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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빨래하는 여인

조옥규/LA수향문학회 동인

뉴욕 타임스퀘어는 인파로 북적대고 있다. 흐르는 시간에 금을 그어 몇 초만 지나면 새해라는 이름으로 한해가 시작되려한다. 새로운 출발에는 언제나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일까 환호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추운 맨해튼의 거리를 녹이고 있다.

새해를 경축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는다. 불꽃이 하늘에 아름다운 꽃송이로 피었다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올해에는 저마다 꿈꾸는 모든 것들이 예쁜 꽃을 피우는 날들이기를 기원해 본다. 매 해마다 이 시각이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새해를 시작할 것이다. 나도 조금 더 현명하고 숙성된 인생을 살고픈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밤중이지만 텔레비전 앞에서 일어나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에 넣는다.

세제를 넣으며 삶의 번민으로 때가 묻어있는 마음도 깨끗하게 빨아지기를 소망해본다. 세월과 욕망은 정비례하는 걸까 신혼시절에만 해도 큰 욕심 없이 산 듯싶다.

마렉 플라스코의 '제8 요일'을 읽으며 삼면의 방이라도 함께 지낼 수 있기를 소원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었다.

나는 가진 것은 많지 않았어도 온전한 사면 벽으로 된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봄이 되면 각종 꽃들이 정원에 피어나고 담장을 뒤덮은 넝쿨장미의 매혹적인 자태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때는 조그마한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았었다. 일이백원을 가지고 준비하는 소박한 밥상에도 즐거움이 함께 했었다.

남들이 호의호식 한다 해도 부러운 줄 몰랐고 주어진 환경에 불만 없이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하여 알뜰히 살림하며 저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 세탁기를 장만하고 손빨래에서 해방 되었을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요즘에는 각 가정에 필수품이어서 그리 대단치 않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가스레인지나 세탁기는 생산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껴 모은 돈으로 세운상가에서 삼만 원짜리 일제세탁기를 구입했었다. 그 시절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월급의 반 정도 되는 시세였으니 우리에게는 큰맘 먹어야 장만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웃들이 세탁소를 차릴 거냐고 신기해하며 부러워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면서도 일생 중에 행복했던 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어려운 시대였기에 요즘 세대들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값진 추억 하나를 더 가진 셈이다.

물질문명이 빠르게 발달되면서 현대인들은 옛날의 왕후장상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 마음속엔 만족보다는 번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으니 어인 일인가.

'소욕지족(小欲知足) 소병소뇌(小病小惱) 하라'고 법정스님은 설법 하셨다. 적은 것으로써 넉넉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시기와 질투 분쟁이 없는 천국이 될 것같다. 누구나 평화를 사랑하고 원하면서도 쉽게 비울 수 없는 마음이 문제이리라.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예전에 때 묻지 않았던 순수한 행복이 그리워진다. 살다보니 물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마음의 평화가 최고로 값진 삶임을 깨닫게 된다. 일찍부터 대자연을 마음 안에 품고 사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자연과 더불어 겸허하게 살며 흐르는 물같이 살 수 있다면 큰 축복이지 않는가. 행복이란 어떤 모양새로 살든지 자족(自足)함에 있음을 알려줌이다.

새해에는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를 바란다. 세이지 브러쉬가 바람에 날려 구르다가 머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아무 불평불만 없이 노오란 꽃을 피우며 새 삶을 시작하듯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려한다. 척박한 사막에 뿌리를 내리고 목마름 속에서도 두 팔 벌려 하늘을 향한 자슈아 나무에게서 감사함도 배우려한다. 옹달샘 맑은 물처럼 작은 풀꽃 향기처럼 맑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순전(純全)한 신부로 돌아가 몸과 마음이 깨끗한 여인이고 싶다.

그래도 한여름 무더위에 가끔씩 세상 욕망이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자연을 찾아 돌돌돌 청명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물에 꽃잎을 띄우 듯 흘려보내련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찌꺼기까지 씻어내고 햇볕에 바란 옥양목 천처럼 희어진 마음이 될 때까지 빨래하는 여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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