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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즐거운 책읽기] '못 가본 길' 떠나간 박완서 작가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작가의 타계 소식은 80이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감히 불경스럽게도 "또 나왔어?"라고 느낄 정도로 왕성했던 작품활동을 하셨던 탓인지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40세에 늦깎이로 등단하셔서 작가 이전의 일제시대와 전쟁을 그리고 경제성장과 번영을 작가가 아닌 평범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써 살아낸 풍성한 삶의 체험 중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으시려는 듯 구수한 입담 속에 감추어진 예리한 관찰력으로 누가 읽어도 술술 넘어가게 만드는 쉽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대구분 없이 이 땅의 수 많은 독자를 매혹시키셨다.

이제는 마지막 작품이 되어 버린 이 책은 여러 편의 수필로 구성되어 있지만 읽다 보면 선생의 자서전이 될 법한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나온다. 대학입학과 전쟁의 발발 전쟁 통에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 PX에서 일하던 경험('그 남자네 집'이라는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 시절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화가들과 함께 일하던 시절에 직장동료로 만난 박수근 화백의 이야기(데뷔작 '나목'의 모티브가 되었다)가 선생의 작가 이전의 일면을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노작가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달관과 솔직함이 묻어져 나오는 이 산문집에서 작가는 꿈틀대는 생명력의 경이로움을 담아 "내 몸이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라며 죽음과 가까워진 생에 대한 담백한 성찰 또한 거침없이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체험한 후 고통에의 의지로 죽음을 인정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생명'이란 존재에 이르는 삶을 체험하게 된 고백 또한 절절하며 평소 흠모하고 가까이 하셨던 작가 이청준 박경리 선생의 타계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에 부친 글들을 통해서는 당신이 칭송했던 그분들의 모습이 바로 당신이 지향했던 삶의 모습이었음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책은 크게 3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내 생애의 밑줄이라는 대목으로 삶의 중요한 고비에 대한 노작가의 회고와 성찰이고 2부는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총 13권의 책에 대한 간단한 독서감상문들의 모음이며 3부는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김수환추기경 박경리작가 박수근화백에 대한 추모글 모음이다.

선생에 대한 추억을 깊이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치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을 이 산문집이 좋은 선물이 될 듯 하다.

알라딘 서점 대표(www.ala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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