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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토지, 임꺽정, 두만강…이 소설의 공통점은?

한국 대하소설 Special Knowledge

얼마 전 다음과 같은 독자 e-메일을 받았습니다. “문득 한국 대하소설의 역사가 궁금해졌습니다. 홍명희의 ‘임꺽정’, 이병주의 ‘지리산’은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대하소설들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한국 대하소설사를 뉴스클립으로 재조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독자의 이런 욕구는 최근 한국문학의 판세와 맞아떨어지는 데가 있습니다. 단편소설 경사(傾斜)에 대한 반작용으로 몇 해 전부터 장편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흡인력 강한 이야기를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국문학의 주요 대하소설을 소개합니다.

1980년대 중반,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대학가의 필독서 비슷했다. ‘태백산맥’을 읽었느냐 아니냐가 문학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이른바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지표처럼 통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면, 당시 대학가의 지배적인 아비투스(habitus·개인에 내면화된 성향체계나 습속)에서 ‘태백산맥’은 은밀한 어떤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표지였다. 89년 10권으로 완간된 ‘태백산맥’이 권수를 늘려갈 때마다 학생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 대하소설을 읽는 묘미는 역시 말 그대로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사건의 명멸, 인물의 부침, 그 유장한 진행을 몇 개월이고 시간을 들여 느릿느릿 읽는 데 있다. 하지만 ‘대하소설’은 문학 연구자들이 학술용어로 공인한 용어는 아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자신의 편집한 ‘한국 대하소설 연구’(집문당) 머리말에서 대하소설을 다음 같이 정의했다.

‘소설을 양적인 기준으로 분류할 때 엽편(葉篇), 장편(掌篇), 단편(短篇), 중편(中篇), 장편(長篇), 대하소설(大河小說)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하소설은 학술적으로 분류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장편소설과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장편소설은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500매 이상의 분량을 지닌 작품을 말하는데 양적인 면에서 장편소설보다 길다고 해서 단순히 대하소설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럼 대하소설은 어떤 특징을 갖춰야 하는 걸까. 이씨는 이렇게 정리한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사건이 길게 이어지되 단순한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작가의 역사의식이 강하게 투영되어야 한다. 시대의 삶과 역사가 작가의 역사의식에 의해 재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원고지 몇 매 이상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다.

◇갑오농민전쟁, 뇌출혈·전신마비·언어장애·백내장에도 3부 완성
월북작가 박태원(1909~86)이 두 차례의 뇌출혈에 이은 전신마비, 언어장애,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 위험 등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악전고투하며 3부작으로 완성했다. 1977년 쓰기 시작해 84년 말에 완성했다. 박태원은 1·2부도 부인 권영희씨에게 구술해 썼다. 3부는 구술조차 불가능해지자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려 전체적인 구상을 설명했다. 사실상 권씨가 쓴 것이다. 평론가 김윤식은 그 때문에 “3부가 쓰인 것은 일종의 문학 스캔들”이라고 했다.
1부는 동학란 발발 직전의 부패한 사회상과 이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2부는 동학란의 발발과 동학군의 전주 입성까지가, 3부는 일본군의 조선 출병부터 전봉준이 체포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월북작가 작품이 전면 해금된 이듬해인 89년부터 깊은샘 출판사가 내기 시작해 전체 8권으로 출간했다.

◇객주, 조선후기 보부상들의 계략과 음모, 애정과 갈등 버무려
소설가 김주영(72)씨의 대표작. 조선시대 후기 보부상들의 삶과 애환을 저잣거리 특유의 끈끈하고 구수한 언어로 되살려냈다. 토호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아내마저 겁간당한 조성준과 동료 보부상 천봉삼, 최돌이 등이 함께 복수에 나서며 겪게 되는 계략과 음모, 애정과 갈등의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평론가 김치수는 『객주』의 인기로 TV 등 영상시대에도 여전히 소설의 재미가 독자들을 붙들 수 있음이 확인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형성 과정, 왜 근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는지 등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평도 있다. 김씨는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진보 5일장을 체험했다. 80년대 초반 소설 집필 전 김씨는 5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3년간 전국의 장터를 순례했다. 문이당에서 9권으로 출간됐다.

◇남과 북, 한국전쟁의 세세한 부분까지 객관적으로 그려
1964년 데뷔작인 단편 ‘빙점지대’부터 한국전쟁에 천착했던 작가 홍성원(1937∼2008)이 한국전쟁을 정면에서 다룬 대작이다. 지금은 없어진 문예지 ‘세대’에 70∼75년, 5년2개월간 연재됐다. 200자 원고지 9300장 분량. 구상부터 자료수집 시기까지 치면 탈고에 13년이 걸렸다. 국군과 인민군은 물론 기자·학자·의사·양공주·건달 등 주요 등장인물만 30여 명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50년 4월부터 휴전 직후인 53년 9월까지 한국전쟁의 전 시기를 다뤘다. 한국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문학작품이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배경 정도로 전쟁을 다루고 마는 데 비해 『남과 북』은 전투상황, 피란, 공산군의 학살, 방위군사건, 월남상황, 포로수용소 등 전쟁을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복원했다는 평가다. 처음 7권으로 출간됐다가 2000년 전면 개작돼 6권으로 나왔다.

