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오랫동안 교회의 역사를 뿌리부터 연구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마리아 신심은 신앙 공동체에서 저절로 일어났고 교회가 후에 공인했을 뿐이다."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기도를 바치고 찬미의 노래를 바치니 교회의 권위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세기 말부터 오늘까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생겨난 수없이 많은 성모님께 관한 기도문들과 시 그림 조각 등은 살아있는 증거품들이다. 그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1917년 이집트에서 대형공사를 할 때 지하에서 여러 가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서 파피루스도 발견되었다. 그 중에 'Sub Tuum'이라는 기도문이 나왔는데 화학 처리를 해보니 2세기 말~3세기 초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때는 교회 초창기이며 로마의 박해시대였다.

여기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두 가지이다. 1)교회의 수도원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시작되었으니 이집트의 수도자들이 사막에서 그 기도를 바쳤거나 아니면 2)로마의 참혹한 박해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 박해가 다소 잠잠하던 이집트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바치던 기도가 아니었을까? 하여튼 박해 시대의 어려운 공동체들이 마리아의 전구를 비는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면 이는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틴어로 된 'Sub Tuum' 기도문의 전문(번역)은 이러하다.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옵시고 모든 위험에서 항상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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