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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있을 때 잘해"

김세환 목사/LA연합감리교회

유행어는 시간의 한계를 전제로 한 언어들이지만 나중에도 그 내용을 되씹어 보면 일리가 있는 말들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예전에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어떤 인기 드라마에서 비롯된 말인 것 같은데 사람들 모두가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 말을 따라 했습니다. 특별히 연세 드신 노인들이 속상할 때마다 자녀들에게 이 말을 주무기처럼 사용했습니다.

당시에는 참 듣기 싫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뼈저리게 그 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유행어입니다.

사람들은 있을 때는 그 존재와 가치를 무시하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무치도록 그리워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참 과묵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양친을 다 여의시고 형님 밑에서 자라셨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중이염을 심하게 앓아서 청력을 많이 잃으셨습니다.

자격지심 때문에 그랬겠지만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많이 피하셨습니다.

저는 단순히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하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래로 국제전화를 걸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저의 대화 상대는 어머니였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때도 여러 번 말을 반복해야 알아들으시던 아버지와 태평양을 건너 말을 건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년 뒤 아버지가 미국에 오셨을 때 저는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단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단둘이 차 안에 남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지으시던 해 맑은 얼굴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 목사! 나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지난 10년 동안 김 목사가 전화를 할 때마다 목소리를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목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날 결심했습니다. 매일 전화를 드리기로!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제 전화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몇 달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실수를 감기 앓는 것처럼 반복합니다. 방에서 뭉그적거리며 게으름 부리는 아이들도 이제 몇 년 안에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부모의 품을 떠날 것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혈기 충천해서 "분노는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시부모님들도 멀지 않아 그리워지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천년 만년 옆에서 내 눈의 가시로 살아갈 것 같은 웬수(?)도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소낙비와 함께 보고 싶어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진저리치도록 미운 교인이 있었습니다. 동생처럼 생각했던 젊은 친구였는데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못된 짓을 했습니다.

믿었던 만큼 배반감도 컸습니다. 그 녀석도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입을 건너 "그 놈이 심각하게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조건 잘 해 주는 건데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사무실을 나오는데 청년들이 교회 문 앞에 오글오글 모여 있었습니다. 무심결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는 자주하니?" 하고 물었습니다. 봄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예!"하고 합창을 합니다.

과연 제가 묻는 의미를 알았을지 궁금합니다. 뭐든지 있을 때 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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