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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실·바늘만 쥐면 마음 차분해져

기억이 어슴푸레한데 아마 고등학교 1~2학년 때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바느질이란 걸 했었다. 바지호주머니를 꿰맸던 것 같은데 땀을 뜰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이후 군대에서 몇 차례 그리고 신혼 즈음에도 한두 번은 바느질 할이 있었는데 차분해지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00년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는 곁에 바느질해 줄 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4대 열 식구가 한집에서 사는 대가족이었으므로 할머니 어머니 혹은 아내나 누이들 가운데 항시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옷 어딘가가 뜯어지거나 구멍이 났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실과 바늘에 손이 갔다.

바느질 일이 그리 잦지는 않았지만 내 옷이 아닌 식구들 옷을 손봐줘야 했던 것은 미국으로 온 이후부터였다. 한국에서 각각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이었던 딸과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온 뒤부터는 심심치 않게 아이들을 위해 바늘을 잡아야 했다. 아이들의 엄마가 한국에 체류하고 미국에는 같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고 항상 시간에 쫓기는 미국생활에서도 간혹 하는 바느질은 여전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내 바느질은 솜씨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다. 게다가 갖가지 바느질 방법 가운데 할 줄 아는 것이라고야 두세 가지에 불과했다. 그래도 아무튼 실과 바늘만 손에 쥐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뭔가 그윽한 느낌까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전생이 여자였을까. 흔히 여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바느질에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바늘만 가까이 하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 스스로를 가끔은 실없이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곤 했다. 〔〈【운동을 하지 않거나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정서불안을 노출하는 경증의 과잉행동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신기하게도 바늘만 만지작거리면 차분해지는걸 어떻게 설명할까.】〉〕

바느질은 내게 감춰져 있던 여성성을 들춰내는 실마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한 때 유행했던 노래 제목도 있지만 남자의 몸을 하고서 '나 홀로 주부'로 8년 넘게 살 줄은 '진정 난 몰랐네'였다. 그 것도 내가 태어난 나라도 아니고 물 건너 다른 나라에 와서 주로 엄마 역할을 하며 살아갈 줄이야.

나 홀로 주부생활 8년 가운데 첫 6년은 싱글 대디였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데리고 온 딸과 아들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홀로 아빠 생활을 했다. 기자 출신으로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친구는 그때 나를 '엄빠'라 부르곤 했다. '엄마+아빠'의 줄임말이다.

딸 아들 키우는 것으로 싱글 대디의 팔자가 끝났나 했더니 그 것도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초등학생 여자 조카 아이를 한국에서 데려와 키우고 있다. 조카가 한국에서 건너올 때가 막 4학년에 올라갈 때였으므로 10여 년 전 우리 아이들과 엇비슷한 나이다. 우연치고는 재미있다. 그러나 조카는 입양을 한 것도 아니므로 나는 어디까지나 엉클일 뿐이다. 자기 딸을 맡긴 여동생은 오빠를 '엉클맘'이라 부르며 키득거린다. 외숙모는 여전히 한국에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는 싱글 엉클맘이다.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생김새로는 아빠이고 남편이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평소 맡은 일로만 보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몫을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런 상황이 그다지 불편한 게 아니고 보면 원래 체질이 여자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평균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나은 생물이라는 소신도 있고 보니 한편으로는 당당하기까지 하다. 오리지널 여성들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남자들 중에서 내가 좀 나은 축의 생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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