◇두만강, 한일 강제병합, 3·1운동, 사회주의 배경 속 인물들
대표적인 경향문학 작가로 해방 직후 일찌감치 월북한 이기영(1895∼1984)의 대표작. 3부작으로 1부는 1954년에, 2부는 57년에, 3부는 61년에 각각 발표됐다. 1부에서는 1890년대 중반부터 한·일 강제병합 직후까지 충청도의 송월동이라는 마을을 무대로 농민 박곰손이 지주 한길주에 맞서 싸운다. 3·1 운동 직후까지를 다루는 2부에서는 박곰손의 아들 박씨동이 송월동에서 간도까지 누비며 반일투쟁을 전개하는 모습,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고문사하는 박곰손의 역정 등이 그려진다. 3부는 등장인물들이 계급의식에 눈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무력 투쟁 노선을 채택하게 되는 과정이 뼈대다. 1·2부는 “인민들의 해방 투쟁을 대장편으로 묘사한 첫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민상을 받았다. 그러나 3부는 69년, 내용에 결함이 있다는 당의 비판을 받아 작품이 회수될 뻔 했다. 국내에는 7권으로 출간됐다.

◇임꺽정, 조선 중기 임꺽정의 활약 통해 민중 삶 생생히
벽초 홍명희(1888∼1968)가 1928년부터 40년까지 10년 넘는 기간 동안 연재한 작품. 국내에는 90년대 사계절 출판사가 10권으로 출간했다. 연재 당시 좌·우 지식인은 물론 독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반향을 일으켰다. 평론가 이남호씨는 “도적 임꺽정이 홍길동과 더불어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된 것은 순전히 벽초의 소설 덕분이었다”고 평한다. 하지만 소설은 48년 벽초가 월북하면서 오랫동안 금서였다. 북한에서도 80년대 중반에야 복권됐다고 한다. 소설은 알려진 대로 조선 중기의 백정 출신 의적(義賊)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당대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린 것이다. 이남호씨는 『임꺽정』이 “조선시대 풍속을 치밀하게 되살렸을 뿐 아니라 조선어의 풍부한 보고이고, 민중 정서를 활달, 건강, 낙천적으로 그렸다”고 평가했다.

◇장길산, 의적 장길산 그려 … 손에 땀 날 정도로 흥미진진
소설가 황석영(68)씨가 1974년부터 한국일보에 10년간 연재한 작품이다. 1600년대 후반 숙종 연간 20년 정도가 소설의 시대 배경. 임꺽정·홍길동 등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의적으로 꼽히는 장길산이 일당을 결성해 활빈행을 펼치는 과정이 소설의 뼈대다. 한양 인근의 무뢰배와 장사치들이 ‘미륵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비밀 결사 ‘검계(劍契)’ 등이 승려 세력과 힘을 합쳐 역성 혁명을 추구하는 과정 등 당대의 사회변혁 운동을 민중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깔린 작품이다. 장길산은 승려 세력이 추구하는 미륵세상도 결국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조선 후기 민중 운동을 자생적 근대화의 원류로 그려내겠다는 작가의식의 발로다. 장길산의 일당 마감동과 관군 최형기의 숲 속 결투 장면은 웬만한 무협지 뺨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태백산맥, 객관적으로 본 빨치산 투쟁 … 700만 부 팔려
작가 조정래(68)씨의 대표작. ‘아리랑’,‘한강’ 등 함께 근·현대사를 다룬 조씨의 대하소설 3부작 중 한 편이다. 1983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89년 10권 출간을 마치기까지 집필 기간만 6년, 200자 원고지 1만6500장 분량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여순반란사건에서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 1948∼53년 전남 순천·벌교 일대에서 벌어진 빨치산 투쟁 등 좌·우익 충돌, 대립의 바탕이 된 농민들의 소작쟁의 등을 주로 다뤘다. 금기시되던 빨치산 투쟁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려낸 게 연재 당시 지식인 사회의 변혁 지향 움직임과 맞물려 큰 인기를 누렸다. 무엇보다 걸쭉한 육담과 사투리가 읽는 맛을 더했다. 조씨는 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2005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모두 10권으로, 2009년 기준 7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토지, 1897년부터 광복까지의 민족수난기, 26년간 써
2008년 세상을 떠난 작가 박경리(1927∼2008)의 필생의 역작이다. 방대한 작품 규모와 “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땅”으로 얘기되는 작품의 의의 등으로 한국 현대문학 최대의 문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집필에만 26년이 걸렸다.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했지만 매체를 바꿔가며 소설이 이어졌다. 94년에 비로소 16권으로 완간됐다. 1897년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1945년 광복까지 50여 년에 걸친 민족수난기를 담았다. 만주와 서울·도쿄 등을 공간 배경으로 아우르고 최 참판 댁 4대에 걸친 모계 중심의 가족사를 추적한다. 여주인공 서희를 비롯해 70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의 고난의 운명, 현실 극복 의지를 통해 민족의 한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명을 시도한다. 박경리는 네티즌들에 의해 ‘20세기를 빛낸 여성’으로 선정되는 등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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