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독재·부패·불평등 염증…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타고 자유의 불길
청년 노점상 분신으로 일어난 튀니지 혁명
주변 이집트·알제리·예멘 등 4개 국가
◇불공정 사회에 대한 염증이 근본 원인 = 국제중동전략연구소의 에밀 호카옘 연구원은 28일 CNN과 의 인터뷰에서 "그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동일하다"면서 "그들은 불평등 심화와 연고주의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갈수록 부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이것은 존엄성의 문제"라면서 "국민의 존엄성이 수십년간 공격받았다"고 말했다.
불평등 심화의 배경에는 권위주의적 정권의 장기 집권에 따른 부패와 억압이 자리하고 있다.
'재스민 혁명'으로 이미 대통령을 몰아낸 튀니지와 중대 국면에 진입한 이집트 그리고 이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알제리 예멘 등의 국가는 하나같이 독재자들이 집권하고 있다.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은 23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30년을 집권했다.
더구나 오는 9월 대선에서 83세의 무바라크가 6선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 집권 국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권력이 승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도 30여 년 간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중동역사학자인 후안 콜은 CNN에 "많은 사람이 낙오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생활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불만 그리고 자신들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세력의 부재 때문에 거리에 몰려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 4개국 모두 시위가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고학력 중산층이 동참하고 있다면서 "중산층들은 기회가 박탈당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봉쇄된 엘리트'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도화선은 경제 = 튀니지 혁명의 기폭제는 한 달 전 내륙의 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청년 노점상의 분신이었다.
무허가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모하메드 부아지지(26)라는 청년이 경찰의 단속에 적발돼 청과물 등을 모두 빼앗긴 후 민원을 해도 소용이 없자 시청 청사 앞에서 휘발유를 온몸에 붓고 분신했다.
그의 분신은 장기 집권 속에 만성적인 실업과 고물가로 시달려왔던 주민들의 억눌린 심정을 폭발시켰다.
전체 2300만 인구의 3분의 1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예멘 역시 높은 실업률과 석유 및 수자원 고갈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알제리에선 곡물 가격 급등이 반정부 시위의 단초가 됐다.
여타 주변 아랍권 국가 역시 고물가와 실업이라는 이슈에 대해선 다소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는 유사하다.
곡물과 에너지 등 생필품 가격의 급등이 이들 빈국을 강타하는 것은 가처분소득에서 생필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보다 크기 때문이다.
미시간 대학의 콜 박사는 세계경제위기가 각국 경제의 압력을 높였고 그중에서도 에너지와 식량 가격의 급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집트의 경우 최근 10년간은 경제가 성장세를 보였고 정부도 보조금 지급을 통해 서민들을 물가압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했다면서 그러나 노동자들이 성장의 과실이 분배받지 못한 채 자꾸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 분노를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콜 박사는 분석했다.
◇SNS가 정보통제 무력화 = CNN은 튀니지 시위에 SNS가 큰 역할을 했다면서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이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현장 소식을 전하면서 시위가 빠르게 번졌다고 보도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 서비스는 독재 정권의 정보 통제력을 무색하게 했다.
과거엔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매체만 통제하면 됐지만 이제는 SNS를 통해 시위 정보가 전달되고 있어 일일이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튀니지와 이집트 등 아랍권 전역에서 진행된 시위에서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시위 현장의 사진과 소식 등을 전하거나 진압 과정에서 숨진 사람들의 사진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대중들을 조직화하고 있다.
영국의 뉴미디어 전략분석가 마크 핸슨은 "SNS상의 토론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히드라(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가 9개 달린 뱀)의 머리를 자르는 행위로 하나를 자르면 또 하나가 바로 나온다"며 정부 조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튀니지 혁명의 경우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튀니지 주재 미 대사관은 2008년 6월 본국에 보낸 전문을 통해 "벤 알리 대통령 일가가 돈 서비스 토지 자산 요트까지 탐내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있다"고 보고했다.
벤 알리 대통령의 조카 두 명이 2006년 한 프랑스 기업인으로부터 요트를 빼앗은 사실 대통령 사위 모하메드 사헤르 엘-마테리가 집에 온갖 고대 유물과 최고급 음식 심지어 애완용 호랑이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다.
■인터넷의 위력
민주화 요구 확산 중심엔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
집권세력 인터넷 차단나서
튀니지발 시민혁명에서 촉발된 중동 민주화 요구 확산 움직임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같은 인터넷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28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인터넷과 휴대전화 서비스부터 차단하고 나선 대목은 인터넷의 위력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튀니지 이집트 알제리 예맨 등 아랍권의 시민봉기를 이끄는 주력부대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 익숙한 청년세대라는 점에서 지금 중동에서 번지는 민주화 물결은 `인터넷 시민혁명'이라 할 만하다.
인터넷 공간에서만 반정부 투쟁을 전개해온 활동가들이 인터넷을 반정부 시위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SNS를 통해 전달되는 시위 현장의 생생한 사진과 시위 관련 소식들은 젊은이들을 시위 현장으로 이끌면서 시위가 빠르게 번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오랜 독재 체제 아래 억압돼 있는 언론 자유 환경이 일차적 배경이 됐다.
제도권 언론을 통한 개혁 촉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뿐더러 쉽게 묵살되는 현실에서 청년층의 분노가 인터넷을 통해 발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집트의 인터넷 사용자는 2300만명으로 인구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이집트 시위 주도단체 중 하나는 지난해 6월 반부패 활동가 칼레드 사이드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한 페이스북 활동가 모임이다.
예멘에서는 SNS 사용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의 사례는 인터넷 시민봉기가 지니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터넷 또는 휴대전화 사업자가 제한돼 있을 경우 집권 세력의 전면적인 서비스 중단이 시민봉기의 동력을 쉽게 잃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인터넷 시민봉기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집권 세력은 인터넷을 차단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반정부 시위의 엔진을 꺼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곽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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